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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드는 사람들] 교정이 안 보이는 책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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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매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번에는 교정ㆍ교열자가 오ㆍ탈자를 잡아내는 일 외에 무슨 일을 하는지, 교정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교정,교열은 책을 편집하는 업무 중 대부분을 포함한다. 최근에는 출판사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편집자로 일했던 경력자가 출판사 바깥에서 ‘외주 교정자’로 불리며 교정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작업이 외주화되면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업무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이옥란 교수는 현재 출판전문인 양성 교육기관인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교정 강의를 맡고 있다. 1993년부터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 출판사 등에서 일하기 시작해 2008년 이후 외주 교정자이자 강사로 활동했다. “문장을 정확히 다룰 수 있는 일이 교정이고 문장을 잘 다루는 사람이 좋은 교정자”라고 말하는 이옥란 교수를 만나 교정 업무의 세계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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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이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가요?


저자가 쓴 원고를 담당 편집자가 받아 인쇄소에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 과정을 편집이라고 한다면, 편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일관되게 다루는 건 텍스트입니다. 텍스트를 바로잡는 교정은 편집 업무와 떼려야 뗄 수 없죠. 다만 편집 업무를 쪼개어 할 수 있는데, 흔히 생각하는 ‘빨간 펜을 들고 문장을 바로잡는 일’을 구분해서 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 교정과 교열이라는 단어를 합해서 말하는데요.


교정ㆍ교열이라고 붙여서 많이 말하죠. 교정을 한자어로 풀어보면 ‘학교 교(校)’ 자에 ‘바로잡을 정()’ 자인데 ‘학교 교(校)’에는 헤아리다는 뜻도 있어요. 텍스트를 머리를 써서, 헤아려서 바로잡는 것 정도로 교정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교열은 바로잡아 검열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저자의 글을 조사한다는 의미로 쓸 수 있겠지만 한때 출판을 검열하던 시절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정과 교열이 단계별로 있는 다른 업무라고 보기는 힘들고 ‘교정’ 한 단어로만 불러도 괜찮을 듯해요.


실제 책을 만들 때의 교정 과정이 궁금합니다.


맨 처음 원고를 받으면 책 판형에 맞는 화면을 짜서 교정쇄라는 출력물을 만듭니다. 교정쇄를 검토하면서 오ㆍ탈자, 비문뿐만 아니라 저자가 표현한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든가, 다른 부분과 표현이 충돌한다든가 하면 전체 맥락을 통해 교정하거나 저자에게 질문합니다. 그렇게 재조정한 원고를 다음 쇄로 출력하면 마찬가지로 저자와 조율하면서 1쇄, 2쇄, 3쇄 차례대로 원고를 다듬어 나갑니다. 원고가 몹시 어렵지 않고 구성요소가 복잡하지 않으면 보통 3쇄 정도에서 끝나죠.


교정 업무를 맞춤법에 따라 문장을 올바르게 고치는 일 정도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맞춤법은 교정 업무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에요.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국어 실력은 기본이지만 맞춤법 지식만 가지고 교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어문규정에 어긋나는 경우는 어떻게 하나요?


낱말의 뜻이라든지 용법은 당연히 문법에 맞게 정확해야 합니다. 교정 시 근거를 두는 문법은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문법 수준인데, 지금 문법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다 포괄하지는 못해요.

 
예를 들어 “엄마 제발 아프지 마”라는 문장은 문법으로 보면 틀린 문장이죠. 이걸 바로잡으면 “엄마 제발 아파하지 마” 나 “엄마 제발 앓지 마”가 될 텐데 표현하고자 하는 걸 다 전달하지 못하는 문장이 되거든요. 선을 그어놓고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기 위해 규범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단어의 성향과 표현 가능성을 제시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국내 저자의 원고와 번역서의 경우 교정 방법이 다른가요?


저술 원고라면 먼저 저자 원고의 완성도에 대해 확인하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죠. 번역서 같은 경우 이미 한번 출판된 원고, 편집을 거친 원고기 때문에 번역이 잘 되었는지 위주로 보게 됩니다.


번역서는 외국어투 문장을 손질할 필요도 있어요. 이희재 선생님은 『번역의 탄생』에서 출발어와 도착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원어인 출발어를 중요하게 볼 것인가, 한국어 독자들이 읽기 좋게 도착어인 한국어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볼 것인지에 따라 여러 논점이 있을 것 같아요. 또한, 번역서는 지명이나 인명을 외래어표기법 어문규정에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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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정, 좋은 출판물이란 뭘까요?


책 안에 담기는 내용이 다양하므로 교정도 굉장히 다양하고, 뭐라고 딱 집어서 이야기하긴 어렵죠. 다만 책을 읽을 때 문장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안 들게끔 읽힌다면 그건 교정이 잘된 책이에요. 교정이 안 보이는 책이 사실은 좋은 책이죠. 어떤 책을 내더라도 텍스트가 들어가기 때문에 문장을 정확히 다룰 수 있는 일이 교정이고 문장을 잘 다루는 사람이 좋은 교정자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말로 문해력이라고도 하셨는데, 문해력을 높이는 방법이 있나요?


