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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196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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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쇠락한 이미지만 남아 있지만, 다방은 생각보다 오랜 역사와 그만큼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1910년대 일본인에 의해 생기기 시작한 다방은 1920년대 후반부터는 국내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1938년 발표된 이상의 단편 소설 『환시기』에는 삼각관계로 실의에 빠진 주인공 이상이 ‘멕시코 다방’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멕시코는 배우 김용규와 심영이 1929년부터 종로 2가 YMCA 근처에서 운영했던 곳으로, 당시 지식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공간이라고 한다. 이상 또한 미술학도와 건축기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1933년 ‘제비 다방’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1930년대 지식인들의 사교 공간으로 출발한 다방은 전쟁 이후 전성기를 맞게 된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면 ‘한 집 건너 다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속히 늘어나는데, 이는 딱히 갈 곳이 없던 사람들과 인스턴트커피 덕분이다. 특히 1938년 네슬레 브라질 연구소에서 분유 제조 기술을 응용해 탄생한 인스턴트커피는 그 편리함과 대량 생산 기술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을 통해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지금과 달리 커피를 마시려면 다방에 갈 수밖에 없었고, 또 지친 걸음을 쉬어가거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공간 또한 다방과 술집뿐이었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런 1960년대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문학 작품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다. 전쟁 이후 빠르게 도시화 하는 서울에서, 어떤 이들은 현기증 때문에 쓰러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서투르지만 영악하게 적응해 가고 있었다. 작가는 소설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떠오르는 문장이다.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던 조이스처럼, 김승옥 또한 당시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냉정한 거울로 담아내고 있다.

 

『무진기행』에는 1964년 발표된 「차나 한잔」이라는 단편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신문에 네 컷짜리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주인공은 요즘 들어 속이 편치 않다. 주로 검정 안경을 쓴 대통령과 ‘아톰 X군’이 등장하는 그의 만화가 지면에 실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연재 중단을 통보받는 자리에서 신문사 문화부장은 그에게 ‘차나 한잔 하러 가실까요’라고 말한다. 해고당하는 자리를 비롯해 화장실과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그리고 일자리 부탁을 위해 들린 다른 신문사의 문화부장과 함께 그날 그는 세 번이나 다방을 찾는다. 저녁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그는 ‘차나 한잔’이라는 말이 ‘회색빛 도시의 따뜻한 비극’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말한다. 해고하면서 차라도 한 잔 나누는 한국적인 인정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듯 매끼 식사처럼 도시인들의 일상 그 자체였던 다방 문화는 1970년대 들어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1970년 동서식품에서 국산 인스턴트커피와 프리마가 출시되어 가정과 사무실에서도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1976년에는 역시 같은 회사에서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가 출시되었다. 게다가 1977년 등장한 커피 자판기는 다방 문화의 확산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선언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소수의 다방은 맞선 등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고급화하거나 전문 음악감상실로 탈바꿈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생존을 위해 퇴폐적인 서비스에 집중하며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흔히 다방 커피 하면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하는 식으로 쉽게 생각되지만, 막상 해보면 맛을 내기 꽤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또한 경험과 일종의 손맛이 필요하니 가끔 달곰한 다방 커피가 생각난다면 주저 말고 ‘맥심’ 커피 믹스를 선택하면 된다. 1982년 출시된 맥심은 인스턴트 커피 15%, 커피 프림 30%, 백설탕 55%의 비율로 미국 맥스웰 하우스 본사에 세계 5대 커피 중 하나로 전시되어 있는, 그야말로 다방 커피계의 명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방 커피를 맛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30년째 다방 커피를 대표 메뉴로 하고 있는 인사동 근처 안국동 ‘브람스’ 카페에서 잔잔한 클래식과 함께 오래된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다방 커피



인스턴트 커피 2스푼, 커피 프림 2스푼, 설탕 2스푼


만드는 법
1. 찻잔에 티스푼으로 인스턴트커피, 커피 프림, 설탕 각각 두 스푼씩 넣고 뜨거운 물과 함께 잘 저어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온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과 마시고 싶은 책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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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할 때마다 종종 가는 스타벅스에 캐럴이 들리기 시작했다. 연말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 역시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소리다. 개인의 종교적인 성향을 막론하고, 크리스마스는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날이다. 새하얀 눈이 흩날리고 여기저기서 캐럴이 들려오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선물을 나누곤 하는, 그야말로 사랑이 가득한 날이기 때문이다. 반면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집에서 영화를 봤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1990년대라면 <나홀로 집에>를 보며 케빈과 함께 집을 지켰을 것이고, 2000년대 이후라면 <러브 액츄얼리>를 보며 'All you need is love'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제목만 읽어봐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밖에 없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찰스 디킨스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스크루지 영감의 인색한 성격만큼은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 책 맞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이 책을 아주 어릴 적에 처음 접했다. 방과 후 종종 동네 서점에 가서 바닥에 쭈그려 앉아 만화책으로 된 고전들을 읽곤 했는데, 그중 한 권이 이 책이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그저 스크루지 영감이 무서웠고,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만 굳게 먹었던 기억만 남는다(덕분에 착하게 자란 것 같다). 그는 돈 욕심이 가득하고 가난한 사람을 못살게 구는 인물이다. 스크루지(Scrooge)라는 그의 이름을 보면 '밀어 넣다, 쥐어짜다'라는 뜻을 가진 Scrouge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데, 마치 디킨스가 이 점을 염두해 두고 이름을 지은 것 같다.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 7년 전에 죽었던 동업자 말리의 유령이 그의 앞에 등장하며 시작된다. 유령은 앞으로 세 차례 다른 유령이 찾아올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하루에 한 차례씩 유령이 나타나 그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데려간다. 즉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여행인 셈이다. 이 시간여행을 통해 그는 본래의 자아를 발견하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몸소 깨닫게 된다. 언젠가 자신이 죽어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유령과 함께한 시간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다.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 아침, 마음을 고쳐 잡은 그는 그동안 못되게 굴었던 직원인 밥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기도를 한꺼번에 할 테니 더욱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바라네! 난 자네의 월급을 올려주고 고생하는 식구들을 힘껏 도울 생각이네. 우리 오늘 오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비숍 한 잔씩 마시면서 자네 집안일을 의논해보자고!"

 

스크루지가 밥에게 함께 마시자고 이야기한 비숍(Bishop)은 책의 묘사 그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칵테일이다. 멀드 와인(Mulled wine)의 일부인데, 일반적으로 멀드 와인이란 레드 와인에 시나몬과 같은 향신료와 레몬, 오렌지 등을 넣어 가열시킨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에 뱅쇼(Vin Chaud), 독일에 글뤼바인(Gluhwein)이 있다면, 영국과 미국에는 멀드 와인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중에서도 비숍은 가톨릭의 주교(Bishop)가 쓰는 모자인 미트라와 흡사한 디자인의 볼에 담겼기 때문에 명명되었다. 사실상 비숍은 볼의 디자인 때문인지 근대에 이르러 드물게 되었으나, 그보다 넓은 범위인 멀드 와인은 크리스마스 시즌뿐만 아니라 겨울이 되면 지역을 막론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다.

 

어느덧 해가 6시도 안 되어서 지기 시작했고, 살이 에는 듯한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럴 때 가족, 연인, 친구 등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비숍을 만들어서 마셔보자. 알코올 도수가 낮을뿐더러, 향긋한 향과 달콤한 맛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뜻한 열로 함께하는 이들과 더욱 따스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혼자여서 만들기 번거롭다면, 책바 혹은 집 근처 바에 방문해서 따뜻하게 한 잔 마셔보시길.

 

 

비숍

 

재료


와인 1컷, 오렌지 1~2개 조각, 레몬 1~2개 조각, 시나몬 스틱 1개

 

만들기

 

1) 냄비에 와인(포트 와인 혹은 기타 달콤한 와인)을 한 컵 넣는다.
2) 오렌지와 레몬을 썰어서 1~2개, 시나몬 스틱 1개를 따라 넣고 가열한다.
3) 적당량의 알코올을 함께 섭취하고 싶으면 물이 본격적으로 끓을 때 불을 끄고, 알코올을 최대한 없애고 싶을 경우 더욱 더 오래 끓인다.
4) 보온 기능이 있는 컵 혹은 잔에 따르고 서서히 식히며 마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필자 15인의 ‘2017년이 기대되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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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도 어김없이 <채널예스>는 새로운 필자들을 만났습니다. 재밌게 읽은 책 이야기를, 또 즐겁게 기억되는 영화, 음악, 여행 등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누가 권한다고 해도 쉽게 읽어지지 않습니다. 필요에 의한 경우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늘 혼자 알긴 아까운 책, 그리고 저자들이 있습니다. <채널예스> 필자 15인에게 물었습니다. “2016년에 알게 되어 다행인 저자가 있습니까?” 필자들은 반색했습니다. 내심 소개하고 싶었던 저자가 있었거든요. 독자 여러분이 발견한 ‘2017년이 기대되는 저자’도 궁금합니다. 댓글로 남겨 주시면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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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황인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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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 홀』를 읽고 김현 시인의 다음 시집을 기대한다.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보면서,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목소리로 그것에 대해 발언하는, 그런 시편들을 쉬지 않고 쏟아내는 이 시인의 근작들을 읽으며 나는 깊은 질투를 느낀다. 동시에 그에게 큰 기대를 갖는다. 시에 대해, 문학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독자라면 김현 시인의 시를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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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
임나리(<채널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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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인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그들이, 불현듯 생각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울컥울컥 넘어오는 무언가가 목울대를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갈수록 살아가는 일이 힘에 부친다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오늘처럼 고요히』라는 책의 제목을 읊조리게 됐다. 현실이 너무나 퍼석거려서 그랬고, 그 속에 나와 당신이 있어서 그랬고, 우리와 꼭 닮은 사람들이 소설에 등장해서 그랬다. 이 고단함이 지속되는 한 김이설 작가는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나는 언제까지나 그녀의 이야기를 곱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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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동철
김남인(<회사의 언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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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복판에서 직장 생활 14년째. 웬만한 자극에도 무덤덤해진 직딩이 시골학교 교사의 교단일기를 홀린 듯 읽어 내려갔다. 강원도 공수전초 탁동철 교사가 아이 한 명 한 명 귀하게 여겨 삶의 주인 대접해주며 사는 이야기는 이 불통의 시대에 아주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교재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리더십 스킬들이 담뿍 담겼는데, 이 시골학교 선생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걸 매일 실천하며 책(『달려라 탁샘』)으로 써냈다. 새해에는 이렇게 머리보단 삶에서 글을 퍼 올리는 저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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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워터스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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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 소설에 관해 연구했던 세라 워터스가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 쓴 첫 번째 소설은 『벨벳 애무하기』이다. 빅토리아 시대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이 이야기는 BBC에서 3부작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부유한 상속녀가 사기죄로 감옥에 갇힌 여자와 미묘한 관계에 빠지는 소설 『끌림』으로 세라는 「선데이 타임스」가 선정하는 ‘올해의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벨벳 애무하기』와 『끌림』을 잇는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올해 개봉한 영화 <아가씨>의 원작인 『핑거 스미스』이다. 영화 덕분에 『핑거 스미스』를 읽고 나서 나는 국내에 출간된 세라 워터스의 소설을 전부 다 찾아 읽었다. 하나같이 독창적이고 고지식하다 싶을 만큼 우아한 묘사가 줄을 잇지만, 그래서 자칫 지루해할 형제 자매님들도 있겠지만, ‘일단 잡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것이 그가 쓴 소설의 특징이다. 2017년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거의 유일한 작가로 '세라 워터스'를 꼽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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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정택용(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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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을 즐겨 쓰진 않지만 ‘정치(精緻)하다’란 표현을 좋아한다. ‘정교하고 치밀하다’는 뜻이지만 빠르지 않은 호흡으로 조곤조곤, 또박또박, 현학적이지 않고 뜻이 분명하게 읽히는 글에 이런 표현을 하고 싶다. 몇 명의 작가가 떠오르는데 노들장애인야학 스무 해 역사를 다룬 『노란 들판의 꿈』을 쓴 홍은전 작가의 글도 그렇다. “수백 명의 삶이 딸려 올라오는 거대한 작업”을 정치한 글로 엮어냈다. 노들야학 교사임을 십수 년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야 글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이 책과 『금요일엔 돌아오렴』, 현재 연재 중인 신문 칼럼 등 뒤늦게 활발히 글을 쓰고 있으니 2017년엔 어떤 글을 책으로 엮어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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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윌헬름
신연선(<채널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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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때로 사람을 살린다. 내게는 케이트 윌헬름. 깊은 겨울, 해질 무렵에 썼을 법한 소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읽을 때도, 읽은 후에도 변함없이 서럽고 아름답다. 서러움과 아름다움이 함께 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삶이어서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위험을 감수하고 지켜내는 작은 약속, 이별의 순간 내어주는 따뜻한 미소, 가진 것을 포기할 용의가 있는 사람의 확고한 고백. 이것들은 분명 살아감의 아름다움. 단연 2016년 최고의 소설이었다. 언제나 이 작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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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균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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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중에서는 유독 정신과 의사 중에 저자가 많다. 멀리는 이시형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김혜남, 오은영, 정혜신 등 베스트셀러 작가도 부지기수다. 지난 몇 년간 새로운 눈에 띄는 저자 유입이 없었는데, 2016년 첫 타석에 홈런을 친 대형 신인이 등장했다. 자존감 수업』의 윤홍균이다. 첫 책으로 10만권을 팔아 치웠다. 솔직히 나는 이런 분이 있는 줄도, 글을 잘 쓰는지도 몰랐다. 학회에서 만나 인사도 이번에야 겨우 했다. (나는 좌장, 그는 학술 간사였다) 두 번째로 솔직하게 말해서 10여 권의 책을 낸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한 번에 가버린 그가 부러웠고, 또 재능이란 저런 것인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그의 새책이 기다려진다.자존감 수업』이 거품이나 로또였는지, 아니면 진짜 대형 저자의 출현인지 검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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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백종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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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토록 집요했던가? 『내 서재 속 고전』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의 문장 하나 하나가 뜨겁게 다가와 가만히 앉아 다음 책을 기다릴 수 없었다.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고전’이라 하기에 ‘자신의 서재에 꽂힌 책 몇 권을 이야기 해주겠지’ 하며 첫 장을 펼쳤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어떤 어른이 이토록 젊은 세대를 사랑했던가. 서경식 교수는 지식의 파편화, 인간의 단편화를 경계하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충고가 아닌 진심 어린 말을 건네 온다. 전화를 걸었던 출판사로부터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새 책을 준비 중"이라고 대답을 들었다. 2017년은 그의 저작著作을 따라 다니는 집요한 해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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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밴
정의정(<채널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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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을 처음 봤을 때 무명의 외국 소설가가 길게 늘어놓은 그저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헤밍웨이와 코맥 매카시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는 평이 어색하지 않게, 데이비드 밴은 거대한 도시에서 스스로 고립시키는 엄마와 딸을 내세워 인간의 고독과 상처, 관계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전작에서도 극한의 자연을 모티프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비극을 그려왔다면, 작품을 거듭할수록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작품 세계가 넓어지는 걸 느낀다. 2017년에 신작이 나올 가능성은 적겠지만(그리고 번역될 가능성도 더 적겠지만),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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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김서령(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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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사랑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습관처럼 반성을 시작한다. 더 너그럽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더 치명적이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더 아름답지 못했음도 반성한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 아무 것이나 무턱대고 반성하고 있는 스스로가 우스워 그 모습을 또 반성한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사랑에 빠졌던 일을 반성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을 사랑한 것을 반성하고 또 아무 거나, 아무 것이나 마구 반성하며 지나간 사랑을 모욕한다. 그래 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이라고 시인 이제니(『아마도 아프리카』)가 말했는데.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라서 더 다정한 척을, 척을, 척을 세 번도 넘게 한 시인 이제니가 그렇게 말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 반성하는 방법을 시인 이제니가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그건 정말 매일 매일 배워도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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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
뚜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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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스치고 간 작가 중 단언컨대 TOP5 안에 드는 작가라면 엘레나 페란테. 필명이며 인터뷰도 메일로 하는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은둔형 작가에 작품은 무려 베스트셀러다. 자전적 소설이라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깊어 가는데...어라?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는 동안 얼굴 없는 작가의 얼굴이 궁금하기는커녕 책 속의 레누와 릴라의 눈부신 이야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나의 눈부신 친구와 나의 이야기가 촘촘하고 섬세하게 펼쳐진다.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가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 와중에 출간 소식 스토킹을 하다가 얼굴 없는 작가의 얼굴을 기어이 캐냈다는(굳이 읽진 않았다. 제목만 봄) 기사를 보고 뜨악! 제발 작가를 그냥 놔두길. 신작으로 돌아오길. 그나저나 한길사 님아~ 나폴리 3,4부는 언제 나오나요? 나, 심심하다 진짜 !(feat.또 오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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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사프란 포어
김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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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 Am. 하도 오랜만의 신작(11년이라고 한다)이라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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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엄지혜(<채널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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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세월호’ 노란 리본 빛깔을 띤 한 권의 책을 만났고, 숨이 턱턱 막히는 하루 속에서 잠깐이나마 숨을 돌렸다. 『99%를 위한 경제학』은 ‘낮은 곳을 향하는 주류 경제학 이야기’다. 낮은 곳을 향하는 주류가 있다고? 이게 말이 돼?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읽었고, 서너 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밑줄을 그었다. 몸으로 겪은 이야기를 단정한 문장으로 써내려 가는 저자들이, 나는 좋다. 경제학자 김재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부해서 남 줄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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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욱
강병철(소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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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저자를 꼽을 것 같아 나는 역자를 밀기로 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번역가의 노고를 평가하거나, 출판 전반에 걸쳐 번역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번역서의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또 하나의 한국적 특수성인 셈이다. 올 초 독서계를 강타했던 『사피엔스』열풍은 물론 일차적으로 깊은 사유와 해박한 지식, 놀라운 글 솜씨를 지닌 저자의 덕이지만, 길고 방대한 텍스트를 정확한 번역어와 정연하고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 역자의 숨은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인문과 과학을 아우르는 역자의 폭넓은 지식과 번역에 들이는 정성을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새해 그가 내놓을 역서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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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윤용인(노매드 대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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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좋아하는 칼럼리스트를 뽑으라고 한다면, 『밤이 선생이다』의 황현산, 『불편해도 괜찮아』의 김두식을 우선 떠올릴 것 같다. 그리고 2016을 지나면서 한 명을 더 추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정의를 부탁해』의 권석천이다. 권석천의 글을 접한 것은, <채널예스> 영화 칼럼이 먼저 였다. 공교롭게도 그와 나는 같은 공간, 같은 날짜에 칼럼을 쓰게 되었는데 나는 내 글의 마감보다 그의 새로운 글을 읽는 것에 더 관심이 가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는 같은 소재의 글을 에디터에 보내고는 했는데, 어쩌면 그런 교감적인 증거들로 인해 일면식조차 없음에도 그를 향한 나의 친근함은 더 커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게 된 것은, 글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적 자세다. 이것은 황현산, 김두식, 권석천 모두에게 공통되는 부분인 바, 나는 잠시 그 세 명의 성찰적 자세의 다름을 제멋대로 추리한다. 황현산의 성찰은 향기가 있다. 그것은 대가의 향기일 수도 있고 문체의 향기일 수도 있다. 김두식의 성찰은 촌스럽고 수수하다. 치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을 되돌아본다. 권석천의 성찰은 슈퍼 A형의 그것처럼 소심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권석천의 글을 읽으면 저항감이 없고 안전하다. 몇 달 전 권석천은 JTBC 보도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많은 이가 손석희와 투 톱을 이루는 최고의 궁합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의 정의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며, 또한 권석천이 마이크를 잡는 틈틈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은 그와 그의 독자 모두에게 치유일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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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17년 1월 31일까지 / 당첨자 발표: 채널예스 공지사항(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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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폭로, 피해자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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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트위터를 통해 시작됐다. 익명의 트위터라인이 ‘#문단_내_성폭력’을 해시태그로 걸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고 제보가 끝없이 이어졌다.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배용제 시인은 2011년 예고 재학생을 문예창작실을 열었고, 수강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 성폭행했다. 문하생 5명이 트위터에 피해 사실을 폭로했고, 배용제 시인은 이를 인정하고 절필 선언과 함께 사과문을 올렸다. 2011년 현대시로 등단한 박진성 시인 역시, 수년간 시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저질렀고 이를 시인하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10월 21일에는 소설가 박범신의 성희롱 목격담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이에 박범신은 짧은 사과문을 트위터에 올렸고, 사과문 역시 논란이 되자 트위터 계정을 폐쇄했다. 박범신의 신작 소설을 출간할 예정이었던 은행나무 출판사는 “박범신 작가의 뜻에 따라 소설 출간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6일, 문학과지성사 기획위원회는 “문학적 권위를 수단으로 타인을 권력 관계 속에 옭아매고 반인간적, 범죄적 행위의 대상으로 삼은 시인들의 경우, 사안을 가려 출판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문학과지성사는 법적 논란이 있는 박진성, 배용제 시인의 기 출간 시집을 절판에 앞서 출고 정지 조치를 취했다.