천천히 가는 길이지만 꼭 필요한 훈련은 좋은 책을 읽는 거예요. 줄거리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는 독서가 아니라 힘 있는 문장, 저자가 깊은 사유 끝에 나온 문장을 읽는 게 도움이 됩니다. 제 경우에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실제 문장을 의미가 담겨 있는 형태소까지 쪼개서 분석하는 세미나를 한 적이 있어요. 접속사는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연결 어미를 어떻게 쓰는지, 문장의 구성 요소가 어떻게 저자의 생각을 제대로 드러내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의 원고를 여러 번 정독하고 숙독하는 작업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편집 과정에서는 원고 안에서 매우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은 없어요. 교정이 잘 된 좋은 책을 만드는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원고든지 적어도 서너 차례를 읽을 수 있는 집중력은 필요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야 원고의 문제를 알고 교정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출판사에 취직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교정자도 많습니다.


출판사에서 편집 업무를 하다 결혼이나 육아 등으로 직장에 돌아오기 어려운 분들이 외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외주 교정자라고 불리는데, 전문 교정자라는 표현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공정에 대한 이해도 있고, 저자의 원고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전문적으로 아는 분들이니까요. 하지만 출판사랑 관계를 맺고 일하면 개인이기 때문에 대우가 부적절한 경우도 왕왕 있고, 일 자체가 불안정하기도 하죠.


편집하는 사람과 교정하는 사람이 나뉜다면 일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요?


외주를 맡기면 내부 인력은 덜 신경 써도 된다고 생각해서 교정자에게 책임 편집의 업무까지 넘기는 경우가 있어요. 출판사에서 전문 교정인에게 원고를 줄 때는 이게 어떤 책이 될 것인지 상이 잡혀 있는 상태여야 해요. 책임 편집자가 작업에서 뭘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교정의 방향과 수준을 결정해서 맡겨야 하는데, 책에 대한 명확한 목표나 책임 편집자 없이 오자나 비문만 고쳐서 세상에 내보낸다면 예상치 않은 오류가 자주 생기게 되죠.


미래의 출판인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나요?


막연히 책 만드는 일이 재밌어 보여 출판사에 들어가도 바로 원하는 책을 만들지는 않아요. 가벼운 에세이를 읽는 게 좋은데 사회 문제에 대해 거친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사회과학 책의 텍스트를 만져야 할 수도 있을 거고요. 대학을 4년 정도 다녔다면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몹시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글을 다루는 능력은 배울 수 있으니 자신 있게 시작하셔도 되는데, 이 업이 뭘 하는 일이고 이게 나에게 맞을지 판단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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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독자] 케이트 윌헬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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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chY 9월호 맨 처음 독자 정소연 케이트 윌헬름 표지 이미지.jpg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언제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나는 사실 기억하지 못한다. 벌써 십삼 년 전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SF를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있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헤매던 중에 케이트 윌헬름의 이 책을 만났던 것 같기도 하고, 달리 추천을 받아 읽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케이트 윌헬름이 얼마나 유명한지,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이 소설이 얼마나 고전인지 잘 몰랐다. 나에게 20세기에 쓰인 모든 소설은 이미 옛 이야기였다. 스무 살은, 어쩐지 그런 나이다.

 

이처럼 이 책을 만나 어떻게 첫 장을 펼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감상은 지금도 선명하다. 가슴을 에는 슬픔과 그 슬픔을 감싸는 아름다움. 어떤 다정함. 울었던가? 아마 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 슬픔이었고, 아름다움이었다. 좋은 소설은 독자를 변화시킨다. 독자에게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과 감정과 통찰을 보여준다.『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그런 책이었고, 나는 이 책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꼈다. 다른 작가를 굳이 끌어와 말하자면 어슐러 K. 르 귄 보다 조금 더 낭만적인, 낸시 크레스보다 조금 더 다정한, 조안나 러스보다 조금 더 조용한, 옥타비아 버틀러보다 조금 더 온화한 슬픔과 아름다움.

 

 

어슐러 르 귄보다 조금 더 낭만적인

 

이 새로운 감정을 다른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이 책을 옮겼다. 나는 이 책의 맨 처음 한국인 독자는 아마 아니겠지만, 내가 번역했으니 한국어판의 맨 처음 독자이긴 한 셈이다.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따 온 구절인 원제 한 줄을 가장 아름답게 번역하고 싶어 서점의 셰익스피어 번역본을 모두 뒤졌다. 한국어 사전을 읽고 또 읽었다(어디에서 좋은 단어가 나올지 모르니 여러 우리말 사전을 통째로 계속 읽었다). 아, 내가 이 책을 번역하느라 애썼다는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이 책 한국어판의 맨 처음 독자인 번역자에게,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그만큼 경건한 작품이었다는 말이다.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된 케이트 윌헬름의 첫 작품이자 유일한 번역서이기도 하다. 케이트 윌헬름이 적지 않은 작품을 썼고 진작에 SF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상을 많이 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의 이름을 딴 상까지 있는 장르의 거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많은 여성 작가들처럼 케이트 윌헬름도 활동을 늦게 시작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글자당 몇 센트의 푼돈을 받는 지면에 습작을 짬짬이 냈고, 겨우 글을 팔기 시작하고서도 수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케이트 윌헬름은 첫 작품이 어스시 시리즈였던 어슐러 르 귄 같은 준비된 작가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히 적성에 맞지 않는 전화교환원이나 판매원 일을 하던, 겨우 열아홉에 결혼하여 아들을 둘 낳고 일상에 분투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거의 읽히지 않는) 윌헬름의 1950년대 작품들을 보면 그런 ‘평범한 작가 지망생’이자 ‘전형적인 장르 문법을 따르는 신인 작가’의 설익은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글을 계속 썼고, 아마도 계속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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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향해 흐르는 긴 강

 

그리고 1976년에 발표한 이 작품,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더 말을 보탤 것 없는 케이트 윌헬름의 대표작이자 작가의 작품세계의 완성형이다. 케이트 윌헬름이 이 소설에서 인류 멸망이라는 흔한(게다가 당시 과학소설계의 유행이었던) 소재를 다룬 방식은 참으로 놀랍다. 긴 시간 선을 강물처럼 부드럽게 달리는 이야기, 강을 따라 흐르며 만나는 돌멩이며 수풀 앞에서 숨을 고르듯 각 세대를 들여다보는 시선. 이 소설은 우주를 향해 흐르는 긴 강처럼 느리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독자를 빈틈없이 감싼다. 강을 따라 생긴 숲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 같은 인간들, 그 숲에서 들리는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 같은 대화, 햇살을 받아 작게 반짝이는 물결 같은 문장, 긴 강 같은 이야기. 이런 아름다움을 과학소설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랴. 케이트 윌헬름이 글을 쓰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만든 덕분에 생겨난 이 아름다움 앞에서 ‘맨 처음 독자’로서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강바람 앞에서 옷을 여미듯 이 책 앞에 섰다. 독자들도 이 바람을 느낄 수 있기를, 강이 흐르는 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물방울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1976년부터 지금까지, 내일을 향해 흐르고 있는 이 소설이라는 강을 들여다보고 오늘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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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케이트 윌헬름 저/정소연 역 | 아작(디자인콤마)
1976년에도 이런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웠던 부분은 작가가 생태계의 붕괴를 그려내는 모습이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작가가 그린 세계 종말 시나리오는 유효하며, 인류 최후의 생존 방식은 마치 [사이언스] 저널 최신호만큼이나 생생하게 다가온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과 엘러리 퀸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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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chY 9월호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001 도서관의 살인 표지 이미지.jpg

 

 

차근차근 용의자를 제거하는 화려한 추리 쇼

 

1920년대 후반, 한 예술평론가가 그 동안 출간된 미스터리를 열심히 분석한 후에 연달아 세 권의 미스터리를 내놓았다. 한없이 잘난 탐정과 영국 황금기 미스터리의 전통이 적절하게 섞인 그 작품들은 멋지게 성공해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작가의 이름은 S. S. 밴 다인. 그가 쓴 작품들은 장르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였고,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범인의 심리적인 동기에 주목했다.

 

비슷한 시기, 뉴욕 광고업계에서 일하던 두 사촌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전업 작가를 꿈꿨고, 롤모델은 당연히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인 S. S. 밴 다인이었다. 그들은 공모전 수상을 목표로 3개월에 걸쳐 작품 하나를 힘겹게 완성했다. 비록 공모전을 주최한 잡지사가 망해 내정된 수상을 놓치는 불운을 겪었지만, 운 좋게도 작품은 출간될 수 있었다. 미국 미스터리 역사 대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엘러리 퀸과 그의 데뷔작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 얽힌 이야기이다.

 

엘러리 퀸의 작품은 대략 3기로 나뉜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서 시작된 1기는 ‘국명 시리즈’라 불리며 S. S. 밴 다인의 작품과 닮았다. 잘난 탐정 엘러리 퀸(작가 이름과 같다)이 나오고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를 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심지어 한번 겨뤄보자며 ‘독자에의 도전’도 감행한다. 이후 엘러리 퀸의 작풍은 할리우드의 영향 아래 있었던 2기, 추리에서 범죄소설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3기로 이어진다. 평론가들은 작가로서 한 걸음 진보한 3기를 높이 평가하지만, 대부분의 엘러리 퀸의 팬들은 1기를, 그것도 ‘유난스럽게’ 좋아한다.

 

‘지루할 정도로 치밀한 사건 수사가 이어지고 고뇌에 찬 탐정은 뭔가 결심한 듯 용의자를 한곳에 모은다. 철저한 논리에 의해 용의자는 하나씩 소거되고 마침내 단 한 명만이 남는다. 절정의 순간, 탐정이 힘차게 범인을 지목하면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도무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건만, 이러한 구성은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한없는 낭만을 느끼게 해주었다. 엘러리 퀸은 초기 작품들을 통해 규칙과 이성만으로 범인이 한정되는 명쾌한 시공간을 독자들에게 제공한 셈이다.