 

한편 50대 윤 모 시인이 후배 시인 A 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지난 11월 7일, <머니투데이>에 보도됐다. 윤 모 시인은 범행을 부인했지만 고소를 당하기 전 A씨에게 SNS를 통해 사과한 바 있다. A씨는 성추행의 공소 시효가 10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뒤, 윤 모 시인을 고소했다. A씨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강제 추행을 당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A씨는 “윤 모 시인은 (내가) 경찰에 고소한다니, 말을 바꾸고 사설 변호사를 선임해서 조사를 받았다. 나와 친하다고 거짓말을 해놓고 거짓말탐지기는 왜 거부하냐?”고 썼다.

 

SNS를 통한 문단 및 예술계 내 성폭력 고발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와 연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성폭력에 관한 인식을 확산시켰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SNS 폭로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익명성에 기반한 SNS 폭로가 과연 피해자에게 유리한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여지가 없는지, 『예민해도 괜찮아』, 『삼성을 살다』등을 펴낸 이은의 변호사에게 ‘성폭력 피해자가 알아둬야 할 것’에 관해 물었다.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로 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긴 최초의 여성이다.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증거물이 필요한가?


성폭력이 일어나는 순간의 녹취나 녹화가 있으면 제일 좋다.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진술서, 강간이나 준강간 사건이라면 상대방의 체액이 묻은 이불, 수건, 휴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가해자에게 피해사실을 항의하는 문자, 메일, 카카오톡 메시지 등도 중요한 증거들이 된다.  최근까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로부터 사실 확인을 하고 사과를 받는 대화 녹취록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해당 대화가 가해자 스스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사과하는 것이 아닌 경우 가해자가 나중에 수사기관에서 당황해서 일단 수긍해준 것뿐이라고 부인하게 되면 증거 사실로써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잦다. 증거확보를 위해 녹취를 하는 것이라면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가해자가 가해행위를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트위터에 피해 사실을 폭로하자 가해자가 먼저 변호사를 선임하고 “정확한 증거물을 제시하라”고 협박한다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가?


변호사 입장에서 트위터에 폭로는 권장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온라인상의 명예훼손은 일반 명예훼손 보다 훨씬 위중하게 다뤄진다. 피해자 입장에서 당장의 해소감은 클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미 입은 피해가 있는 상황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크고, 신상이 털리기도 하고, 악성 댓글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가급적 고소나 신고를 먼저 하고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이라면 언론이 취재하는 방식 등 우회하여 발산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에 고려대에서 성폭행 피해 여학생이 피켓시 위를 해서 이에 대한 취재기사가 나가고 이것이 SNS에서 회자되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 모범 사례다.

 

성폭력을 당했을 당시에는 이것이 성희롱, 성폭행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서 거부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하고 난 후, 깨달았다. 현장에서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가해자를 고소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갑자기 누군가 만지고 가거나 음담패설을 던지고 갔다고 가정해보자. 항의할 틈도, 뭐라고 항의를 해야 하나 생각할 틈도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 순간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관계를 오해하고 계속할 만한 행위들도 있다. 즉 피해 내용이나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 검색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변호사나 경찰서, 전문 상담기관 등에 문의해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조언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고소하기 전에 트위터에 가해자의 이름을 명시하고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 재판 시 불리한가?


가해자 이름 명시해서 트위터에 피해사실 폭로하는 것은 공익의 목적이 있거나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거나 하는 등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 한 별개의 범죄 행위다. 성폭행과 명예훼손 행위가 각기 다른 사람들의 별개의 범죄행위 또는 불법 행위니 내가 당한 성폭행을 판단받는데 유리하고 불리하고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판에서 사실관계를 규명함에 있어서 판사에게 자칫 예단을 줄 수도 있고, 양형 등을 할 때 가해자가 피해자의 폭로로 이미 입은 피해도 감안될 가능성이 높다. 가급적 피해자가 폭로전을 하기 보다는 법적 구제 절차를 밟으면서 우회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길 권한다.

 

한 문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고소할 생각은 없으나, 진정한 사과를 바라고, 문인의 이름을 밝히면서 SNS 상에 사과를 요구했다. 그랬더니, 명예훼손으로 고발한다며, 연락이 왔다. 이것은 명예훼손인가?


당연히 명예훼손이다. SNS에 올리는 행위는 사과를 바라는데 본질이 있지 않고 망신을 주겠다는데 본질이 있지 않나. 오로지 진정한 사과를 바라는 것이면 고소해서 수사기관을 매개로 사과 받으면 될 일이다. 모든 범죄가 그러하듯 성폭행 사건에서 역시 무고도 있고 오해도 존재한다. 온라인 상에서의 폭로는 수사와 재판을 생략하고 상대를 단죄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사법기관은 이러한 접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고 보면 된다.

 

SNS 폭로 이후, 가해자가 연락을 해와 사과했다. 그러면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유도했다. 피해자는 보상을 받을 생각이 없고 공개적인 사과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렵다고 한다.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인가?


가해자의 공개사과 자체는 법이 보장해줄 수 있는 처벌이 아니다. 고소해서 기소돼서 가해자가 형사재판을 받아 유죄가 확정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공개된 자리에서의 사실이 공개도서 확정 받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가급적 폭로성 SNS 활동을 자제하실 것을 권하지만 이미 한 경우라면, 나중에 이러한 형사법적 절차 결과부분을 올리는 것으로 해소하시면 된다. 이것은 과거 올렸던 사실에 대한 형사결과다 라고 하면서 가해자를 특정하진 말고. 어차피 과거에 올린 것에 링크가 돼서 누군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호감을 느껴 잠깐 사귀었다. 그런데 상대의 행동이 수상해서, 헤어지자고 하자 곧바로 머리를 때리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 데이트 폭력으로 고소하려면 어떤 증거가 필요한가?


일단 즉시 현장에서 신고하면 좋다. 주변에 CCTV가 있는지, 주차된 차량이 있어서 블랙박스 등 영상 기록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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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책] 이 겨울, 다시 읽게 되는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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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가운데 『우리 헌법 이야기』『헌법 재판 이야기』는 헌법 조문을 최소화하고 헌법 정신이나 재판 사례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책 두께도 『지금 다시, 헌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얇다. 『만화로 배우는 헌법 판례 120』은 판례마다 4컷 만화를 넣어 만화만 읽어도 헌법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쟁점이 될 수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두 얼굴의 헌법』은 사료와 증언으로 보는 제헌의회의 풍경으로, ‘헌법 창세기’의 모습을 드라마처럼 읽을 수 있다. 『헌법의 발견』은 ‘인문학, 시민 교과서 헌법을 발견하다’라는 부제처럼, 헌법 조문을 인문학적 배경과 의견을 통해 제시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해당하는 제39조까지 다뤘다.

 

사실 헌법에 대한 여러 책들 가운데에서 『지금 다시, 헌법』은 구성 면에서 법 해설서에 가장 가깝다. 전문, 총강, 130개 조의 조문과 부칙까지 헌법 본문과 본문 해설을 꾸준히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지루할 만한 구성이다. 그래도 한 권을 뽑는다면 이 책이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무심코 동의한 온라인 서비스 약관들이 떠올랐다. 헌법은 동의해놓고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약관과 같았다. 한 번 읽을 때 빠짐 없이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이 내게 약속한 것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지금 다시, 헌법』은 2009년 같은 저자들의 책 『안녕 헌법』을 다듬어서 다시 펴냈다. 펴낸 날은 2016년 11월이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2016년 6월까지 헌법과 법률의 변화가 반영돼있다. 고작 7년이지만 그동안 추가된 판례도 여러 건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헌법재판소가 야간의 옥외집회 금지 부분을 입법 개선하도록 촉구한 건이 있다. 이는 2016년에도 법 개정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한 달 동안 평균 150건 이상의 헌법소원, 위헌법률 소송을 접수하고 심사한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헌법재판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헌법재판소 자체가 헌법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헌법 개정이 1987년에 이뤄졌다. 헌법재판소가 1962년에 폐지된 이래 25년만의 일이었다. 25년 동안 위헌법률심사를 대법원이 담당했고 헌법위원회는 ‘자칭 원로들이 모여 바둑이나 두는 곳’이었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고,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2017년은 헌법재판소가 법적 근거를 갖게 된 지 딱 30년째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이번 겨울을 뜨겁게 달군 대통령 탄핵과정과 직접 관련된 헌법 조항은 세 줄에 불과하다. 

 

(국회) 제65조
2. (전략)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재판소) 제113조
1.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간단하고 명확하다. 국회, 대통령, 헌법재판소에 카드를 한 장씩 나눠주고 벌이는 게임의 규칙처럼 보인다. 제65조 탄핵소추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해설을 달았다.

 

탄彈은 따진다는 말이고, 핵劾은 캐묻거나 죄상을 조사한다는 뜻이다. 보통 사전적 의미로 탄핵은 잘못을 조사하여 책임을 묻는 일이다. 거기에 바탕한 헌법적 의미의 탄핵이란, 공직으로부터의 추방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국민을 대표한 국회가 고급 공무원을 추방하는 제도가 탄핵이다. 고급 공무원에 한정하기에, 보통의 징계 절차와는 다르다.

 

각 나라마다 사정에 따라 탄핵제도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급 공무원들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의 근거는 이론상 두 가지에서 찾는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그것이다. 고급 공무원에게 결정적 책임을 물을 일이 있으면 주권자인 국민에게 심판할 권한이 있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 책임을 묻는 투표를 할 수 없으므로, 대의기관인 국회에 맡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그런가 하면 고급 공무원들은 솔선하여 헌법과 법률을 지켜야 한다. 그들이 중대한 위헌, 위법 행위를 저지를 경우 엄정히 책임을 추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엔 사법부에 그 심판을 맡길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아무리 오래 토론을 해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도 상식이다. 그럴 때엔 미리 규칙을 정해두는 것이 이제까지 사람이 발견해낸 최선의 방법이다. 헌법이 최고 권력자로 규정한 대통령을 공직에서 추방하는 방법을 같은 지면에 정해놓은 것이야말로 헌법이 지닌 완결성이다. 1948년 7월 17일 제헌절 이후 우리가 해온 노력이 130개 조항에 고스란히 담겼다. 법 해설서처럼 딱딱해 보이는 책이 재미있는 이유가 이런 노력 때문이라 짐작한다.

 

또, 대통령, 국회, 헌법재판소와 같은 ‘나랏일’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속한 국민들이 생활에서 겪었던 다툼들을 헌법이 어떻게 풀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나이가 어린 응시자를 우선 입학하도록 했던 대학 입학 전형이 평등권에 반하는 것으로 판명 받았다. 법이 정한 최저 근로조건 이하로 조건을 낮출 수 없도록 판단한 것도 헌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조항마다 해설에 실제 판례를 넣어 우리와 헌법의 관계를 밝힌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전문부터 부칙까지 모두 예외 없이 반말로 쓴 헌법에서 유일하게 공손한 말투로 작성된 조항이 하나 있었다. 딱 한 문장으로, 대통령의 취임 선서 조항이다. 이 겨울엔 몇 차례 읽어보게 된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여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만화로 배우는 헌법 판례 120
김재호 지음 | 김영란 그림 | 박문각

이 책은 수험서이다. 시험에 준비하기 위해서 만든 책인데 의외로 재미 있다. 모든 판례는 4컷 만화와 해설로 구성돼있다. 만화로 보니 사건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설은 다시 해당 헌법 조문을 보여주는 '조문보기'와 '사건 개요', '판결 요지', '해설'로 구성된다. 기출 문제까지 있어서 은근히 승부욕을 자극한다. 목차만 봐도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목차는 이렇다. 초기 배아 폐기 사건, 일반 사병 이라크 파병 위헌확인 사건, 간통죄 위헌 확인 사건, 좌석안전띠 미착용 사건, 인터넷게시판 본인확인조치 위헌확인 사건,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금지 사건 등등.

 

 

우리 헌법 이야기
오호택 저 | 살림출판사

독자에게 헌법은 크게 둘로 나뉜다. 모호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곱씹어볼 만한 앞부분과 이런저런 규칙을 나열해놓은 뒷부분이다. 국민의 권리, 국회, 정부, 대통령 부분까지는 읽을 만한데 행정부, 법원부터 경제에 이르기까지는 책을 내려놓기 일쑤다. 이를 헌법 본문보다 얇은 90여 페이지로 줄였다. 우리의 대통령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 나라 대통령제는 미국식을 기본으로 하되 의원내각제적인 요소도 일부 가미된 형태이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것,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수 있다거나 정부가 법률안 제출권을 가지는 것 등이 그런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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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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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고가 사부로가 ‘본격(本格) 미스터리’라는 말을 사용할 때만해도, 그다지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당시 미스터리라 불리던 소설들에는 공포, 전기(傳奇) 등 다양한 소설이 섞여 있었고 ‘본격’은 그들 중에서 평범한 미스터리 소설(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이 이를 해결하는)을 구분해내기 위해 쓰인 수식어였다. ‘본격 미스터리’에 ‘논리’가 강박적으로 달라붙은 건 그 이후의 일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범죄소설로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쏠리는 중에, ‘평범한 미스터리’가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논리’밖에 없었다. 덕분에 본격 미스터리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됐다.