 

앨러리 퀸은 고향인 미국에서도 이제 거의 잊힌 작가이다. 1941년부터 직접 발행한 미스터리 잡지 <EQMM>은 여전하지만, 작품은 이제 중고 서점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의 열성적인 팬들은 셜록 홈스의 인기가 계속되는 마당에, 미국 탐정의 희망은 오로지 엘러리 퀸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규칙과 이성으로 통제되는 가상의 시공간은 사실적인 범죄에 밀려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묘하게도 초기 엘러리 퀸의 스타일이 여전히 통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최근 새로운 번역과 해설로 ‘국명 시리즈’가 다시 출간되는가 하면, 빛바랜 그 스타일을 집요하게 흉내내는 작가들도 있다. 새로운 국명 시리즈의 해설을 맡은 아리스가와 아리스, 스타일은 물론 탐정과 작가 이름을 똑같이 설정하는 전략마저 그대로 따르는 노리즈키 린타로, 엘러리 퀸 1기 특유의 집요한 소거법을 고집하는 아오사키 유고 등은 모두 엘러리 퀸 유파의 신봉자들이다.

 

아오사키 유고는 21살의 나이에, 『체육관의 살인』으로 역대 최연소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원래 라이트노벨을 꿈꿨다가 미스터리로 선회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로, 자신의 작품은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의 오마주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으며, 작품 속 탐정은 라이트노벨의 세계관에 맞춰 만화광으로 설정돼 있다. 라틴어로 고전을 인용하던 하버드 출신 엘러리 퀸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대사를 읊조리는 오타쿠 우라조마 덴마로 재 탄생한 것이다.

 

아오사키 유고의 작품은 국내에 2014년부터 매년 한 권씩, 총 세 권 소개돼 있다. 체육관에서 시작된 우라조마 덴마의 활약은 ‘수족관’을 거쳐 올해 ‘도서관’ 에 이르렀다. 경쾌한 학원물에 만화적 색채가 듬뿍 덧칠된 이 시리즈는 사소한 단서가 범인을 한정하는 꼼꼼한 논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처치곤란, 구제불능의 오타쿠 탐정 우라조마 덴마는 모자 하나 구두 한 켤레로 범인을 압박했던 엘러리 퀸처럼, 우산(『체육관의 살인』), 대걸레와 양동이(『수족관의 살인』), 다잉메시지와 금이 간 화장실 거울(『도서관의 살인』)로 용의자를 하나하나 소거하고 화려한 추리쇼를 벌인다.


이런 유의 작품들은 범죄자의 우중충한 정서나 사회의 어두움을 응시하는 작품들에 비해 짜릿한 미스터리적 쾌감을 준다. 하지만 지나친 논리에의 추구는 작품의 세부를 훼손하기 마련이다. 이 시리즈만 해도 진상에 이르는 과정은 통쾌하지만, 범인이 밝혀진 이후에는 별 감흥이 없다. 논리를 위해 등장인물의 양감을 지나치게 단순화했기 때문이다. 논리냐, 그럴듯함이냐, ‘미스터리 장르의 개연성’은 시대를 계속해서 거듭 되풀이됐다.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본격 미스터리는 오래된 그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물론, 어떤 즐거움을 택할 것인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Q. E. D. 증명종료
가토 모토히로 글, 그림 | 학산문화사

1997년 시작돼 현재까지 연재 중인 대표적인 추리 만화. 만화 속 사건은 범죄 외에도 불가해한 현상, 심리적인 동인, 수학적 개념, 프로그래밍, 가벼운 해프닝까지 다양한 분야에 맞닿아 있다. 일종의 안락의자 탐정인 주인공 토마 소는 사건에 대한 선입견 없이 오로지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진실에 다다른다. 'Q.E.D.'는 'Quad Erat Demonstrandum'의 약자로 '증명 종료'라는 뜻.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노리즈키 린타로 저 ㅣ 엘릭시르

일본의 대표적인 본격 미스터리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본명은 야마다 준야로, 그는 엘러리 퀸에 심취한 나머지 그 형식을 오마주한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를 집필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은 시리즈 초기 단편집으로 묵직한 주제의식을 지닌 작품을 비롯해 기묘한 맛, 가벼운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다.

 

 

 

 

말레이 철도의 비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저 ㅣ 북홀릭

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중견인 아리스가와 아리스 역시, 엘러리 퀸에 대한 오마주로 제목에 국명이 들어간 작품을 계속 발표해왔다. 『말레이 철도의 비밀』은 이국적인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를 배경으로, 밀봉된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발견된 시체를 다룬 밀실 미스터리이다.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가 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제5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금주의 책] 서점에서 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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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신을 가장 짧게 설명하는 말은 ‘반 세기 서점인’이다. 1930년에 태어난 그는 85세를 넘겼다. 국문학 전공으로 대학을 마친 후 중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인연이 닿아 트럭 운전까지 하다가 서점 일을 시작한 것이 1965년이었다. 이 책이 출간된 2015년 기준으로 가득 채운 50년 동안 아침에 서점으로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해온 것이다.