 

이 시대에 본격 미스터리를 쓰는 건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닳고 닳은 독자들도 놀라게 할 결말을 준비하고, 그곳에 이를 때까지 여기저기 함정을 파며, 전체 구조를 논리적으로 짜맞추어야 한다. 웬만한 열정으로는 어림도 없고, 구도(求道)가 아니고서는 닿기도 어렵다. 하지만 일본에는 그런 구도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작가 중 한 명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본명은 우에하라 마사히데)는 1959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치면 내년에 쉰아홉을 맞는다. 1989년에 첫 작품을 출간했으니 대략 27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해온 셈이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주로 본격 미스터리를 써왔고 또 그러한 작품들로 이름을 얻었다. 남들은 평생 한 편도 쓰기 어려운, 게다가 유행이 한참 지난 본격 미스터리로 일가를 이뤘으니 남다른 고집과 성실함을 지닌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11살 때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를 읽은 이후로 줄곧 미스터리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바느질 흔적이 있는 흰색 바지와 끈이 끊어진 구두 한 켤레로 집요한 연역 추리가 이어지는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는 엘러리 퀸 특유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학을 선택한 이유마저 학과가 아닌 ‘추리소설 동호회’ 때문이었다고 하니, 엘러리 퀸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인생에 확실한 길잡이가 돼준 듯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낮에는 서점에서 일하며 밤에 끊임없이 글을 썼다. 출판사에 습작을 투고하면서 ‘본격 미스터리의 신’이라 불리는 아유카와 데쓰야(우리나라에는 『리라장 사건』,이 출간돼 있다)와 인연을 맺게 됐고 가까스로 『월광 게임』(1989)을 출간해 작가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세계는 두 시리즈가 대표한다. 각각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 ‘학생 아리스 시리즈’라고 불리는데, 모두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작가와 동일한 이름의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의 직업에 따라 시리즈를 구분하는 별칭이 생긴 셈이다. 각 시리즈에서 히무라 히데오라는 범죄학자와 에가미 지로라는 동호회 선배가 탐정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시리즈들은 일종의 병행 세계에 존재하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미스터리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다.

 

범죄학자가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 달리 ‘학생 아리스 시리즈’는 에이토 대학 미스터리 클럽(EMC)의 멤버들이 맞닥뜨리는 사건을 소재로 한다. 주된 등장인물들이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작품들은 낭만적인 모험담이 가미된 청춘 드라마로도 읽힌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평범한 대학생들이 기이한 사건에 자주 휘말리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느냐고 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시리즈는 작가 인생 내내 진행 중이다. 전작 『쌍두의 악마에 이어 6년만에 국내에 선보인 『여왕국의 성』은 일본에서는 무려 15년만에 발표된 작품이다.

 

본격 미스터리라는 탑을 현대에 세우기 위해 작가들은 종종 두 가지 기법을 이용한다. 하나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폐쇄된 공간 안에 등장인물을 몰아넣는 것이다. 『여왕국의 성』은 이 두 가지 기법이 동시에 적용된 작품이다. 휴대폰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버블 시대, EMC 멤버들은 행방 불명 상태인 에가미 지로를 찾아 한창 번성하는 신흥 종교 ‘인류협회’의 성지인 가미쿠라 마을로 향한다. 11년 전 가미쿠라 마을에서 일어났던 의문의 사건과 인류협회 내에서 일어난 세 건의 연쇄 살인이 겹쳐지고, 협회의 관 내에 갇혀버린 EMC 멤버들은 자유와 진실을 위해 필사적으로 추리 게임을 시작한다.

 

여름 캠프가 열린 야부키 산(『월광 게임』), 다이아몬드가 숨겨진 가시키지마 섬(『외딴 섬 퍼즐』), 예술가들이 머무르는 폐쇄된 기사라 마을(『쌍두의 악마) 등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EMC 멤버들이 활약하는 곳은 이성이 최대한 돋보일 수 있도록 직조된 낭만적인 공간이다. 탐정 에가미 지로는 그 불가해한 공간에 서서 순수한 논리만으로 범인을 지목한다. 이는 본격 미스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의 아름다움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여왕국의 성』에서, 에가미 지로의 입을 빌어 본격 미스터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유치하고 과도한 망상이야. 본격 미스터리는 그 망상을 유희로 바꾸지. … 한마디 덧붙이면 나는 유치하고 과도한 망상에서 태어난 소설이라고 해서 전부 유치하고 시시한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이 시대에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또 읽는 의미를 너무나도 정확히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저 ㅣ 시공사

20세기에 출간된 본격 미스터리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발리콘 가가 운영하는 유서 깊은 장례 회사가 위치한 미국 북동부의 시골 마을 툼스빌. 그곳에서 시체가 되살아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죽은 시체가 되살아난다는 규칙 아래 일어나는 살인 사건과 자신의 몸을 방부 처리해서 사건을 추적하는 이미 죽은 탐정. 놀랍게도 완벽한 미스터리이다.

 

 

 

 

십각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저 ㅣ 한스미디어

1987년 '신본격 미스터리의 축포'라고 불리는 아야쓰지 유키토의 전설적인 데뷔작.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선보인 '폭풍의 산장 플롯'과 수수께끼 건축가가 설계한 독특한 건축물, 육지와 섬으로 나뉘는 교차 구조를 통해 독자에게 지적 게임을 선포한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일본 미스터리는 하나의 분기를 맞게 된다.

 

 

 

 

데드맨
가와이 간지 저 ㅣ 작가정신

가와이 간지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라는 흔한 문구가 잘 어울리는 작가이다. <데드맨>은 제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상 대상 수상작으로 도쿄에서 일어난 여섯 건의 토막 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 가부라기의 활약을 그렸다. 초현실적인 사건을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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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면 안 되는 책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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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은 유난히 뜨거운 한 달이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소중한 주말을 포기하고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부터 주름이 굵게 새겨진 손까지 모두 같은 염원이었으리라. 나도 이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 어느 하루 굳게 마음을 먹고 책바를 닫은 뒤 광장에 나갔다. 손에는 조지 오웰의 『1984』가 들려 있었다. 

 

『1984』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분류되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빅 브라더'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언론이 도청, 감시 등의 키워드로 기사를 쓰면 늘 언급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84』라는 제목은 어떤 경로―심지어 하루키의 『1Q84』를 보아도―로든지 종종 접했을 것이며, 인용된 문장도 곳곳에 등장하기에 대략적인 줄거리도 어떨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 읽어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읽지 않았는데 마치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데자뷰 같은 책인 셈이다. 일단, 나부터 그랬다. 그런데 책을 펼쳐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그 느낌이 너무나도 생경해서 깜짝 놀랐다.

 

『1984』는 빅 브라더로 대표되는 소수의 당이 다수의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집 안에 놓인 텔레스크린이 쌍방향 송수신으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심지어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물론 사랑과 고독, 기쁨 등과 같은 감정은 절대 허락되지 않는다. 성욕은 죄가 되며, 섹스는 단순히 당에 봉사할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 당이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 중에 '이중사고'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2 2=4가 상식이지만, 때로는 2 2=5에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아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계에는 신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은 사람들의 사고를 제어하기 위해 지속해서 낱말들을 줄여나간다. '좋은(Good)'의 반대말은 '나쁜(Bad)'이 아니라 '좋지 않은(Ungood)'이 되고, '훌륭한(Excellent)'은 '더 좋은(Plusgood)'으로 대체된다. 사고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표현의 자유는 억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빈민가에서 구한 노트에 일기를 쓰며 나름의 저항을 하고자 한다. 다행히도, 집 안에는 텔레스크린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그는 일기를 쓰기 전에 승리주(Victory Gin)를 마신 뒤 승리담배(Victory Gigarettes)를 한 대 태운다. 그런데 승리주는 결코 맛있는 술이 아니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식사로 남겨둔 흑빵 한 덩어리 외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선반에서 '승리주(Victory Gin)'라는 흰색 라벨이 붙은 맑은 술병을 꺼냈다. 그 술은 쌀로 빚은 중국의 화주처럼 독한 데다 느글느글하니 구역질 나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었다. 윈스턴은 술을 찻잔에 가득 찰 만큼 따르자마자 쓰디쓴 약을 삼키듯 진저리를 치며 단숨에 마셔버렸다. (14쪽)

 

원래 진(Gin)은 주니퍼 베리(노간주열매)를 각종 허브와 함께 증류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 풍미가 깔끔한 편이다. 더불어 토닉 워터와 함께 섞어 마시는 진 토닉은 청량감을 주는 대표적인 칵테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승리주에는 명백히 진이라고 라벨에 표기가 되었음에도, 그 맛은 진이 가지고 있는 풍미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저 구역질 나고 역한 술로 묘사된다.

 

이렇게 아이러니한 상황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 번째, 원래의 진은 다양한 풍미를 가진 종류들이 존재한다. 어떤 진은 블루베리의 향이 짙게 배어 나오고, 어떤 진은 오이의 상큼함을 입속 가득히 느낄 수 있다. 즉 진은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승리주는 지극히 매뉴얼적으로 생산된 획일화된 술일 뿐이다. 즉 술을 마시는 순간에도 표현의 자유는 억제되는 셈이다. 두 번째, 승리주는 이름과 맛이 정반대로 받아들여지는 술이다. 승리 담배와 그가 거주하는 승리 맨션조차 반어적인 면은 마찬가지다. 조지 오웰은 이를 통해 『1984』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비판했다.

 

토요일에 이 책을 들고 나간 것은 내재된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글을 쓰는 이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발표가 나왔다. 윈스턴은 이 세상을 뒤집는 것이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절대다수의 일반 시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레시피

 

승리주는 존재해서도 만들어져서도 안 됩니다.

 

 

 


 

 

1984조지 오웰 저/정회성 역 | 민음사
『동물농장』과 함께 조지 오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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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 커피로 시작하는 겨울 아침, 방탄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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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한 겨울 밤을 함께할 문학 작품이라면 눈과 바람 얘기 가득한 북유럽 작가의 추리소설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북유럽은 꽤 흥미로운 곳이다. 인구 천만의 스웨덴을 제외하고 대부분 5백만 명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의 아르토 파실린나,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처럼 세계적인 작가들이 즐비하니 말이다. 아마도 겨울이면 몇 개월이나 해가 뜨지 않는 날이 계속되는 특별한 환경 때문일 것이다. 달빛과 별빛, 그리고 간혹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뿐인 곳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여러 권의 책 없이는 곤란할 것 같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덴마크와 1933년 덴마크에 합병된 세계에서 가장 큰 섬 그린란드를 배경으로 한다. 김연수 작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자라고 말했던 주인공 스밀라는 덴마크인 아버지와 이누이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어머니와 그린란드에서 보냈고, 어머니의 죽음 후 아버지가 있는 코펜하겐으로 왔지만, 눈과 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시선을 방해하는 것이 없는 곳에서 자란 그녀에게 도시와 도시 생활은 의미 없이 답답한 공간일 따름이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은 1년에 살인 사건이 한 건 일어날까 말까 하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다. 이런 도시에서 어느 날 이사야라는 이름의 아이가 창고 지붕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사야는 스밀라의 유일한 친구였다. 알코올 중독인 어머니와 살고 있는 이사야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이사야가 마지막으로 남긴 건 눈 위에 남은 그의 발자국이었다. 그린란드에서 자라 눈과 얼음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스밀라에게 그 발자국 모양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유일한 친구가 죽은 이유에 대해 알아야 했다.

 

좋은 추리소설이 가진 매력이라면 길고 지루한 겨울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하는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에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 작품은 특별한 매력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그린란드다.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때로는 배경으로 또 때로는 이야기에 깊고 진하게 녹아 있는 겨울 나라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우리는 상상하기 힘든 겨울과 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끝없이 펼쳐진 설원 위에서 눈의 결정 형태와 눈보라가 불어오는 방향으로 목적지를 가늠하는 스밀라의 모습에 내가 겹쳐진다.

 

커피에 버터를 넣어 다이어트용으로 주목 받은 방탄커피는 원어인 ‘Bullet Proof Coffee’의 뜻 그대로, 이 커피를 마시면 총알도 막아낼 만큼 강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커피는 실리콘 밸리 출신인 데이브 애스프리(Dave Asprey)라는 사람이 티베트 여행에서 현지인들이 야크 버터차를 마시는 모습에서 착안해 개발했다. 고열량 음료인 만큼 체온유지와 식욕 억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만들 때 주의할 점은 커피에 버터와 코코넛 오일이 잘 섞이도록, 가능하면 블렌더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섞이지 않으면 느끼한 맛이 강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식사 대용으로 아침에 방탄커피 한 잔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스밀라는 음식에 대해 단순하지만 철저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주로 고기를 먹을 것. 그것도 기름기 많은 고기. 채소나 빵만으로는 따뜻하게 살 수 없다. 그리고 항상 뜨거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계속 움직이려면 따뜻한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린란드만큼 혹독한 환경은 아니지만, 겨울이 두렵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두툼한 외투에 목도리와 장갑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집을 나서도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면 순간 아찔해진다. 그럴 때면 따뜻한 실내에서 가능하면 아무것도 안 하며 쉬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그런 호사는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기왕 겨울에도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면 몸과 마음의 준비를 더 든든히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며칠간의 눈썰매 여행을 앞둔 이누이트의 마음으로 말이다.

 

 



에스프레소 30ml, 무염 버터 1작은술, 코코넛 오일 1작은술


만드는 법
1.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무염 버터와 코코넛 오일 1작은줄을 넣고 거품이 생길 때까지 블렌딩해준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페터 회 저/박현주 역 | 마음산책
얼음과 숫자, 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 어린 소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이 책은 '추리소설'로서의 매력뿐만 아니라 미스터리와 로맨스, 스릴러, 문명 비판, 철학적 통찰 등 각 장르의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나아가 살인 스릴러물이면서도 철학적 치유를 끌어내는 균형감각은 이 소설의 놀라운 장점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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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 대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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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오래된 명제가 있다. 이 명제가 유효하다면 ‘인기 도서 목록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명제 역시 유의미하다 볼 수 있다. 예스24 서포터즈 9기가 재학 중인 대학교를 중심으로 2016년 대학 도서관 대출 순위를 정리했다. 대상 대학은 서강대학교, 인천대학교, 숭실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아주대학교다. 전공 서적은 대출 순위에서 제외했음을 밝힌다.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두 책은 대부분 학교에서 순위권에 들었다. 또한 『7년의 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등 소설 부문 스테디 셀러들의 강세도 눈에 띈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는 5개 학교 중 3개 학교 대출순위에 들어가며 작년의 인기를 이어갔다.

 

 

서강대학교 도서관 (2016년 1월1일~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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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에서는 만화책들의 강세가 눈에 띈다. 1위는 윤태호 작가의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가 차지했다. 지난 2014년 드라마로도 제작된 바 있는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는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웹툰 ‘미생’ 중)’ 등의 어록을 통해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2위 『슬램덩크:완전판 프리미엄』은 1992년 국내에 처음 출판된 이후 90년대생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봤을 명작 만화로 꾸준히 언급되어 온 작품이다. 총 24권으로 되어있는 장편작이기 때문에 다른 책에 비해 높은 대출 건수를 보였다.

 

3위에는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가 이름을 올렸다. 2010년부터 네이버에 약 2년간 연재된 『신과 함께』의 약진은 웹툰에 대한 대학생들의 높은 호감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현재 영화로도 제작 중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4위를 차지한 『제 3인류』는 저자 특유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로 새로운 인류 창조라는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작들은 저자의 모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큰 호응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위를 차지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1권 ‘(조선)개국’부터 20권 ‘망국’까지의 조선 역사를 만화로 담아낸 작품이다.

 

 

인천대학교 (2016년 1월 1일~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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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에서도 서강대학교와 마찬가지로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가 1위를 차지했다. 청년실업 등 팍팍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따듯한 위로가 담겨있는 책을 선호함을 알 수 있다. 2위는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만화』였다. 서양 고전 28권, 중국 고전 7권, 한국 고전 13권 등으로 나뉘어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기획된 책인 만큼 고전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3위는 채사장의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이 차지했다. 저자는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진행자답게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인문, 사회적 이슈들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통섭형 인재가 선호시되는 요즘의 트렌드가 잘 드러난 대목이다. 뒤이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각각 4위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추리 소설가로서 탁월한 구성력을 인정받아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가 건재함을 알 수 있다.

 

 숭실대학교(2016년 1월1일~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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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의 경우 2016년 한 해 동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들이 골고루 이름을 올렸다. 1위는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가 차지했다. 『미움받을 용기』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세계 3대 심리학자로 꼽히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열등감 이론을 통해 ‘미움받을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다. 숭실대학교 도서관에는 『미움받을 용기』가 총 23권이 갖춰져 있으나 현재 전부 대출중일 정도로 그 인기가 뜨겁다. 2위는 인천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채사장의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이름을 올렸다.