 

‘마지막 수업’이라고 하면 그가 서점 일을 그만 뒀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모두 대단한 오해인데, 반 세기 서점인은 여전히 1주일에 나흘 이상 지하철을 타고 도쿄 진보초의 이와나미 북센터로 출근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책 팔 궁리를 포함한 다양한 주제로 모임과 행사를 만들고 강의하고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을 쓴 이시바시 다케후미는 시바타 신보다 40년 늦게 태어났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배운 그는 출판사에 근무하다가 출판전문지 기자로 일했다. 2010년에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부터 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유명한 노인’을 비정기적으로 만났다. 취재나 원고 의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잡담을 나누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휴대용 녹음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그래서 세상에 나온 것이 이 책이다.

 

 

모두가 함께 책을 파는 서점의 일상

 

서점은 특이한 가게이다. 동네마다 철물점, 전파상, 문방구와 서점이 문을 나란히 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나머지 가게들이 모두 마트나 쇼핑몰의 진열대로 흡수된 뒤에도 많은 서점들이 살아남았다. 물론 없어진 서점도 많았는데, 못, 전구를 팔던 가게보다 유독 책을 팔던 가게가 문을 닫는 데에 동네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건 서점이 다른 가게와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으로서 서점은 더 특이하다. 책의 저자를 적으라는 필기 시험을 보거나, 면접장에선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꼬치꼬치 캐묻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서점은 가게이고 직장이다. 내 서점을 가지는 것, 혹은 서점에서 일하기로 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겐 꿈이거나 낭만이지만 곧바로 장애물이나 벽에 부딪치곤 한다. 이를 이만큼 멋지게 설명한 구절은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

 

“서점은 이래야 한다거나 이 책 옆에 저 책을 진열해야 한다는 말들이 전혀 쓸데없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서점의 근본을 전하고 싶어.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그걸 은연 중에 드러냈을 거야. 예를 들면 ‘책은 무겁다’ 같은 이야기지. 이해가 가나? (중략) 이것만은 어느 서점이건 똑같을 거라고 봐. 우선은 내 눈 앞에 있는 책의 산을 무너뜨리는 게 매일 아침 서점이 해야 할 절대적인 일이지. 그걸 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아.”

 

물론 대개의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거나 적어도 좋아한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책을 앞에 두고 있으면 늘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책은 들기에 무겁고, 전부 살펴보기에도 무겁고, 여러 곳에서 대금을 치르고 사오기에도 무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바타 신이 말하는 ‘모두가 함께 책을 파는 서점의 일상’에 공감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책을 판다’는 건 말이지. ‘책이 좋다’든가 ‘책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에 사명감을 느낀다’든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성립되지 않아. 모두가 기분 좋게, 가능한 한 나쁜 감정 없이 일할 수 있는가. 이런 노무 관리가 먼저라는 거야. 단지 책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책을 판다는 행위가 완성되지 않아. 나로서는 늘 그랬지.”

 

호린도 서점은 시바타 신이 매장 책임자였던 1970년대에 단품 재고 관리 방식을 도입했다. 1930년대부터 일본은 도서마다 전표를 꽂아 유통했다. 호린도 서점은 입고, 판매 시 이 전표를 기준으로 재고를 관리한 것이다. 도서 단품 재고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도 필요보다 많은 책들이 책장에 꽂혔다가 출판사로 반품되어 돌아가는 것이 ‘무거운 책을 모두 함께 파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책에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그가 1978년 진보초의 이와나미 북센터로 옮겨오고 제1회 진보초 북페스티벌 실행위원회부터 중심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진보초 북페스티벌은 1일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1991년 이 페스티벌이 시작됐을 때, 시바타 신은 방송국이나 잡지사에 행사의 취지나 의의에 대해서 ‘재밌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게 그의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일본의 앞날을 한탄하거나 출판계의 미래를 근심하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생각하는 척은 하지. 하지만 곧바로 저녁밥을 생각하니까. (중략) 진보초는 책의 거리야. 하지만 책이 없어도 인간은 죽지 않아. 세상에서 서점이 사라져도 대부분 인간은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지. 이 대전제를 잊고 ‘어떻게 해서라도 지킬 각오다’ 뭐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늘어나.”

 

서점은 거리의 한복판에 있고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반 세기 서점인이 거듭 강조하는 것처럼 ‘꼭 이래야 하거나, 저래서는 안 되는’ 건 없다. 그가 자신 있게 서점이 사라져도 사는 데 지장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거꾸로 책의 매력과 미래의 서점에서 일할 사람들에 대해 든든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년에 걸쳐 이뤄진 이 대화 여기저기를 모아 한 문단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나도 물론 책이 좋아.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해. 하지만 그것만으로 책을 파는 인간이 완성되는 건 아니야. 문화라든가 인간 지식의 향상에 공헌하는 역할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는 질척이는 진흙탕이 있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 책에는 이상한 매력이 있어. 책은 그와 관련된 사람이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지.”

 

더 읽는다면….

 

어느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페트라 하르틀리프 저 ㅣ 솔빛길

함부르크에서 아들 하나, 딸 하나와 함께 살던 부부가 있다. 남편은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 매니저이고, 아내는 프리랜서 평론가로 일해왔다. 그러다 덜컥 1,100Km 떨어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60평 서점을 낙찰 받게 된다. 입찰가격이 포함된 세 문장짜리 이메일로 시작된 동네 서점 모험 때문에 은행 대출을 얻고 직업을 바꾼다. 서점에 없는 책이라도 주문해두고 다음 날 찾으러 오는 동네 사람들, 2년 동안의 도제 수습 기간을 거쳐 정식 서점직원으로 인정 받는 제도, 함께 모여서 듣는 소박한 낭독회 풍경이 흥미롭다.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우다 도모코 저 | 효형출판

우다 도모코가 준쿠도 서점 오키나와 분점으로 옮겨간 것은 스물아홉 살이던 해였다. 만 서른한 살에 대형 서점 체인을 그만두고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 나하에 헌책방을 차린다. 이름을 울랄라로 정했는데, 간판에는 '시장의 헌책방 울랄라'라고 적었다. 책방을 열자마자 방송에 소개되었다. 이유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책방이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작냐면…. 0.5평과 1.5평이다. 처음 열었던 공간이 반 평, 확장한 '지점'이 1.5평. 그곳에서 이 서점 주인은 책을 읽고 앉아있는 게 주된 일과이다. 배로 책을 옮겨오기 때문에 기상이 악화되면 신간이 들어오지 않는 섬, 오키나와현산(産)이라고 부르는 지역 출판사들의 책이 유독 인기를 끌고, 도쿄고서회관에서 헌책 경매가 벌어지는 일본 출판 유통의 한 단면이 재미있다.

 

 

 

 

우리, 독립 책방
북노마드 편집부 | 북노마드

여기에서 독립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원래 뜻은 대량 유통하지 않는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출판물을 출간하는 출판사이면서 그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기도 한 몇 군데 독립 책방들이 그 원래 의미에 부합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전국 29곳의 '독립 책방'들이 모두 독립출판물만 판매할 수는 없다. 서울, 특히 홍대 근처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곳곳에 들어가 박힌 작은 책방들은 모두 책방지기들의 취향을 그대로 닮았다. 독립한 건 책방뿐이 아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작가, 만화가, 동화작가 “내가 추석에 읽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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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추석 연휴 계획이 없다면, 서점에 가자. 동네책방이든 인터넷서점이든. 5일 휴가 동안 책 1권은 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 좋아하는 소설, 전혀 관심이 없었던 만화도 좋다. 집안일에서 잠깐 벗어나고 싶다면, 친척들의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동네 카페로 가자. 침대에 눕자. 조용히 나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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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경(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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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혼자 있는 것은 누구에겐 꿈이고 누구에겐 설움이다. 이유는 달라도 괴롭긴 마찬가지. 속내 모르고 서로를 부러워도 하지만 긴 연휴를 견디려면 남의 시간을 탐하기보다 내 시간을 알뜰히 챙기는 게 낫다. 시간이 넉넉하면 『협상의 전략』처럼 평소 엄두를 못 냈던 두꺼운 책에 도전하면 좋겠고, 짬짬이 틈을 내야 하는 처지라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충분하다』를 강추한다. 삶에 두 번은 없다고, 그래서 모든 평범은 단 한 번뿐인 비범이라고 일깨웠던 시인의 유고시집을 읽고 나면, 심란한 일상이 더도 덜도 없는 한 편의 시임을 깨닫게 된다. 순간, 하늘의 보름달이 당신 마음에 뜰 것이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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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 휴가(imagery vacation). 클라이언트에게 종종 권하는 치료 기법이다. 가고 싶은 여행지의 풍경을 마음에 그려낸다. 소리와 향기, 촉감과 온기까지. 마치 지금 그곳에 있는 것처럼. 그 느낌에 잠겨 있으면 스트레스가 스르륵 풀린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는 동안, 나는 심상 휴가를 떠났다. 책장을 펼치면 가루이자와, 아오쿠리 마을, 아사마 산으로 순간 이동을 했다. 책장을 덮으면 다시 서울. 책을 다시 펼치면 숲 속 별장과 계수나무가 보였고, 졸참나무 장작이 타는 냄새와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가 들렸다. 책 속의 문장처럼, 나는 "혼자 조용히 충족되어 있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문장들은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물이 젖듯 몸으로 스며들었다. 책이 끝나자, 책 속 세상과 내가 사는 현실의 낙차를 크게 느껴야 하는 부작용은 있었다. '나는 언제쯤 답답한 진료실을 떠나 아오쿠리 마을 숲 속의 여름 별장 작업실에서 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어려울 것 같다.