 

3위는 서강대학교와 인천대학교에서도 언급된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다. 그간 불건전한 매체라는 오명에 시달려 온 만화책들에 대한 인식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위는 게임 판타지 소설인 『달빛조각사』다. 현재까지 48권이 출간된 『달빛조각사』는 조사 대학 중 판타지 소설로서는 유일하게 대출 순위에 들었다. 5위는 인천대학교와 마찬가지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차지했다. 휴머니즘에 기반을 둔 서사에 추리 소설 기법을 가미해 젊은 층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해양대학교(2016년 1월1일~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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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학교 대출 순위 1위는 인천대학교와 숭실대학교에서 5위에 이름을 올린『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전세계적으로 약 50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이 작품은 최근 영화화가 결정되며 다시 한번 관심을 모았다. 2위는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이 차지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은 ‘지적 대화를 위한’ 이라는 슬로건에 알맞은 수준의 교양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3위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정의에 관한 사회, 철학적 화두들을 던진다. 4위는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이 올랐다. 가능한 넓은 범위의 지식을 숙지해야 한다는 대학생들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5위를 차지한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은 작품성과 흡입력을 동시에 인정받아 온 스테디셀러다. ‘201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7년의 밤』은 현재 영화로도 제작 중이다.

 

 

아주대학교(2016년 1월1일~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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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 대출 순위에서는 소설 부문 스테디셀러들이 대거 포함된 점이  인상적이다. 1위와 2위는 모두 채사장의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차지했다. 이는 통섭형 인재상을 강조하는 기업과 대학가의 추세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3위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다. 아내가 죽은 후 냉소주의자가 된 ‘오베’가 주변 이웃들과 교류하며 차츰 변화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4위는 다시 한번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 랭크됐다. 정유정 작가를 스타작가의 반열에 올린 『7년의 밤』은 작가 특유의 힘 있는 문장과 흡인력 있는 서사가 인상적인 추리 소설이다.


5위는 조사한 5개 대학 중 4개 대학 도서관 대출순위에 랭크인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2012년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이 작품은 단국대학교 서민 교수, 서울문화재단 주철환 대표 등 사회 명사들의 추천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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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왜 소설을 읽느냐고 물으면 안나 가발다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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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위대한 작가들을 보면서 내 인생의 행로를 정하려 했다. 미셸 투르니에를 좋아하던 시절에는 그이처럼 마흔세 살에 첫 소설을 발표하리라 생각했고, 움베르토 에코를 번역하던 때에는 그이처럼 마흔여덟에 첫 장편 소설을 내리라 마음먹었다. 작년에 두 분이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파리에 머물던 1월 18일에는 투르니에 선생의 부음을 들었고, 2월 19일에는 에코 선생이 암을 앓다가 숨졌다는 소식에 슬픔이 더욱 깊어졌다. 머리가 갈수록 어두워지고 내 글을 포함해서 모든 글이 기쁨보다는 혼란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다가 늦여름에 갑자기 쓰러져서 대수술을 받았다. 뇌에 커다란 종양이 생겨서 왼쪽 전두엽이 압박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문학의 길이 참 어렵구나 생각하던 차에 당한 일이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미약한 존재라는 점을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끼면서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보내고 뇌 센터의 집중치료실을 거쳐 일반 병실에서 가을을 보냈다.


온전히 정신을 되찾고 기억이 산뜻해진 뒤에 나이가 지긋하고 선량하게 생긴 간병인을 만났다. 그이는 나를 돌봐주면서 내가 번역한 어느 유명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간호사한테서 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병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고 했다. 사흘에 걸쳐서 그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그이가 물었다. “나한테 권하고 싶은 소설 없어요?” 내 머릿속으로 내가 번역한 책들이 번개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자랑스러움보다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도 위안이 없지 않았다. 나는 “안나 가발다!”라고 말했다. 그이는 그 이름을 적어서 병원 도서관에 다녀오더니 안나 가발다의 책이 한 권도 없다면서 실망을 표시했다. 


퇴원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오랜만에 스마트폰을 켰더니 처음 보는 전화번호가 떴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뜻밖의 소식을 알려왔다.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라는 소설을 자기네가 다시 출간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15년 전에 낸 책이라 저작권 문제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르고 있던 터라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절판된 소설을 되살리고 싶어서 ‘북로그컴퍼니’에서 다시 출판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었다. 책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소리를 들으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 책이 없어서 실망하던 간병인은 자기 집안에 일이 생겨서 떠나갔지만 나는 그이에게 책을 보내 주리라 다짐했다.


 내가 왜 병실에서 그 소설을 떠올렸을까? 안나 가발다는 내가 번역한 작가 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이는 어려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녀처럼 따뜻하고 깊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안나 가발다에게는 사람살이의 미세한 결을 포착하는 예리한 감성이 있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또한 그녀의 소설에는 작은 반전과 서스펜스가 도처에 감춰져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독자들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재미와 새삼스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 있고,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감동을 준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녀의 소설에서 읽은 짤막한 이야기들을 많은 벗들에게 들려주었다. 시간이 10년 넘게 흐르면서 그 이야기들의 원저자가 안나 가발다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예를 들어 나는 일상에서 ‘바게트 꽁다리’(『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에 나오는) 이야기를 떠올릴 때가 많다. 별것 아닌 얘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짧은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지 않았나 싶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일이 어떤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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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가발다의 매력은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에 그치지 않는다. 그다음에 나온 장편 소설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더 큰 감동을 안겨준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심취해 있다. 남성 4중창단을 선발하는 경연 프로그램인데, 출연자들이 부르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나 「카루소」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방송을 틀어 놓긴 했는데, 나는 방송이 끝나도록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책을 읽었다.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오페라 아리아나 이탈리아 가요 때문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12년 만에 안나 가발다의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을 다시 읽고 있었다. 내가 번역한 책이지만 그런 사실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그런 소설이다. <팬텀 싱어>를 만드는 이들은 조금 서운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때로는 소설이 음악 프로그램보다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안나 가발다를 직접 만나서 소설을 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그보다 진실하고 선량한 작가를 본 적이 없다. 그 뒤에도 우리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책에 사인을 하거나 메일을 보낼 때마다 상큼한 재치로 우정을 표시했다. 내가 프랑스에 가면 자기가 가이드를 맡고, 그녀가 한국에 오면 내가 가이드를 맡기로 했다. 세 번째 장편소설을 쓸 때는 프랑스에서 책이 나오기 전에 프랑스 출판사 ‘르 딜레탕트’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원고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 시절에 나는 움베르토 에코에 취해 있었다. 그녀가 세 번째 소설을 냈을 때 나는 에코 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번역하던 참이었다. 나는 시간 문제 때문에 도저히 번역할 수 없다는 뜻을 한국 출판사에 전했다. 9년 전의 일이다. 그로써 내가 참 좋아하던 작가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마음이 그토록 아름답고 문체가 깔끔한 작가와 멀어지게 되어서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의 ‘북로그컴퍼니’가 안나 가발다의 두 작품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을 다시 살려내는 모험을 감행했다.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다시 안나 가발다에게 소식을 보내어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 한다. 나는 안나 가발다가 다음에 낼 소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하나의 단편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로 21세기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그녀가 또다시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줄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책과 공연, 궁금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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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도 개성 강한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 9기가 선발됐다. 서포터즈는 마케터, 리포터, 플레이어로 나뉘어 예스24의 SNS(페이스북/인스타그램), 예스블로그, 웹진 <채널예스>에서 취재 및 홍보를 담당할 예정이다.

 

다양한 콘텐츠로 예스24를 다채롭게 만들어줄 9기 서포터즈 15명, 차준렬(아주대 경영학과), 김준호(가톨릭대 경영학과), 이다송(인천대 문헌정보학과), 이승미(서강대 심리학과), 이지영(한국외대 광고PR브랜딩), 정연주(고려대 산업경영공학부), 태혜송(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박선우(숭실대 철학과), 김민지(안양대 국문학과), 박서정(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신수인(중앙대 영어영문학과), 이창호(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김선빈(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안다연(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전미진(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극학과) 학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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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서포터즈 9기

 

반갑습니다!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 9기로 선발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마케터조


준호: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합격이었다. 예스24 서포터즈로 활동하게 돼서 말 그대로 너무 기쁩니다!


승미: 평소에 즐겨 이용하던 예스24를 마케팅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근거려요. 경쟁률이 엄청 높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서포터즈로 활동할 기회를 얻어서 영광이에요.


연주: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아 예스24에서 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걸 보고 반신반의하며 도전했는데, 선발되어서 너무 영광이었어요! 열정이 넘치는 분들을 만나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됩니다.


리포터조


선우: 책과 영화를 좋아합니다. 좋은 작품들을 글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마침 예스24 리포터로 활동하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예정에도 없던 팀장까지 맡게되어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수인: 늘 ‘독자’이기만 했는데, 이제는 예스24 서포터즈 리포터로서 ‘필자’의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기쁘네요.


플레이어조


다연: 평소에 예스24의 다양한 콘텐츠와 행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렇게 제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행사를 기획해볼 좋은 기회가 생겨서 기뻐요. 새롭고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진: 같은 대학생들과 함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또, 우리만의 톡톡 튀는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많이 됩니다. 두 마리, 아니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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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조(왼쪽부터 김준호, 이승미, 정연주, 이다송, 이지영, 차준렬. 태혜송 마케터는 아쉽지만 개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마케터는 어떤 카드뉴스를 제작해보고 싶나요?


20대 입장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최저시급으로 살 수 있는 책’이나 ‘곰신과 군인을 위한 콘텐츠’,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소개’ 등등 이런 카드 뉴스를 제작해보고 싶네요. 실제 경험과 저희 관심사에서 출발한 카드뉴스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큰 공감을 얻을 거 같아요.


리포터는 어떤 기획기사를 기획해보고 싶나요?


대학생의 시각에서 최대한 다양한 콘텐츠의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대학생들이 존경하는 작가님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기도 하고, 통학 지하철에서 읽을 만한 가벼우면서도 의미 있는 책을 추천할 계획입니다. 대학생인 만큼 대학생에 의한, 대학생을 위한 기사를 써보고 싶네요!


플레이어는 어떤 영상을 기획해보고 싶나요?


공연을 좋아하는 분들의 마음을 탕탕 저격할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영상을 기획해보고 싶어요. 또 많은 관객이 기분 좋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관객과 배우 모두가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쾌적한 공연 문화를 만들어가는 공연 에티켓에 관한 영상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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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터조(왼쪽부터 박선우, 김민지, 박서정, 신수인, 이창호)

 

 

널예스에서 자주 보는 코너가 있다면요?

리포터조


서정: ‘명사의 서재’요! 어쩌다 아는 사람이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보는 게 흥미로워요. 저, 관음증 환자 같나요?


창호: ‘김연수의 문음친교’를 즐겨 읽습니다. 글 자체가 재밌을 뿐 아니라 소설을 대하는 작가님 특유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아 좋습니다.


수인: ‘이주의 신간’을 자주 봐요. 읽던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굉장히 고민해요. 표지나 제목만 보고 골랐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 코너는 상세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책 선정에 있어 실패할 확률을 줄여줘요.


마케터조


준렬: ‘너는 왜 이 책을’을 즐겨봅니다. 지혜, 의정 두 분께서 나누는 대화가 친근하고 책에 대한 설명도 이해하기 쉬워서 마치 친구나 선배에게 추천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송: ‘남녀, 여행 사정’을 즐겨봅니다. 솔직한 여행담을 읽고 있으면, 저도 그곳에 가있는 것 같아 자주 보게 되는 칼럼이에요.


지영: ‘MD 리뷰대전’이라는 코너를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예술, 여행, 비즈니스 등 각 분야 전문 MD들이 엄선한 책을 소개받을 수 있거든요.


플레이어조


선빈: ‘윤하정의 공연세상’이요! 배우들의 못다 한 이야기, 캐스팅 비화,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등등 공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다연: 저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코너를 자주 봐요. 빨간책방 팟캐스트 방송을 좋아하는데, 바쁠 때는 채널 예스에서 정리해 준 칼럼을 대신 읽으면 필요한 내용만 확인할 수 있어 유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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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조(왼쪽부터 김선빈, 전미진. 안다연 플레이어는 아쉽지만 개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책과 공연은 여러분께 어떤 의미인가요?


플레이어조


선빈: 배우들의 호흡, 텍스트가 발화되는 과정, 조명의 일렁거림, 그리고 두 번 다시는 결코 같은 공연을 만날 수 없다는 라이브 무대의 특징들은 언제나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줘요.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다연: 공연이 진행되는 중에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잠깐 머무르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저 자신으로 존재할 땐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일, 겪을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어서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미진:제게 공연이란, 제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입니다. 그런 걸 찾았다는 게 굉장히 기뻐요. 저는 한 마디로 wonderwall!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네요.


마케터조


준호: 책은 ‘대화’라고 생각해요. 대화를 나누면 대화하는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잖아요? 작가가 책에 쓴 글을 통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은 대화라고 생각해요.


승미: 저에게 있어 책은 스스로 특정한 사고에 갇혀 생각하지 않도록, 다양한 생각 거리를 제공하는 소중한 동료 같아요. 책 덕분에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해나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혜송: 책은 ‘처방전’과 같아요. 슬프거나 지칠 때, 행복하거나 즐거울 때 어느 날이나 감정과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죠!


리포터조


창호: 책은 ‘꿈’입니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환상적 존재이자, 다른 이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는 희망적 존재이기 때문이죠. 작가라는 제 꿈 역시 책을 통해 생긴 만큼, 책은 제게 꿈과 같은 존재입니다.


민지: 제게 책은 ‘위로’입니다. 책은 읽는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책이 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아요.


수인: 책은 저에게 ‘일상의 한 부분’이에요. 특별한 이유 없이도 늘 시간 날 때 찾게 되는 그런 존재요.

 

마음 속에 항상 품고 있는 책 속 구절이나 명대사가 있을까요?


마케터조


승미: 허지웅의 『친애하는 적』에 나온 구절이요. ‘어른스러운 길이란 건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선택과, 이후 어른스럽게 책임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이 구절을 마음에 새겨두고 살아가려 합니다.


지영: 『데미안』이라는 책에서 나온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대사를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현재 사는 세계를 깨고 나와야 넓고 커다란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가 감동적이었어요.


연주: 백석 시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에서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구절을 지치는 순간마다 곱씹어보곤 합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굳고 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갈매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하게 됩니다.


플레이어조


다연: 좋아하는 대사가 매번 바뀌어서 하나를 정하기 어렵지만, 요즘은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의 ‘우리는 죽은 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죽음이 천 명의 죽음보다 많은 것을 얘기한다.’가 좋아요.


미진: <위키드>의 명대사, ‘Because I knew you. I have been changed for good.’!


리포터조


선우: 이성복 시인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때로 내 논리를 내 삶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쓴 글들을 오래 들여다본다. 논리와 삶의 간극 사이에 내가 있다. 나는 ‘지향’이다.’


창호: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발견한 구절이요. ‘작은 일들의 축적이다. 단순한 말이나 약속뿐만이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정성껏 쌓아가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으로서 고민사항은 무엇인가요?


리포터조


서정: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왜 내 몸뚱아리는 하나라서 한 번에 하나의 선택만 해야하는 거람.

 

선우: 뭐 하나 정해진 것 없이 흔들리는 것이 청춘의 낭만이라지만, 가끔은 평온함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매학기마다 기숙사가 떨어지면 어쩌나, 월세집은 비쌀 텐데 같은 기본적인 주거나 끼니 걱정을 하는 게 지칠 때가 있습니다.


민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경계에 대해 고민해요. 아무래도 취업을 앞두니 어떤 길이 옳은 선택인지 고민이 되네요. 아마 많은 대학생이 저와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플레이어조


선빈: 대학생이라는 건 단순히 역할이나 소속의 의미를 넘어서 다양한 방황 속에서 공부하는 때를 의미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흔들리는 시기 속에서 나의 오늘과 내일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늘 고민해요.


미진: 요즘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것들에 슬픔을 느끼거나 절망을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런 것들을 풀어나가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요. 그게 지금 제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이런 것들을 한 번 소리 높여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마케터조


준렬: ‘어떻게 하면 편협 되지 않은, 올곧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성인이 된 후로 사회에는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복잡함 속에서 저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는 것도 주관을 가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죠.


다송: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청춘의 문장들에 나온 구절처럼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무언인지 찾고 있어요.


혜송: 현재 내가 걷고 있는 길에 대한 불안감. 하고 있는 공부가 옳은 것인지,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뛰어가야 하는 건 아닐지, 누군가에 휘둘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인생과 삶의 본질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예스24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마케터조


‘Land of YES’. 꿈의 나라 라라랜드, 이제 예스랜드에서 꿈을 이루어 보자! 도서, 영화, 공연 20대 청춘의 시작은 예스랜드에서!


리포터조


‘확성기’! 직접 대형서점에 갈 수 없는 지방에 사시는 분들까지도 YES24를 통해 화제의 신간부터 베스트?스테디셀러까지 전부 알 수 있으니까요.


플레이어조


‘24시 편의점’. 책, 연극, 뮤지컬, 공연, 영화, 쇼핑까지! 정말 없는 게 없어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스24는 꼭 문화계의 24시 편의점 같아요. 역시 출출할 땐, 예스24가 아닐까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특별 기고] 박맹호 회장이 남긴 책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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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맹호 민음사 회장

 

당신과 함께한 세월이 스물두 해, 오랜 지병에 예정된 부고였는데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탓인지, 할 말이 아직 목을 잘 넘지 못하네요. 마음의 등불이 꺼진 것 같은 막막한 어둠에 감싸여 있을 뿐입니다. 반딧불이처럼 드문드문 당신이 남긴 말들이 반짝거릴 뿐이네요.

 

소질에 맞는 일을 찾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업적을 쌓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당신은 ‘출판의 신’과 같았죠. 당신이 책을 만드는 일은 누에가 실을 뽑아 비단을 잣는 일과 별 다를 게 없었어요. 모든 게 더없이 자연스러운데, 결과는 눈부신 경우가 아주 많았죠. 젊은 날 당신이 위대한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는 대신에 위대한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는 출판인이 되기로 한 것은 한국출판의 역사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당신은 작가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나오면 불쑥 말을 꺼내곤 했죠. “그거 참 재밌네요. 한 번 해 보세요.” 편집자들과도 별 다르지 않았죠. 당신과 일하는 동안 기획서 같은 것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언제나 방으로 찾아가거나 자주 있었던 식사 자리에서 기회를 잡아 말하면 되었죠. “이런 책을 내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당신은 흔쾌히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죠. “그 책 새로운 거야. 그러면 한 번 해 봐.” 어쩌면 당신 머릿속에는 책들의 하늘지도가 들어 있어서, 장차 별이 될 책들로 채워지기를 항상 기다리는 듯이 보였죠.

 

사람은 배움에서 씨앗을 이루고, 활동에서 자기를 이루는 법입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사람들이 자주 겪듯, 당신과 함께 편집자로 일하는 것은 경이로움의 연속이었죠. 편집이란 이토록 힘차고 아름다운 일이로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죠. 당신은 작은 성취에 안락해하는 편집자를 독려하고, 실의에 빠진 편집자를 부지런히 격려했죠. 파우스트는 이 지상에는 아직도 위대한 일을 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과연 그 화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때때로 회사가 성장의 어려움에 주춤거리고, 모두가 불황을 핑계 삼을 때 당신은 단호히 말했죠.

 

“내가 출판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출판에 불황이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하지만 인간은 책 없이 도저히 살 수 없으니까, 이렇게 어려울 때야말로 사람들은 책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어. 그러니 과감하게 새로운 작가를 찾아 새로운 책을 기획하게. 자금이 부족하면, 내가 사재를 털어서라도 마련해 놓을 테니.”

 

1966년 민음사를 창립한 이래, 당신은 단 한 차례도 멈추지 않고 책의 전위를 향해 움직였죠. 당신이 기획하고 출판한 민음사의 책들은, 근대화와 함께 시대의 주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민들의 지적 토대를 이룩해 주었습니다. 한국경제의 발전 과정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지식과 정보가 필요할 때마다, 높아진 생활수준에 걸맞게 문화적 세련에 대한 갈증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죠. 세계시인선, 오늘의시인총서, 오늘의작가총서, 이데아총서, 대우학술총서, 김수영문학상, 오늘의작가상 등 당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책들은 그대로 한국의 교양을 구축했고, 우리의 정신에 질적인 깊이를 마련해주었죠.

 

당신이 편집에 과감하게 가로쓰기를 도입하기 전에는 세로쓰기로 본문을 조판하는 일이 아주 흔했죠. 세계시인선을 세상에 내놓을 때 당신이 가로쓰기를 시도하고, 이 시집이 세상에 널리 퍼지면서, 비로소 단행본 출판의 역사에 한 분기점이 생겨났습니다. 한국출판이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옮겨간 일은 단지 본문 편집의 변화만을 뜻하는 게 아니죠. 이전까지 일본을 통해서 세계와 접촉했던 한국 출판의 한 시대가, 즉 일본어를 통한 이중번역으로 출판의 질을 담보하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입니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온 한국사회의 지적 역량이 폭발한 일대의 문화적 사건에 해당합니다.

 

세계시인선의 본문은 원래 시가 왼쪽 면에, 한국어 번역이 오른쪽 면에 서로 마주보는 식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이 대면 편집은 이제 개화기 이래로 지속되어 온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우리 눈으로 직접 세계를 보겠다는 중대한 선언인 셈입니다. 민음사 편집자들이 지금까지 몇 차례 세계시인선을 개정해 출판하면서도 대면 편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문화적 상징의 무거움을 존중하고, 앞으로도 이 일을 잊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그에 걸맞은 일을 계속해 갈 것이라는 다짐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편집자는 편집으로 말하는 법이니까요.

 

“인간은 책으로 이루어진다. 책은 인간의 유전자에 해당하므로,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시대든 반 발짝만 앞서나가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좋은 책을 출판하면 독자들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당신은 항상 이야기했죠. 제가 입사한 1993년 무렵, 책의 세계는 거대 담론 중심의 인문사회과학 시대는 저물고, 여가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일상의 의미를 발굴하고 문화의 다양성이 폭발하며 세계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당신은 기민하게 시대를 감지한 후, 편집부에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하도록 주문했습니다. 여행자유화로 인해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고, 인터넷이 막 도입되어 전 세계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된 직후였죠. 한국과 세계를 갈라놓았던 장벽들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높이의 교양을 갖추는 것이 시급할 때였습니다. 그 후에 연이어서 어린이책의 ‘비룡소’, 장르픽션의 ‘황금가지’, 과학책의 ‘사이언스북스’ 등이 반 발짝 빠르게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모두 각 분야에서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랐죠.

 

“표지 좀 가져와 봐.” 당신이 가장 열렬하게 챙겼던 것은 언제나 책의 장정이었습니다. 주간 체제가 도입되어 편집 전체를 책임지고 맡긴 후에는 사전에 무슨 책을 내고 말지는 자잘하게 따지지 않았으나, 어떤 책이든 장정만큼은 언제나 아주 세밀하게 챙겼습니다.

 

당신은 말했죠. “서점에 가면 허접스러운 책 모양새가 거슬렸어. 언젠가는 이를 혁신하고 한국의 책을 명품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었지.” 이 때문에 당신은 항상 북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정병규 선생을 편집자의 길에서 디자이너의 길로 인도하고, 꾸준히 일을 맡겨 우리나라 북 디자인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도 당신의 중요한 업적입니다. 당신 덕분에 민음사의 책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독자들 눈에 책이 하나의 예술품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자는 의식을 당신이 한국출판에 만들어냈습니다. 정보화 시대가 깊어지면서 책의 물성은 더욱 소중해지고 있습니다. 정말 이를 선견지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오늘날 한국출판의 많은 지점이 당신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책에 대해서라면 당신이 평생 한 순간도 치열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저승에도 출판이 있다면, 아마 당신은 거기에서도 분명히 작가를 발굴해 책을 만들고 계실 겁니다. 다시 만나서 책을 이야기할 때까지 오로지 영면하소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금주의 책] 교양 만화로 읽는 로마 제국 1,0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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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 갈 일이 있었다. 서울과 부산 간 소요 시간이 2시간 40분이던 시절 이후로는 오랜만에 타보는 KTX였다. 놀랍게도 그 시간은 2시간 10분 대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올해 6월부터는 서울-부산 무정차 프리미엄 열차를 도입, 1시간 50분대로 운행 시간을 단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차 안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반갑지 않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2시간 내외는 교양 만화 두세 권 정도밖에 읽을 여유가 안 되는 시간이니까.


부산 가는 여정에 『만화 로마사』 1~2권을 가방에 넣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 읽기에 딱 적당한 분량이다. 책은 ‘아직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저자 서문으로 시작한다. ‘에이 무슨 소리, KTX는 겨우 서울과 부산을 오갈 뿐이라고, 로마까지 못 가는데?’라는 일차원적인 의문이 들 찰나에 기차와 로마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바로 책에 등장했다.

 

미국 철로의 폭은 4피트 8.5인치(143.5센티미터)다. 5피트도 아니고 4피트 50인치도 아니고 하필 4피트 8.5인치인 이유는 철도의 종주국 영국의 표준에 따랐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영국은 왜 이 어정쩡한 수치를 표준으로 삼았을까?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조지 스티븐슨이 당시 영국 탄광에서 운용하던 마차용 레일 규격을 표준으로 삼았다는 것이 정설인데 탄광뿐만 아니라 영국의 모든 마차 바퀴가 같은 폭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마차 바퀴의 간격이 표준화된 이유가 바로 로마 때문이었다. 오래전 로마가 영국을 침공했을 때 로마군은 영국 각지에 도로를 건설했고 그 위로 전투용 마차들이 달렸다. (1권, 33~34쪽)

 

기차만이 아니라 로마가 인류에 끼친 영향은 광범위하고 강력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믿는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을 발판으로 퍼졌고, 로마법은 여전히 전 세계 법률 체계를 이루는 근간이다. 무엇보다 유럽과 미국이라는 세계 역사를 주도한 두 축은 로마제국의 후예다.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EU를 가능하게 한 게 로마제국이라는 통합된 역사적 경험 덕분이고, 미국은 유럽 이민자가 대서양을 건너 만든 나라다.


로마가 한국에 끼친 영향은 어떨까. 직접적인 영향은 그다지 많지 않을 듯하다. 한국은 근대 이전에는 주로 중국의 영향을,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의 영향을, 해방 이후에는 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로마라는 곳은 한국과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멀다. 그럼에도 로마를 주제로 한 책은 꾸준히 나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10년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과 데오도르 몸젠의 『몸젠의 로마사』등이 꾸준히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책이 소개되었지만 일반 독자가 로마사에 다가가기가 쉽지는 않다. 조선사, 고려사만 해도 벅찬데 로마는 광대한 영토를 1,000년 동안이나 다스렸다. 비잔틴 제국까지 하면 거의 2,000년이다. 황제, 장군, 사상가는 얼마나 많겠으며 전쟁은 얼마나 잦았을까. 수많은 고유명사가 다 한국어가 아니라 라틴어일 텐데, 기를 쓰고 외워도 시원찮을 판이다. 실제로 분량이 엄청나게 방대하다. 로마제국의 몰락만을 다룬 『로마제국 쇠망사』가 총 6권ㆍ4,150쪽이다.

 

그래서 『만화 로마사』의 등장은 반갑다. 『밀가루 커넥션』의 저자인 이익선 만화가가 그린 이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로마사를 만화로 표현했다. 처음 그가 로마사를 그리기로 결심한 때는 2005년. 로마사가 워낙 방대하기에 자료 조사에 많은 시간을 썼다. 특히나 로마 시대의 의상, 무기, 탈것 등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고증은 필수. 두 권이 나오는 데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수밖에 없던 이유다.

 

모든 역사 기술에는 서술자의 사관이 들어가는 법, 『만화 로마사』도 마찬가지다. 이 시리즈는 로마제국의 역사를 귀족 계급과 평민 계급의 대립으로 파악한다. 귀족 계급이 잘했다, 평민 계급이 잘했다라는 평가는 유보하고 이 둘 사이에 어떤 이해 관계가 있었고 어떻게 충돌했는지를 기술하려 했다. 한편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는 지배자ㆍ영웅 위주의 서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 시리즈를 감수하고 주석을 쓴 임웅 박사 역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리더십을 중시했고, 그러다 보니 민중은 언제나 영웅을 추종하는 존재로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다.(1권, 13쪽)”라고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만화 로마사』『로마인 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시각으로 로마사를 바라본다고 할 수 있겠다.

 

1권이 총론 격인 로마제국의 성격과 역사적 의의를 다룬다면 2권부터는 귀족 계급과 평민 계급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평민의 정치 참여 요구, 평민의 군대 소집 거부 등 로마 평민을 기술하는 분량이 많다. 그렇지만 로마사는 본질적으로는 영웅 중심주의 서술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석이 있다. 건국에서부터 성장, 몰락까지 로마제국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지중해 변방 세력에 불과했던 로마가 마케도니아, 카르타고 등 강자를 누르고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는 이야기를 ‘영웅’이라는 단어 없이 서술하는 게 가능할까? 귀족도, 평민도 영웅인 곳이 로마제국의 실체일 테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한 역사를 지금에 비유하자면, FIFA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가 우승하는 사건 정도다. 즉,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뜻인데 어떻게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로마를 이끈 건 실용이었다. 자민족 타민족 따지지 않고 타 문화도 기꺼이 포용할 줄 알았다. 로마가 받아들인 그리스 문화나 그리스도교가 모두 원래부터 로마인의 문화는 아니었다는 게 그러한 방증이다. 사회 내 계층 이동도 활발했다. 귀족 계급과 평민 계급이 존재했으나, 하층민 출신 황제가 여럿 있을 만큼 계층 이동이 개방적이었다. 사실 이러한 개방성이 로마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이후에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원나라도 비슷한 성향을 보였고, 초강대국 미국도 명분으로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복잡한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다양함이 공존할 수 있는 개방성은 필수다.  

 

로마제국의 이러한 개방성을 다루는 시리즈답게, 『만화 로마사』는 호탕하게 웃긴 대목이 꽤 자주 등장한다. 허무 개그나 비속어, 신조어 등은 혹시 초등학생을 둔 엄마나 아빠가 교육 용도로 샀다면 거북할 수도 있겠다. 반대로, 좀 더 표현 수위를 높여 최대한 재미있는 만화를 기대하는 독자도 있을 테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이 시리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준다면 이익선 만화가가 반영해서 톤을 조절하지 않을까 싶다.   

 

끝에 와서 고백하자면, 이 책을 산 이유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두 권이라는 분량 덕분이다. 2권이 완결인 줄 알고 구매했다. 아니었다. 앞으로 몇 권으로 완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점은 500년 역사를 쓰는 데 두 권이 필요했다는 사실. 로마제국 중흥에 관한 이야기는 더 많을 테니 앞으로 최소한 세 권 정도는 더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서울-부산 왕복 기차 안에서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니 이게 어딘가.

 

 

더 읽는다면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김호동 저 | 돌베개

세계사에 존재한 제국을 꼽으라면 흔히 로마제국과 몽골제국이다. 로마에 비해 몽골제국은 군사적인 면에서만 언급되는 경향이 있다. 센 힘을 바탕으로 정복 전쟁을 펼쳐서 광범위한 영토를 확보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열등했다는 식의 이해다. 김호동 교수는 이러한 이해가 유목민이 세운 나라를 향한 정주민의 편견이라고 본다. 실제 몽골제국은 개방성을 존중하여 그 시기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다. 몽골제국 시기 유라시아를 꿰뚫는 교통ㆍ통신망이 정비되었다. 언어 간 교류가 활발해 통번역 작업도 이 시기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몽골제국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사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새로 쓴 500년 고려사
박종기 저 | 푸른역사

한국사에서 제국의 역사를 찾으라고 한다면, 야사가 아닌 정사에서는 그 존재를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대신 로마제국처럼 개방적인 사회를 찾는다면, 고려 정도가 답이 아닐까 한다. 고려사는 여러모로 로마의 개방적인 면모를 닮았다. 외부 세계와 활발히 교류했고 외국인을 인재로 등용했다. 중앙과 지방 문화가 공존했으며, 유교만이 아니라 불교ㆍ도교 등 다양한 세계관이 경합했다. 물론, 어느 사회나 구린 구석은 있다고 고려 시대에도 부조리는 존재했다. 그건 로마도 마찬가지.

 

 

Paint it Rock
남무성 저 | 북폴리오

교양 만화(?) 중에 참 웃기고 정보도 많이 담은 시리즈다. 부제를 단다면 '아재개그와 함께 읽는 록의 역사'라고 붙여도 될 정도로 곳곳에 유머가 가득하다. 글도, 그림도 재밌다. 그 어떤 역사라고 평범한 이야기가 있을까. 록의 역사도 로마 제국사 만큼이나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2~3시간 이동할 때 읽고 싶다면, 감히 추천하고 싶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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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 더 알고 싶은 페미니즘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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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는 여성혐오 범죄가 벌어진 뒤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연령의 여대생들은 페미니즘을 알기 위해 어떤 책을 읽을까.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가 페미니즘을 알고 싶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책을 추천했다.

 

 

고전에서 만난 페미니즘

 

한 시간 이야기
케이트 쇼팽 저 | 요타

"free, free, free!" 사회적으로 억압된 여성들을 위한 여성 해방 목소리가 나온 것은 비단 오늘날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세기 여류작가들이 가정에서만 국한된 채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던 여성의 삶에 관한 소설을 출간했다. 당시 여성의 삶에 관한 서술을 살펴보면 가정에서 여성은 남편에게 직접적인 억압이나 폭력, 무시 등을 당한 게 아니다. 오히려 부유한 가정환경과 남편의 넘치는 애정, 보호 속에서 안락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여성 본인에게는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여성은 남편과 가정에 속한 수동적인 부속물이 아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 말라드부인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슬퍼하는 듯하다 "free, free, free!" 라고 외치며 어딘가에 속한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찾고 기뻐한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소설을 통해 여성에 관한 섬세한 감정 묘사와 당시 여성들이 가정 속에서 느꼈던 억압,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의 반전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권한다.