 

 

권석천(기자)
커트 행크스 『발상과 표현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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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교 시절 나는 낙서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공책 곳곳에 관우ㆍ장비 같은 삼국지 인물이나 친구들 얼굴을 긁적였다. 세월이 흘러 초년병 기자 때였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타자로 등장하는 영화 '내추럴'을 보았다. 영화엔 야구 경기를 취재하는 기자가 삽화를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삽화 그리는 기자도 괜찮겠는 걸? 그 꿈이 도진 건 최근 만화가 권용득이 에세이집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 사진전문기자 권혁재가 『권혁재의 비하인드』를 내면서다. 만화가, 사진기자가 무슨 글까지 잘 쓰는 거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나라고 삽화 그리지 말라는 법 있어? <중앙일보> 만평 그리는 화백 박용석의 강력 추천으로 『발상과 표현기법』을 샀다. '느낌으로 그려라.' '눈→ 두뇌→ 손→ 눈의 순환이다.' '자신과 도구(펜)를 일체화시켜라.' 이번 연휴 나는 이 책에 도전할 것이다. 혹시 아는가? 몇 달 뒤쯤 삽화 그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


 

윤지회(동화작가)
수신지 『3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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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인가? 그림책인가? 그림이 예뻐서 샀다가 재밌게 읽은 『3그램』은 일러스트레이터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었던 그래픽노블이다. 책을 열면 먼저 따뜻한 먹색의 드로잉이 눈에 띄는데 시각적으로 즐겁다. '3그램'은 난소 하나의 무게라고 한다. 작가는 난소암으로 힘들었던 20대의 투병기를 무겁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었는데 흔히들 생각하는 슬프고 힘든 암투병기와 달리 심각하지 않아서 좋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지는 않지만 병을 치료하며 겪게 되는 감정적 변화를 눈으로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실제로 지인이 난소암에 걸렸을 때 추천했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게 된다면 평범한 오늘 하루가 조금은 더 소중할 것이다.

 

 

윤이나(칼럼니스트)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 산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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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핑계로 서문, 혹은 두어 장만 읽다 만 책이 한 가득이다. 그 책 무더기에서 추석 연휴 본가로 들고 갈 책을 추린답시고 한 권씩 들춰보았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과 경합을 벌이다 근소한 차이로 승리해 짐 가방에 들어간 책은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 산책2』. 사실 일단 연휴라면 책이고 뭐고 쉬고 싶을 뿐이고 쉬는 것에 가장 가까운 책이라면 역시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고를 수밖에 없다. 내 오늘은 여기 있지만 내년에는 기필코 떠나리라는 반복되는 다짐을 되새기기에도 좋다.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들고 호주로 향했던 어느 날처럼, 언젠가는. 이를테면 미리 보기 같은 느낌으로, 이번에는 영국이다.


 

 

펭귄(만화가)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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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 생활을 한지 4년 반. 여기, 나 말고 또 다른 한국인이 있을까 싶은 영국 안의 작은 도시에 사는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의 명절이 점점 낯설어져 간다. 연휴 기간, 한국에서 고향집으로 향하는 차들이 고속도로에 줄을 서고, 집집의 부엌엔 명절 음식 냄새가, 또 TV가 분주하게 추석 특집 프로를 내보내는 동안, 내가 속해 있는 이 곳에선 그저 어제와 같은 그림의 오늘을 보내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나와 추석 사이 연결 고리의 느슨함과는 별개로 여전히 필연적으로 맛보게 되는, 향수와 사모. 한 두 번은 재료들을 구해 명절 음식 비슷한 것도 만들어 남편과 함께 먹어 보았지만, 내가 만드는 전은 엄마의 전이 될 수 없다는 걸 느낄 때, 나는 한국에 있는 엄마와 나의 거리를 실감하게 되고, 그 거리의 아득한 만큼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즐거운 이야기의 책을 추로 달아 돌덩이 같은 마음을 끌어 올리는 것도 좋을 텐데. 이상하게, 눈물 뚝뚝을 예약한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무게를 더 얹어 저기 바닥 아래 끝으로 가, 더 큰 그리움으로 그리움을 다독이며 추석을 보내고 싶다.


 

이은의(변호사)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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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을 해달란 요청에 덜컥 '좋아요'를 외쳐놓고, 쉽게 첫 문장을 떼지 못했다. 내게 『오베라는 남자』가 왜 좋았는지, 다른 이들에게 이 책이 좋을 이유가 같은지가 망설여졌다. 정직하고 까칠한 영감님인 오베 씨에겐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 오베 씨의 아내는 '그동안 흑백이었던 인생'에 '다양한 색깔을 가진 컬러' 같은 존재였다. 그런 아내가 먼저 죽고 컬러를 잃은 흑백의 인생에 남겨진 오베 씨는 자살을 결심하는데, 이 즈음 이사온 이웃과 얽히게 된다. 아내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색깔을 칠해줬다면, 이웃은 성가시게 인생에 끼어들면서 색을 덧칠한다. 덧칠해진 색깔이나 색깔을 칠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외롭고 밋밋했던 삶은 소소한 이야기들이 생겨나며 온기와 활기를 띄게 된다. 『오베라는 남자』는 읽는 이에게 인생이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풍경이란 무엇인지를 마음 따뜻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산다는 것은 가슴 벅찬 설렘과 기쁨으로도 행복을 만들지만 귀찮은 관심과 번거로운 어우러짐으로도 보람을 일군다.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그렇게 설레거나 귀찮게 만드는 곁의 사람들을, 그들과 함께 하는 오늘을 뭉클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너무 많은 이들과 어울리게 되거나,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않게 되는 추석 연휴에 이 책이 좋을 것 같은 이유다.