 

 

누런벽지
Gilman, Charlotte Perkins/ Copland, Craig Stephen | Createspace Independent Pub

집 안에만 머무르며 하얀 옷을 입고 집안일, 남편, 육아에만 신경 썼던 'the Angel in the House' 로 묘사되는 19세기 여성과, 그 인습에 적응하지 못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 두 가지를 소재로 다룬 책이다. 여주인공은 집안에 누런 벽지 뒤에 사람이 갇혀있다고 믿으며 벽지를 세세하게 관찰하고, 결국은 벽지 뒤 사람과 본인을 동일시하며 미쳐간다. 누런 벽지는 여성과 세상을 단절시키는 오래된 인습과 제도를, 벽지 뒤 여성은 그 속에 갇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19세기 여성을 의미한다. 또한 이 소설 속에는 여주인공의 시누이가 등장하는데, 시누이와 여주인공을 비교해서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시누이는 같은 여성임에도 당대 인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억압된 사회에 안주한 채 살아간다. 오히려 오빠의 부탁으로 여주인공이 집안에 잘 갇혀있는지 감시까지 한다. 두 여성 인물을 통해 동시대 인습에 굴복하는 여성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미치고 마는 비운의 여성이 존재했던 19세기 상반된 사회현상을 엿볼 수 있다.

 

 

3기니
버지니아 울프 저/태혜숙 역 | 이후

페미니즘을 논하면서 버지니아 울프를 빼놓기는 어렵다. 그녀의 여러 작품 중 3기니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에세이로써 1900년대 여성의 역사를 낱낱이 보여준다. 3기니가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기부할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당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전쟁, 교육, 직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남성에게 여성은 교육과 출세의 기회를 빼앗겼는데 교육받은 남성들이 사회에 공헌한 것은 무엇인지 물으며 서구의 남성중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려서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자라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해서는 남편과 가정 안에만 머무르는, 한 평생을 남성의 전유물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지적한다.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모습은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1900년대부터 오늘날까지도 발견된다. 그렇기에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여전히 남성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주적인 삶을 위해 추천한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나혜석,에밀리 디킨슨 등저/공진호 편역 |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나는 사람이라네 // 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 // 자녀의 어미 되기 전에 // 첫째로 사람이 되려네" -나혜석, 「노라」 중 최근 MBC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나혜석'의 이야기가 방영되어 그녀의 작품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게 「이혼 고백장」을 발표한다. 1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나혜석의 시는 투박하고 솔직하다.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작품들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도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으로 사는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중반부까지는 우리나라 여성 시인들의 작품이, 후반부에는 외국 여성 시인들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나혜석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성시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현대서 만난 페미니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이민경 저 | 봄알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원래 다른 세계에 살았습니다. 처음부터 다르게 취급되었고 다른 말을 들었고 다른 기대를 받았습니다. 아주 어릴 때에야 남자고 여자고 다 같은 친구로 어울려 놀았을 수도 있지만, 그때도 자각을 못 했다 뿐이지 차별은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59쪽) '왜 이렇게 예민해?', '역차별이 더 문제던데?' 페미니스트로서 대화할 때 돌아오는 허무한 대답들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현대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화두가 되었지만, 남성은 물론 여성까지 '여성혐오'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많다. 가부장제, 데이트 폭력 등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건들에도 무감각하다. 저자는 일상 속에서 겪을 법한 일들을 언급하며 독자들과 서로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한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대화법을 알려준다. 말미에는 페미니즘에 관한 추천자료를 소개하고 있어 페미니즘을 더욱 깊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
에머 오툴 저/박다솜 역 | 창비

많은 여성은 어렸을 적 분홍색 옷을 입고, 자동차 장난감이 아닌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며 자랐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며, 제모를 한다. 왜 여자 아이들은 분홍색 물건을 좋아하고, 남자 아이들은 파란색 물건을 좋아하는 것일까?
저자 에머 오툴은 ‘여자다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젠더’라는 역할을 맡아 연기하며 살아간다고 주장한다. 에머 오툴은 ‘여자답다’라는 말을 파괴하기 위해 겨드랑이털 기르기, 가족 모임에서 집안일에 손대지 않기 등 여러 시도를 한다. 영국의 TV 프로그램 <디스 모닝>에서 제모를 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공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쾌한 저자의 이야기로 가득찬 이 책은 ‘여자다움’에 대한 의문이 있는 페미니즘 입문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저자의 실천적 페미니즘은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도전이 된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저 | 민음사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132쪽) 딱딱한 이론서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추천한다. '졸업-취직-결혼-임신-퇴직-육아', 한국에서 수많은 여성이 거쳐 가는 길이다. 소설의 주인공 82년생 김지영도 마찬가지로 이 길을 걷는다.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며 '나'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간다. 밤늦게 귀가하는 길에 낯선 남자의 인기척을 느끼는 이야기, 출산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는 이야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이 책을 읽고 깊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김명남 역 | 창비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14쪽) '페미니스트'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에게 '페미니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주변에서 '페미니즘'이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며, 남성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의문이 들거나,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저자는 '여성과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라는 사실에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보다는 '사회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여자아이에게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라.', '몸을 가려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얇고 가벼워 휴대하기 좋다. 또한 저자의 이야기가 대화하듯이 전달되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싶다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면, 남녀 가릴 것 없이 권하고 싶다.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퍼니 스탈 저/고빛샘 역 | 민음사

30대 후반을 달려가는 미국 여성이 결혼 후 달라지는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며, 다시 학부생으로 돌아가 후배들과 함께 페미니즘 고전 연구 수업을 청강하는 이야기이다. 지은이가 미국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 세계 여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에게 추천한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 결혼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갈래 길에 선 '우리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결국 가정을 택한 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는다. 30대 여성의 하루를 훔쳐보는 듯한 익숙한 일상에 대한 서술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부터 보부아르, 존 스튜어트 밀, 베티 프리단까지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와 유익함 모두를 선사하는 책이다. 보다 쉬운 설명과 일상의 언어로 페미니즘 고전을 접해보고 싶은 자에게 페미니즘 입문서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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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북유럽 범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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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판권 시장의 블루칩, 북유럽 범죄소설

 

2000년이 몇 년쯤 지났을 때였나? 북유럽 스릴러, 스칸디나비아 누아르, 노르딕 누아르 등 부르는 이름도 각양각색인 작품들이 전 세계 미스터리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 무심코 지도를 들춰본 적이 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모두 모국어가 있고, 인구는 채 천 만을 넘지 않는다. 나름의 범죄소설 전통과 60, 70년대 ‘마르틴 베크 시리즈’(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외 부부의 스웨덴 경찰 소설) 같이 성공한 작품들도 있지만, 이들 출신 작품들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영어권 시장에서 어떻게 인기를 끌 수 있는지 당시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방아쇠, 아니 핵폭탄 정도의 위력을 가진 작품이 있었다. 스웨덴의 저널리스트 스티그 라르손의 유작 ‘밀레니엄 3부작’은 출간 직후인 2005년부터 북유럽, 유럽, 미국, 아시아 시장을 차례차례 점령했고 5,000만 부 이상 팔렸다. 유지를 이어받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최근 4번째 작품을 발표하긴 했지만, 스티그 라르손이 살아서 10권으로 완결됐다면 얼마나 더 팔렸을지 짐작할 수 없다. 아무튼 이 ‘해리 포터’급 작품은 전 세계 미스터리 시장을 완전히 뒤흔들었고, 북유럽 범죄소설은 이후 전 세계 판권 시장에서 블루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북유럽 범죄소설에 큰 관심이 없던 타지의 독자들이 그림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의 이면을 되짚게 된 건 그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복지 제도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창립된 1899년부터 끊임없이 지속돼온 투쟁의 결과물이다. 북유럽 범죄소설들은 그 거친 흔적과 어두운 이면의 그늘을 드러내려 한다. 스티그 라르손이 평생 몸을 숨기며 싸워왔던 스웨덴 극우파의 존재는 그 의미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기존의 스릴러와는 다른, 범죄를 통해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새로운 화법 그리고 특유의 어두운 정서는 시장에 신선한 반향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유럽 대륙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더해져 북유럽 범죄소설은 하나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된다.

 

2015년 10월, 67세의 나이로 최근 생을 마감한 헨닝 망켈은 국내에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들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나 카린 포슘, 아이슬란드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보다 손위인 작가이다. 언어권 밖에서 보면 스티그 라르손은 북유럽 범죄소설의 위대한 선구자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인 셈이다. 헨닝 망켈의 대표작 ‘발란데르 시리즈’는 1991년부터 2009년까지 (마지막 해에 나온 한 권을 제외하면) 매년 한 권씩 발간돼 총 10권으로 마무리됐다. 이 시리즈는 45개국에 소개됐고 누적 3,00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인권 운동, 연극 연출, 순수 소설, 청소년 문학으로도 이름 높은 헨닝 망켈은 ‘발란데르 시리즈’가 자신의 전부인 양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하지만 그 성공 덕분에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고, 북유럽 범죄소설 또한 보다 선명한 형태를 띠게 됐다.
 
‘발란데르 시리즈’는 스웨덴의 작은 도시 위스타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경찰 소설이다. 아프리카에 머물던 헨닝 망켈은 금융 위기로 급격한 경제 혼란을 맞았던 1990년대 스웨덴으로 돌아와 발란데르 시리즈를 집필했다. 그는 범죄소설은 사회를 관찰하고 비추는 도구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시리즈 내내 복지 국가라는 화려함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발란데르는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결혼에 실패하고, 딸 하나가 있고, 가족과의 관계는 여전히 껄끄럽다. 총기 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당뇨병에 걸려 인슐린 주사가 필요하다. 최신 수사 기법은 따라잡을 수 없고, 특별한 능력이라고 해봐야 오랜 경찰 생활로 잘 단련된 직감뿐이다. 발란데르는 사건 주위를 끈질기게 맴돌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건의 실체로 향한다.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눈에 띄게 늙어가는 발란데르는 전혀 특별하지 않기에 독자들에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서는 주인공이다.

 

노란 유채꽃 밭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자살한 소녀.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한 색의 대비로 시작되는 사이드 트랙은 1995년 작품으로 시리즈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2001년 골드 대거 수상작이자, 2008년 BBC 드라마 ‘월랜더’에서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그 에피소드의 원작이기도 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광경을 목격해 충격에 빠진 발란데르 앞에 쉴 틈도 없이 사건이 발생한다. 머리 가죽이 벗겨진 채 참혹하게 살해된 전직 법무부 장관. 잔혹한 형태의 사건은 미술상, 장물아비로 이어지며, 발란데르를 포함한 수사관들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쇄살인과 마주하게 된다. 자살과 이민자 착취, 권력의 부정으로 얼룩진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발란데르는 중년의 고달픈 삶과 한없이 부조리한 현실에 조금씩 지쳐간다.

 

최근 헨닝 망켈의 마지막 저작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출간됐다. (서지 정보 상 작가는 ‘헤닝 만켈’이지만 같은 작가이다.) 2014년 불치 암을 진단 받은 작가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글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헌신해온 삶의 궤적과 발란데르를 겹쳐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사무엘 비외르크 저 | 황소자리

2013년에 출간된 노르웨이 작가 사무엘 비외르크의 데뷔작. 다소 무거웠던 그간의 북유럽 범죄소설과는 달리, 영어권 스릴러의 날렵함과 선정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라는 푯말을 들고 나무에 매달린 채 죽은 여자아이. 베테랑 수사관인 홀거 뭉크와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형사 미아 크뤼거가 다시 팀을 이뤄 연쇄 살인 사건에 도전한다.

 

 

 

목소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저 | 영림카디널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어쩌면 가장 이국적인 공간인 아이슬란드에서 능숙하게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가이다. <목소리>는 15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형사 에를렌두르 시리즈 중 5번째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호텔에서 발견된 도어맨의 죽음. 껄끄러운 가정사 때문에 집에 머무르기 싫어 호텔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에를렌두르. 진실은 과거 저 너머에 있다.

 

 

 

발신자
카린 포숨 저 | 은행나무

카린 포숨은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며 탁월하게 긴장감을 조성한다. 2009년에 발표된 <발신자>는 작가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유모차에서 잠든 아기가 피투성이로 발견되지만 검사 결과 동물의 피로 밝혀진다. 이를 시작으로 악의에 찬 장난이 계속 이어지고, 평화로운 마을에 점점 폭발할 듯한 불안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콘라드 세예르 경감 시리즈 중 열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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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 함유량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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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마흔일곱이 되면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다시 보겠다고 결심했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마흔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니까.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정말 그렇게 되는 걸까?

 

젊은 시절을 스페인 내전과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그리고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에서 보낸 주인공 레니에가 쫓기듯 자리잡은 곳은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쯤 떨어진 외딴 해변이었다. 그 곳은 일생을 먼 바다에서 보내고 마침내 생명이 다한 새들이 와서 죽는 새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해변가 카페 주인이 된 그는 밤에 도착한 새들의 마지막 몸짓을 보며 매일 아침을 맞았다. 경찰에 쫓기고 사람에 지쳐 자기 자신과의 관계마저 끊으려는 사내에게 남겨진 건 고독뿐이었다.

 

사육제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데우기 위해 불을 올려놓고 카페 테라스에 나온 그는 여자를 발견했다. 여자는 에메랄드빛 원피스에 초록색 스카프를 손에 들고 바다 깊은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20미터만 더 가면 파도에 휩쓸려버릴 터였다. “날 내버려뒀어야 했어요.” 그녀는 말했다. “이곳에 머물게 해주세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조금 전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가장 아름다운 새 한 마리를 구한다는 고매한 명분과 아름다운 여자가 함께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불혹이라는 말은 틀렸다. 희망 앞에서 나이는 무의미하다.

 

로맹 가리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다. 몽골인과 유태인의 피를 동시에 물려받은 그의 작품은 그 때문인지 세상의 온갖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조소로 가득하다. 이 단편집에 담겨 있는 열여섯편 또한 마찬가지다. 각 단편마다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는 사람의 폐부를 깊숙히 찌른다. 그건 자존심 상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다. 그의 말대로 아직 제대로 된 인간은 나타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여기 세 잔의 커피가 있다. 인스턴트 커피와 에스프레소, 그리고 상온의 물로 장시간 추출한 콜드브루가 그것이다. 간단한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이 세잔의 커피중 카페인 함유량이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일까? 또 가장 적은 것은?

 

카페인은 쓴 맛이 나는 알칼로이드(alkaloid)의 일종으로 원래 용도는 커피등 몇 종류의 식물이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살충제 같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중추신경계와 신진대사를 자극하여 피로를 줄이고 정신을 각성시켜 일시적으로 졸음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다량 섭취할 경우 짜증, 불안, 신경과민, 불면증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일일 최대섭취량을 400mg 이내로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주로 카페인을 섭취하는 커피는 크게 향이 좋아 주로 에스프레소에 사용되는 아라비카와 향이 적고 쓴 맛이 강해 인스턴트 커피에 많이 쓰이는 로부스타로 나눌 수 있다. 로부스타는 병충해에 강해 비교적 재배하기 쉬운데, 병충해에 강하다는 것은 살충제인 카페인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부스타종은 아라비카종에 비해 카페인은 두 배쯤 되고 쓴 맛도 그만큼 강하다.

 

이제 정답을 알아보자. 셋 중 가장 카페인이 많은 커피는 뭘까? 바로 콜드브루다. 두 번째는 에스프레소, 가장 적은 것은 인스턴트 커피다. 인스턴트 커피에 주로 쓰이는 로부스타에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한 잔의 커피에 사용되는 양이 적다. 흔히 마시는 맥심 모카골드 한 봉지에 들어있는 카페인이 42.5mg에 불과하니 함께 포함된 설탕이나 기타 첨가물을 제외하고 카페인만 생각한다면 하루 8잔쯤 마셔도 괜찮은 양이다. 에스프레소 싱글 샷의 카페인 함량은 70mg 정도인데, 대부분 더블 샷으로 마시는 걸 감안하면 두 잔까지는 문제 없지만 세 잔째부터는 고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콜드브루의 경우 초창기 디카페인 커피라는 잘못된 소문까지 있던 터라 지금도 저카페인 커피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콜드브루 카페인 함량이 높은 이유는 에스프레소에 비해 오래 걸리는 추출 시간 때문이라고 한다. 커피전문점마다 추출하는 시간이 다양해 평균적인 카페인 함량을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에스프레소 처럼 하루 두세잔 이상은 마시지 않는게 좋다.

 

매일 몇 잔씩 마시며 가깝고 또 잘 안다고 생각해왔던 커피에도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진실이 담겨 있다. 특히 밤 늦은 시간 커피 생각이 간절할 때 카페인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자제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믹스커피 한 잔이나 혹은 에스프레소를 짧게 추출해 만드는 따뜻한 싱글 샷 아메리카노 리스트레토(ristretto)가 숙면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 될 것 같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맹 가리 저/김남주 역 | 문학동네
인간의 그 오랜 분석(糞石) 위에 앉아 아직 오지 않은 ""인간""을 기다리며 지금-이곳의 안타까운 인간의 얼굴을 발굴해내는 작가의 정교한 손길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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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마지막 순간에 마시고 싶은 책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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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시작은 참 중요하다. 사랑에 빠지게 될 사람과의 첫 만남,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하는 첫 직업, 하물며 한 해의 첫 식사 메뉴까지 시작의 순간은 늘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첫 식사로 책바 마감 후 24시간 순대국 집에서 따끈한 순대국을 먹었다)

 

시작은 도전이자, 방향성이다. 1에서 2보다 0에서 1로 만드는 것이 어렵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이 되기도 하고 1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7년은 첫 발걸음이 꽤 좋다. 새해를 맞이하는 책으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었기 때문이다. 저자인 폴은 상당히 흥미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주제는 '의미 있는 인생'이었는데, 이를 위해 고민하던 삶은 작가 혹은 의사였다. 처음에 그는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문학으로 석사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깊은 고민 뒤 의학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의사의 삶을 선택한다. 의사는 책에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신경외과를 선택했다. 조금 더 몸이 편하고 좋은 조건이 있었지만 이것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의 기준에 불과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직업이 아닌 소명이었다.

 

그렇게 신경외과 레지던트로서 소명을 다하고 정점에 다다를 무렵, 거짓말처럼 암이 찾아온다. 그의 나이는 불과 30대 중반이었고 암이 찾아오기에는 누가 봐도 너무 어린 나이였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 삶에 암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여생을 바라보게 될 것인가. 보통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에 빠지거나, 더 열심히 삶을 살거나. 단연코 그는 후자였다. 죽음을 목도하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소명을 지키기 위해 걷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179쪽)

 

고백하건데,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숨을 쉴 수 있다는 인간 본연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 두렵고, 사유를 할 수 있는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아찔하다. 그러니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가 가진 인간 정신의 숭고함에 감탄할 수 밖에. 하지만, 암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이내 수술대에서 다시 내려오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라면 사랑하는 아내인 루시와 딸 케이디가 늘 곁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책의 말미에는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루시의 글이 함께 담겨있는데, 숙연함과 동시에 그의 여유도 느껴져 괜스레 더 마음이 찡해진다.

 

폴은 마지막 토요일을 가족과 함께 아늑한 거실에서 보냈다. 그는 안락의자에 기댄 채 케이디를 데리고 놀았고, 시아버지는 내가 케이디에게 젖을 먹일 때 쓰는 흔들의자에, 시어머니와 나는 근처의 소파에 앉았다. 폴은 무릎 위에 앉힌 케이디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살살 흔들어댔다. 케이디는 아빠의 콧속으로 산소를 넣어주는 관을 의식하지 못한 채 활짝 웃고 있었다. 폴의 세계는 더욱 작아졌다. 가족이 아닌 손님은 돌려보내는 내게 폴은 이렇게 말했다. "만나지는 못해도 내가 사랑한다는 건 다들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 친구들의 우정이 소중해. 그리고 아드벡 한 잔 더 마신다고 해도 내 마음은 변치 않을 거야." (240쪽)

 

마지막 주말, 그가 떠올렸던 아드벡(Ardbeg)은 싱글몰트 위스키이다. 어원은 게일어로 Untitled-2.jpg이며, 이는 작은 곶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름 값을 하듯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아일라 섬 해안에 증류소가 있다. 이 섬에는 아드벡 말고도 몇몇 증류소가 있는데, 이들이 생산하는 위스키는 공통적으로 스모키한 피트(Peat)와 바다의 짠내가 어우러진 향과 맛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드벡은 피트 향의 정도가 다른 위스키들에 비해 강렬한 편이다. 처음 마시는 사람은 향만 맡고도 아찔할 정도이다. 이런 위스키를 즐겼던 폴의 삶 역시 짧지만 강렬했으리라.


누구에게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온다. 그 마지막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는 시간이 찾아온다면, 그 때 함께하는 것이 아드벡이기를.

 

레시피 (음용방법)
1) 위가 좁고 아래가 볼록한 위스키 전용 글래스에 아드벡 10년을 1oz(=30ml) 따른다.
2) 처음에는 그대로 마시다가, 위스키의 풍미를 더 느끼고 싶다면 물을 3-4방울 떨어뜨린다.
3) 위스키를 목에 넘기고 코로 숨을 내뱉으면, 잔향을 더욱 즐길 수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저/이종인 역 | 흐름출판
신경외과 의사로서 치명적인 뇌 손상 환자들을 치료하며 죽음과 싸우다가 자신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을 마주하게 된 서른여섯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의 마지막 2년의 기록. 출간 즉시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12주 연속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훌륭한 작품만이 세상을 바꾼다! 출판사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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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어느 날, 시청역 인근에 있는 인플루엔셜 출판사에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가 모였다. 인플루엔셜은 역대 최장기간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며 아직 그 열기가 식지 않은 『미움 받을 용기』와 2016년 경제경영서 판매 1위에 빛나는 『명견만리』를 출판한 곳이다.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외에도 ‘대가의 지혜’ 시리즈를 통해 강수진, 조훈현, 심영순 대가를 책으로 선보였으며 비즈니스, 경제경영,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펼쳐냈다. 뿐만 아니라 2008년 국내 최초 강연 비즈니스 서비스를 선보인 기업으로 4,000여 건이 넘는 특강을 진행해온 그야말로 알찬 기업이다.


김보경 출판사업부 본부장과 김혜연, 박은영 편집차장의 안내를 받으며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가 인플루엔셜에 대해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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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 편집차장(왼쪽)과 김보경 출판사업부 본부장
 

김보경 본부장의 인플루엔셜에 관한 전반적인 소개로 본격적인 출판사 탐방이 시작되었다.


김보경 : 인플루엔셜은 2008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강연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강연 에이전시로 시작한 기업이에요. 본격적으로 출판을 시작한 것은 2013년 1월입니다. 강연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부터 『미움 받을 용기』같은 베스트셀러를 집중적으로 출간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출판 사업이 시작되었죠. 지금은 출판 사업부, 강연 사업부. 교육 사업부 3개의 부서로 회사가 운영되고 있어요. 전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분들이 모인 회사로, 앞으로는 강연, 출판, 학습, 자기계발 콘텐츠를 기반으로 운영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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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받을 용기』를 묻다


최근에 작업한 책 중 기억에 남는 독자와의 일화나 반응이 있나요?


김혜연 : 『미움 받을 용기』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 거 같은데요.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 중 청년의 말에 말줄임표가 있는 부분이 있는데, 한 독자가 그걸 보고 청년의 얘기가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건데 잘못 인쇄된 거 아니냐는 문의가 있었어요.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 와중에, 이 분이 책이 너무 좋아서 독서모임에서 토론도 하고, 군부대에도 몇 권 기부할 예정이라고 하신 게 기억에 남네요. 한 번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지속해서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150만 부 판매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인플루엔셜의 대표작, 『미움 받을 용기』제작 당시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김혜연 : 『미움 받을 용기』는 책을 준비하는 와중에 도서정가제법이 논의되면서 출간을 도서정가제 이후로 미뤘습니다. 출간 시기가 넉넉해지면서 원고도 많이 보고 사전 마케팅 준비도 많이 했어요.  원래 비유적인 표현이 많았는데, 그걸 처음에는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재미가 반감되더라고요. 그래서 번역자와 얘기를 다시 해서 비유를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일러스트도 넣을 생각이 없었는데 30대 여성 독자를 잡고 싶은 생각에 넣었어요. 단순히 예쁜 그림보다는 독특한 그림을 넣고 싶어 일러스트레이터 섭외에 공을 많이 들였고, 일러스트레이터 분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미움 받을 용기』의 사전 마케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잘 될 거라는 예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혜연 : 일본에서 많이 흥행했던 책이라 기획 단계부터 어느정도 잘 될 거라는 판단은 있었어요. 사전 마케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책 내용의 1장을 카피해 샘플북을 만든 거예요. 그렇게 몇만 부를 만들어서 명동 거리에서 대표님이 직접 나눠 주시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에 비치하기도 했어요. 좋은 내용으로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많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제본 서평단도 200명 정도 운영했어요. 책이 나오기 전에 제본을 떠서 드라마 대본처럼 넘겨 볼 수 있게 해드렸죠. 그분들이 서평을 블로그에 올려주시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이 2가지 마케팅 덕을 크게 본 거 같네요.

 

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혜연 : 한국 출판시장에서 책 구매율이 가장 높은 게 30대 여성입니다. 책 내용은 20대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나, 확실한 독자층을 기반으로 책이 퍼져야 된다고 생각해서 30대 여성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진행했어요.

 

『미움 받을 용기』스페셜 리커버 에디션이 작년 연말 새로 출시되었어요.


김보경 : 팬시(fancy) 상품을 만들자는 생각보다는, 다른 업계와의 콜래보 작업이라는 의미, 또 여기에 참가하는 그림 작가들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애썼습니다.  그래서 젊은 웹툰 작가분들의 그림으로 리커버 에디션을 구성했어요. 총 네 분의 작가님 중 ‘만물상’ 작가님 버전은 작가님이 『양말도깨비』라는 작품으로 유명하시기도 하고, 12월 크리스마스풍의 그림이라 특히 인기있었던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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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역할


『명견만리』는 어떻게 책으로 나오게 되었나요?


김보경 : 명견만리는 원래 KBS 유명 다큐멘터리에요. 다른 출판사도 명견만리를 책으로 제작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해요. 저희가 주로 어필한 부분은 방송과 상관없이 책만 보고도 좋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싶다는 점이었어요. 다행히 제작진의 이해가 높았습니다. 책은 방송과 상관없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읽혀야 돼요. 방송용 원고를 그대로 모은 거 아니냐는 생각을 들게 하면 안 되죠. 이런 책의 특징을 제작진도 이해 했기에 얘기가 잘 통했어요. 『명견만리』는 방송 1회부터 순서대로 편집된 게 아니라 방영 순서가 전부 섞여 있어요. 책의 배열 순서와 방송 순서를 보면 컨텐츠를 책의 형태로 담을 때 ‘이게 출판이 하는 역할이구나’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이것이 에디터가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참고로 4월에 『명견만리』 3권이 나옵니다.

 

책을 펴내기까지 편집자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김혜연 : 편집자의 다른 말은 ‘북 피디(Book PD)’ 라고 생각해요. 방송과 마찬가지로 책을 만드는데도 원고부터 출판까지 편집자의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책을 만드는 일에 있어 편집자는 피디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원고는 어떻게 검토하는지 궁금합니다. 


김혜연 : 프로세스를 말씀드리면, 만약 투고 원고가 들어오면 어떤 이력의 분이 어떤 콘텐츠를 보냈는지 봐요. 목차를 보면 책이 어떤 꼴로 나올지 알 수 있기에 목차를 먼저 보고, 책으로 만들어졌을 때 어떤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생각하죠. 편집자는 결국 저자가 독자랑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를 가장 고민해요. 편집자의 성향이나 출판사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독자를 만날 것인지, ‘특정’ 분야의 독자를 만날 것인지 결정한 뒤 책을 어떤 꼴로 만들 것인지 검토하죠.

 

요즘 출판업계 트렌드나 화젯거리를 알고 싶어요.


김보경 : 우리 사회가 불안한 사회가 되면서 감성적으로 악해진 개인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고 민감하게 독자들과 만나려는 책이 많다는 느낌을 받아요. 책을 소비하는 방식이 ‘지식을 얻는’ 측면보다 ‘여가를 즐기는’ 측면으로 많이 이동했다는 느낌도 받죠. 그리고 책의 발견성이 굉장히 중요해 졌어요. 드라마 PPL(간접광고)로 나온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데, 그건 그 책이 좋기도 하지만 그런 책이 빨리 눈에 띄는 것이라 그래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적어지고 있는데, 이 통로의 역할을 미디어나 광고의 역할만으로는 이제 부족해요. 출판계 스스로가 그런 역할을 많이 해야 해요.

 

김혜연 : 심리학 책이 몇 년째 강세인데, 앞으로도 1-2년은 더 심리학 책이 계속 강세이지 않을까요. 올해는 탄핵에 이어 대선이 있으니 대선 인물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올 것 같네요. 여가를 즐기는 책 소비가 증가한 것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인의 취향에 관한 작은 책들도 계속 출판될 듯해요. 인플루엔셜도 3월에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라는 노년의 삶에 대해 고찰하는 책을 출간하는데, 100세 시대가 된 요즘 노인을 다룬 책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SNS 작가들의 책 출간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김보경 : 개인이 출판하기 쉬워지면서 ‘저자의 자격’이란 장벽이 많이 허물어지고 있어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다양해짐으로써 다양한 저자가 발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죠. 출판사도 실제로 글 잘 쓰는 사람 누가 있나 찾아보려고 페이스북을 열심히 해요. 하지만 정보, 지식, 감정이 평균화되는 부작용이 우려돼요. 비슷한 게 많아지고, 금방 뜨거워졌다 빨리 식고, 하나의 이슈에 집중하지 못하고 옮겨 다니게 되는 부작용이요.

 

E-BOOK에 관해서는 어떤 생각이 있으신가요?


김보경 : 개인적으로 종이 책이 휴대하기 더 편리해 실용적이라고 생각해요. 아무 데나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찢어도 되고, 심지어 실제로 종이 책이 더 가벼워요. E-book은 다른 실용성이 있죠. 책은 집에 많이 쌓아둘 수 없지만, E-BOOK은 많이 담을 수 있다는 점이 또 장점이죠. 전자책이냐 종이책이냐는 각자 선호도에 맡기면 될 듯해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두 개 다 상관없어요. 다만 우리 회사만이 특이하게 고민하는 건 전자책이라고 해서 ‘더 가볍고, 쉽게 읽고 버려도 되며, 가격이 낮아도 된다’는 생각을 없애야 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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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와 마케터 채용 시 인플루엔셜만의 차별점이 있나요?


김보경 : 어떤 지식을 잘 아는 사람과 어떤 지식을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게 출판사예요. 전달하는 역할이 콘텐츠 사업의 핵심이고, 그러려면 본인이 다양한 관심사를 가져야 해요. 그래서 편견이 없는 사람을 선호해요. ‘나는 이런 취향을 가졌지만 저런 것도 재미있겠다’라는 반응을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취향과 편견은 다르거든요. 여러 분야에 호기심이 많고 오픈마인드인 사람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특히 인플루엔셜은 오래되거나 대규모의 출판사가 아니라서 업무 사이에 경계가 없어요. 그래서 다양한 업무를 줬을 때 유연하게 대하는지 그 태도를 선호해요.
 
박은영 : 자기표현을 할 줄 아는지 봐요. 이 사람이 얼마나 뭘 잘 알고 있는가 보다 서툴러도 좋으니 본인이 이걸 왜 하는지 ‘이유’가 분명한 사람을 원해요. 자기 안에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 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요. 그래야 우리 책이 독자에게 필요한 이유를 알고, 왜 권해야 하는지 집중할 수 있으며, 그걸 잘 표현할 수 있어요.

 

인플루엔셜이 마케팅에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을 알고 싶어요.


김보경 : 신생이기 때문에 브랜드파워를 키우기 위해 고민해요. 우리 출판사가 어떤 책을 만드는지에 대한 정체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명견만리』도 3권까지 꾸준히 내고, 강수진 선생님의 책을 ‘대가의 시리즈’ 라는 이름으로 내는 식으로요. 올해는 ‘어린이를 위한 미움 받을 용기’도 만들 계획이에요.

 

마지막으로 인플루엔셜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지 알려주세요.


김보경 : 출판사마다 신조가 비슷하면서도 다 달라요. 인플루엔셜은 ‘내가 변할 수 있는 힘, 세상이 변할 수 있는 힘’ 같은 게 영향력이라고 생각해요. 남에게 그 책을 선물하고 싶고,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는 게 ‘변화’에요.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받은 변화의 충격이 점점 커지는 걸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죠. ‘좋은 책을 만든다’는 것을 저희는 ‘영향력’이라 봅니다. 그래서 저희 출판사가 책을 선정하는 방식은 누군가에게 권할 수 있는지의 여부예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0대에게 묻다, "당신에게 독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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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우리나라만큼 독서를 강조하는 나라가 있을까.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라는 말은 교실 3개 중 한 곳에서는 급훈으로 쓰일 정도고 각 기관과 대학에선 매년 권장도서 리스트를 만들어 교육기관에 배포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의 독서량 성적은 저조하다. 2015년 유엔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이고, 성인 10명 중 9명은 하루에 10분도 독서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인 4명 중 1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도 답했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설문 응답자 64.9%가 스스로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답한 사람들은 그 이유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거나 독서습관이 들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마냥 독서를 기피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약 2년간 독서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한 A(26, 남) 씨는 인터뷰에서 "신입 회원이 끊긴 적은 거의 없었다. 근데 이상한 건 지원동기를 물어보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성인 독서량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와 달리 자신이 접한 대부분 사람은 독서에 대해 일종의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 YES24 서포터즈 리포터팀은 '나에게 독서란 00이다'를 주제로 20대 3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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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원(21, 대학생)
나에게 독서란 '잉여 활동'이다.

 

 

본인에게 독서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대학에 들어오고 1년 동안 정말 바빴어요. 아무래도 공대이다 보니 공부할 양이 진짜 많았고요. 정신없이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니까 슬슬 독서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아무래도 학기 동안은 전공 책을 많이 보다 보니까 처음 방학 시작하면서는 '책은 죽어도 보지 않겠어'라고 생각도 했어요. 근데 시간이 남으면서 생각나는 게 또 책이더라고요.


독서를 생각나면 하는 활동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 거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하니까요. 솔직히 독서가 당장 제 생활에 어떤 실용적인 역할을 하진 않잖아요? 성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착착 쌓여서 스펙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일단 성적을 잘 받아야 기업체에 입사신청을 하든 말든 할 텐데 독서는 관계 없는 일이잖아요? 당연히 잉여 시간이 날 때만 책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 취미로 독서를 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사실 진정한 취미로서의 독서는 중학교 때까지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생기부(생활기록부) 기록을 위해서 읽은 측면이 컸어요. 대입이라는 실용적 목적이 강했던 독서를 했고, 또 주변 선생님들도 그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사실 고등학교 때의 독서는 독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고등학교 때도 책을 읽었지만 독서로 생각하진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일단 책을 꼼꼼히 다 읽지 않은 적이 많았죠. 아무래도 공부가 우선시되는 수험생이다 보니 책을 중요한 챕터만 골라 읽은 후 독후감을 쓰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책을 읽고 혼자 천천히 곱씹을 시간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던 거 같아요. 책을 읽고 친구들이랑 의견을 나눠보기도 하고, 샤워할 때 혼자 책 내용을 반추해 본다든지... 리포터님도 그렇게 하시지 않아요?


네, 당연히 저도 그러죠. 길 걷다가도 책 내용 곱씹어보고.


맞아요. 그렇게 책을 여유롭게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독서만 가슴에 남는 것 같아요. 그 시간조차 없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읽어 넘긴 책들을 과연 독서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결국 여유로운 잉여 시간에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것이 지원 씨에겐 독서네요?


맞아요. 다른 독서는 책을 읽는다기보단 공부하는 기분이어서...


그럼 지금껏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은 뭐가 있었어요?

 

음.... 아무래도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던 것 같아요. 너무나도 못 생겨서 세상 모든 사람이 조소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에요. 책에서 모든 여자는 마음속에 자신만의 방을 하나씩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너무 공감됐어요. 그곳에서만큼은 내가 김태희고 전지현이 되는 그런 방..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정말 그런 상상의 방 하나씩을 갖고 사는 것 같아요. 내 몸매가 잘났든 못났든 그 안에서만큼은 내가 완벽한 거죠. 어떻게 남자 작가가 여자 마음을 이렇게 정확히 알까 놀라웠어요.


아내가 던진 물음으로 그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아마 아내분한테서 힌트를 얻은 게 아닐까요?


책의 다른 주인공들은 전부 이름이 나오는데 여자 주인공 한명 만 이름이 작품 끝까지 단 한 번도 안 나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린 이 책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때면 늘 그 주인공을 '못생긴 주인공'이라고 칭해야만 하죠. 못생겼다는 외모적 특징이 한 인격을 대표하는 특성이 되는 현실에 대한 작가만의 비유인 것 같기도 했어요.


저도 그 책은 두 번 읽었는데 그 점들은 캐치를 못 한 것 같네요.


저도 이 책만 이렇지 다른 책들은 기억이 잘 안 날 때도 많아요. (웃음) 아무래도 저를 포함한 20대 초년생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니까요. 토익 공부하랴, 자격증 공부하랴, 그 와중에 학점 신경쓰랴…. 설사 하도 주변에서 책을 강조하니까 반 억지로 읽는다고 해도 천천히 책 내용을 곱씹을 시간이 없으니까 그런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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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24, 대학생)
나에게 독서란 '평생 미루고 싶은 숙제'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철학 전공하고 있는 박주현이라고 합니다.


독서를 '평생 미루고 싶은 숙제'라고 하신 걸 보고 많이 웃었어요. 공감도 되고.


그래요? 아무래도 저한테 독서는 숙제 같은 측면이 강해요. 차라리 대학 과제는 데드라인이라도 있지 독서는 말 배울 때부터 죽을 때까지 강조되잖아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때려치우기도 마음에 좀 걸리죠. 부모님이 일단 걱정을 하기 시작하시니까요. 뭐가 되려고 그러냐부터 시작해서요. (웃음)


독서를 취미로 생각하시거나 하진 않는 거네요?


어릴 때는 독서를 많이 했던 편이에요. 어지간한 대학 추천도서들은 정독했으니까요. 어머니가 독서를 많이 강조하셨거든요. 근데 읽은 지 반년만 지나도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지더라고요. 줄거리나 주제도 가물가물하고요.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을 때는 최소 3~4일은 걸리는 정신적 중노동이 까먹는 건 이렇게 금방이라니. 더 재밌는 취미도 많은데 왜 황금 같은 주말에 책을 읽어야 할까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미루고 싶은'이라는 말에는 의미가 있어 보여요.


아무래도 마냥 독서를 안 할 수는 없지요. 워낙 주변에서 책을 말하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학기 중에 전공 책 빼고 한 권도 책을 안 읽으면 괜히 '너무 나태했나?'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시험 공부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독서하는 동기들 보면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요. 돌이켜보면 영어 공부하랴, 장학금 타랴 나름대로 바빴는데도요. 결국 '미루고 싶다'라는 건 '마냥 미룰 수 없다'는 뜻이죠. 데드라인전까지 바락바락 미루다가 전날 밤에 해치워 버리는 그런 거랄까요.


그래도 간혹 책을 읽을 때 선호하는 장르가 있는지 궁금해요.


추리 소설을 그나마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중에서도 제프리 디버의 『본 컬렉터 시리즈』는 거의 다 읽었어요. 링컨 라임이라는 전신마비 법의학자와 뼈를 숭배하는 '본 컬렉터'가 대립하는 소설인데 술술 읽히고 재미도 꽤 있는 편이에요. 뭔가 아무 생각 없이 스릴 넘치고 싶을 때 읽는 책? 학기마다 한 권씩은 빌려서 읽어요. 책이 꽤 두꺼운 편이라서요.


말 그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책인 거네요. 재밌을 거 같아요. 읽어보겠습니다.


꽤 재밌으니까 읽고 나면 어땠는지 후기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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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환(28, 대학원생)
나에게 독서란 '잘 모르겠다'다

 

반갑습니다. YES24 대학생 서포터즈 리포터입니다.


저도 반가워요. 중앙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과정 밟고 있는 정윤환이라고 합니다.


요즘 읽고 계신 책 있으신가요?


요샌 거의 못 읽고 있어요. 시간도 없고요. 아무래도 석사생이다 보니 논문을 많이 읽게 되잖아요. 그렇다고 논문을 책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고요.


독서를 '잘 모르겠다'고 표현하셨네요.


부담이 많이 되죠. 하루에 우리 현대인이 접하는 텍스트만 해도 엄청난데 굳이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는 걸 믿지 않느냐? 지겨운 소리긴 하지만 그건 또 아니에요. 책이 도움을 주는 부분이 분명히 있단 말이죠. 책을 읽어야만 내가 고양되는 걸 느끼기도 하고요.


독서의 목적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전에는 확실히 '휴식'이었죠. 책을 좋아도 했었고. 근데 요즘은 예전과 같은 휴식은 아닌 것 같아요. 옛날엔 무협지도 읽고 했는데 요즘은 통 안 읽게 되더라고요. 재미없어서라기보단 일단 텍스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니까요. 독서를 하면서 마음이 이완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요즘은 정말 쉬고 싶을 때 책을 집어 드는 편은 아니에요. 읽는 게 직업이니까요.


말씀하신 대로 잘 모르겠지만 편안한 휴식은 확실히 아닐 것 같네요. (웃음) 그럼 좀 더 직접적으로 질문할게요. 지금껏 우리 사회에 독서에 대한 강조가 끊임없이 있었는데, 그 풍토를 긍정적으로 보세요? 우리 후손들한테도 이어져도 좋을 만큼?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독서는 공부잖아요? 옛날 조선 시대에는 책을 얼마나 달달 외우느냐가 출세의 여부를 판가름했으니까. 근데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유독 독서가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은 변치 않았다는 말이죠. 부모님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말할 때 사실 아무 책이나 읽어도 좋다는 부모님은 없잖아요? 일본 만화책을 가져와서 읽겠다는데 권장할 부모님은 없단 말이죠. 그 말인즉 출세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으라는 건데, 결국 출세 일변도의 연장이 아닌가 싶어요. 독서가 수단이 되는 풍토는 좀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독서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출세의 수단 중 하나로 인식되어온 전통에는 비판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거네요.


그럼요. 책을 읽는 건 당연히 좋은 거죠. 아이들 정서발달에도 도움이 되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독서를 권장하느냐가 아닐까 싶어요. 이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내 자식, 내 조카들에게는 '책을 읽으면 좋다'라고 말할 거예요. 그러나 '읽어라!'라고 강조를 하진 않을 거 같아요. 자기고양을 위해서 읽던지, 휴식을 위해서 읽던지. 안 맞으면 다른 걸 하던지요.


그럼 윤환 씨는 독서에 부담을 느끼는 편은 아니신가 봐요.


또 그렇지는 않아요.(웃음) 아까 얘기했다시피 논문은 책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요샌 논문 말고 책을 좀 읽어야 할 텐데....하고 생각을 해요. 전공이 사회심리니까 꽤 다양한 이슈를 공부하고 있긴 하지만 시각을 좀 더 넓히려면 좀 더 자연과학, 철학, 예술적인 분야의 독서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죠.


옛날부터 그런 말이 많잖아요. 연애도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 독서도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 기성세대들은 그거 들으면 또 무슨 소리냐고 하시고요. 20대 후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요샌 내 스펙과 관계없는 책을 읽는 건 하나의 용기 같아요. 누구나 다 스펙, 스펙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내 전공과도, 스펙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책을 집어 들고 시간을 내서 읽는다? 어지간한 용기 아니고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기성세대는 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웃음) 기성세대들 때는 막말로 밖에서 시위하고 학점은 망쳐도 취직이 다 됐단 말이죠. 대학 진학률도 훨씬 낮았고, 경제 성장률도 두 자릿수였고요. 그런 분들이 '우리 때는 다 해냈어'라고? 그땐 그래도 됐겠죠. 그때니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 연출가 오세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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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초연, 아름다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그의 숨겨진 이야기를 무대로 옮겨 찬사를 받은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다시 돌아왔다. ‘조금 부족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위로의 메시지와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고 있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를 연출한 오세혁 연출은 극단 ‘걸판’의 대표이자 연기, 극작, 각색 그리고 연출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연극인이다. 진심을 다해 공연을 대하는 오세혁 연출,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 플레이어가 그를 직접 만나보았다.


라흐마니노프, 부족함 깨닫는 계기가 되길

 

첫 뮤지컬 연출작으로 <라흐마니노프>를 택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뮤지컬은 노래를 통해 극적 이야기를 나타내는 장르에요. 대학 때부터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고, 실제로 작품을 써서 지원도 해봤어요. 그러던 중 지금 <라흐마니노프>를 함께 하는 HJ컬쳐를 방문하게 됐는데, 대표님께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어요. 무척 감동받아 이 회사와 꼭 한 번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일정이 맞지 않아 기회가 미뤄졌는데, 작품을 찾던 중 <라흐마니노프>가 눈에 띄었어요. 라흐마니노프라니! 제가 어려서 피아노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웃음) 그런데 이야기가 정말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상처받은 예술가가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공감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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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연출님께서도 라흐마니노프처럼 어려움을 견뎌야 했던 시절이 있었나요? 만약 있었다면, (라흐마니노프의 슬럼프 극복을 도와준) 달 박사 같은 존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갔지만 공연이 너무 좋아 극단을 만들어 연극을 시작했어요. 선생님도 없이 학생끼리 일을 진행하니 그땐 참 힘들었죠. 그러다 신춘문예에 당선돼 이윤택 선생님을 뵙게 됐어요. 잠도 거의 안 주무시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죠. 가만히 앉아서 살아가시는 모습을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윤택 선생님은 제게 스승님이자, 큰 어른 같은, 그런 분이에요.

 

초연에 이어 1년 만에 <라흐마니노프>가 돌아왔습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관객분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라흐마니노프>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거든요. 3년간 은둔하던 라흐마니노프를 3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보낸 달 박사는 완벽한 정신의학자인 듯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 역시 스승의 또 다른 제자인 프로이트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그가 라흐마니노프에게 자신의 힘든 점과 불안한 점을 솔직히 털어놓음으로써 천재라는 시선에 억눌려있던 라흐마니노프도 비로소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어요. 극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람의 마음은 깊고, 넓고, 복잡하니까. 그래서 아름답다.”라는 대사처럼,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닌 복잡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공연은 내 베이스 캠프

 

라흐마니노프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오는 작곡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저도 어려웠어요. ‘어떤 피아니스트가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소화해냈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얼마나 어렵기에 곡을 ‘소화’한다고 표현할까 싶었죠. 하지만 노래를 계속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이 만든 노래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라흐마니노프는 슬퍼하지 않았을까? 음악이 좋아서 만들었을 뿐인데, 그것을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무척 슬픈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라흐마니노프 노래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죠.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분들이 라흐마니노프는 ‘어려운 곡을 만든 사람’이 아닌 ‘아름다운 곡을 만든 사람’임을 깨닫고 그의 음악에 공감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라흐마니노프>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제일 난감했던 건 제가 그 분야를 잘 모른다는 거였죠. 다행히 음악감독님께서 라흐마니노프 곡 안에 있는 멜로디를 가져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주셨어요. 라흐마니노프가 뮤지컬을 만들었다면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냥 듣기 어려운 곡을 뮤지컬 넘버로 만드니 비로소 라흐마니노프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어요. 이 작업이 의미가 있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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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좋았던 순간을 꼽아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매일 즐겁고 좋은 순간이 많았지만, 굳이 한순간을 꼽자면…. 공연 마지막 부분에 라흐마니노프의 긴 독백이 있어요. 이 독백을 연주에 맞춰 연습하고 있었는데, 배우들이 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뮤지컬을 하면서 독백으로 긴말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야 기회가 생겨 무대에서 오롯이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순간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작가, 배우, 연출로서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해오셨어요. 또 도전해보고 싶은 또 다른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뮤지컬은 새롭게 도전해보는 분야에요. 작년을 기점으로 3년 정도 집중해보겠다 생각했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기도 하고, 영화도 준비해보고요. 그렇지만 제 베이스 캠프는 확실히 공연이에요. 여기로 가보고, 저기로 올라가 보기도 하고, 그렇지만 역시 공연이 제일 좋아요. 관객들이 극장 밖을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나가는 걸 볼 때면 가장 행복하죠. 어떤 장르를 하더라도 공연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특히 박수! 박수는 인간만의 표현이라고 하잖아요. 그 어떤 동물도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손뼉을 치지는 않죠. 박수라는 건 공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것 같아요.

 

연출님께서 생각하시는 공연의 매력은 뭔가요?

 
유일하다는 거요. 공연은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르예요. 눈앞에서 사람을 보고, 직접 만날 수도 있죠. 공연을 본다 해서 누군가의 인생 전체가 바뀌진 않겠지만, 눈앞의 사람을 보면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볼까’라는 고민 정도는 생기지 않을까요. 사랑이든, 정의든, 그 어떤 것이든 좋으니 극장 밖으로 나섰을 때 단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쉽지 않겠지만요. (웃음)

 

관객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이 공연을 어려워하세요. 처음 본 공연이 별로라고 생각하면 그 이후론 공연 자체를 찾지 않는 경우도 많죠. 그런 점이 무척 아쉬워요. 공연에 부담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공연과 친숙해질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 (그런 점에서) <라흐마니노프>를 만들 때 이 공연이 심심, 담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의 방향과는 맞을지 모르겠지만 편안한 공연이 될 수 있기를 바라요.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워낙 좋잖아요. 2시간 동안 그냥 앉아 있으면서 졸기도 하고, 힐링도 하고. 뭐 어때요. 그냥 편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사랑 받는 사람이다


연출님만의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외길을 가기보다는 경계를 오가는 사람이에요. 한 가지를 굉장히 잘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두세 가지를 오가며 해보는 것도 즐겁게 살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도 가보고, 그것도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되는 거죠. 답이 없음을 아는 것도 답이라고 해야 할까요. 특정한 결과물을 내거나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

 

요즘 대학생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힘든 상황에 대해서요.

 
주변 사람들은 제가 대학을 그만두고 연극을 한다 했을 때 모두 반대했어요. 그런데 그들 인생도 사실 다 불안하더라고요.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내가 이 길을 갈 수 있을진 확신할 수 없지만, 내 옆 사람은 나보다 나에 대해 더 몰라요. 그래서 저는 제 미래를 스스로 결정했어요. 미래는 모두에게 불확실한 거니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따라가보세요. 저도 지금 제가 잘살고 있는지 모르는걸요. (웃음) 라흐마니노프도 결국 그런 얘기에요. 잘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사는 거죠.

 

대학생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주변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당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인간은 모두 부족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어요. 날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누군가. 분명 있어요. 그 사실을 깨닫고, 서로가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대학생뿐만이 아니라, <라흐마니노프>를 보러 오시는 관객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시길 바라요. 서로가 서로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고,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꼭 알게 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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