 

 

김동영(작가)
커트 보니것 『마더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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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전에 반열에 오를거라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커트 보네커트는 매 작품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재치있고 명쾌한 문장으로 써내려 갔기 때문이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마더 나이트』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가 뒤죽박죽 엉켜 있지만 하나도 그것이 어색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참신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영향 받은 작가라서 그런지 책을 읽다 보면 하루키가 어떤 부분에서 그의 문체와 이야기를 풀어 가는 과정을 배웠는지 확인할 수도 있어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쉽게 읽히지만 절대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책이다.


 

신예희(작가)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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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출신 작가이자 언론인 이사벨 아옌데는 사촌 지간이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축출되자 베네수엘라에 망명했고 작가로 데뷔한 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굳이 작가의 인생 역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작품 속에 그것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체념하는 여성, 참지 않는 여성, 순종하는 여성, 목소리를 내는 여성. 아옌데의 책에는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 부드러우며 강하고 꼿꼿하면서 유연한 그들의 모습에 내 심장이 뛰고 내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 술술 읽히는 이사벨 아옌데의 책이 함께한다면 짜릿한 추석이 되지 않을까. 연휴 후유증에는 『세피아빛 초상』을 권한다.


 

 

이진송(칼럼니스트)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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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혼자 있기를 선택한 이유는 가지각색이겠지만, 꿀송편을 걸고 말하자면 "오랜만에 만나 할 말 없는 친척들이 무차별 폭격하는 잔소리"로부터 피신한 사람들 꽤 많을 것이다. 왜 이렇게 살이 쪘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와 같은 '고나리'는 명절 단골 레퍼토리고, 이번에는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새로 등판할 예정이다. 아…! 사랑하는, 혹은 어쩔 수 없이 얽혀버린 혈연들과 벌이는 젠더 관련 논쟁은 상상만 해도 뒷골이 당기고, (고구마, 호박이 아닌) 호박 고구마 먹은 답답함이 밀려온다.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책을~ 아침 사과처럼~꺼내 읽어요~ 본격 실용주의 페미니즘 책, 혼자서 물개박수 치며 읽어도 좋고, 이동하는 동안에 읽어서 전투력을 높여도 좋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지진이 날 때는 책상 아래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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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5.9까지 치솟은 지진이 발생했다. 13일 기준으로 지진 감지 관련 신고가 5만여 건이 넘게 접수됐다. 도심의 유리창이 깨져 나가거나, 건물의 기둥이 심하게 흔들려 콘크리트 블록이 모두 어긋나고 벽돌 일부가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여러 명이 다치고 수많은 국민이 두려움에 떨었다.


이제까지 한국은 일본보다 지진안전지대라고 여기던 인식이 여러 번 번복되면서 사람들은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재난 상황을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의 못 미더운 재난 방지 대책과 사고 이후에도 올바른 수습이 안 되는 경험도 여러 번이었다. 지진뿐만 아니라 태풍, 홍수, 폭설 등 나와 내 가족이 위험해질 상황은 늘 곳곳에 도사린다.


재난 상황에 대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로 나뉘고 혼란스러운 이때, 재난과 재해 상황 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별로 실제로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일러주는 도서를 소개한다.

 

 

서바이벌, 이 책으로 배운다

 

 

재난시대 생존법
우승엽 저 / 들녘

서울에서 내진설계가 된 건축물은 겨우 10%밖에 안 된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소의 노후화도 문제다. 고리 원전은 가동 이후 130여 차례나 멈춰 섰다. 방사능 유출이나 폭발 등의 문제가 벌어지면 우리나라 전체가 방사선 피폭의 영향을 받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의 눈높이에서 일목요연하게 재난에 대비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방법과 물과 불을 최소화한 재난요리법, 급수가 중단되었을 때 자연에서 식수를 만드는 법, 재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스마트폰 앱 등을 소개한다.

 

 

 

방사능 지진에서 살아남는 법
고현진 저/시공사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등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지침과 요령을 알려준다. 특히 지각 변동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이 유출될 경우 지진 자체로 일어나는 피해보다 훨씬 더 장기적이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방사능과 지진에 대한 기초 지식, 국내 원자력 발전 현황과 안전 관리, 실제 방사능 유출 사고 시 행동 요령, 부록으로 안전 구호품 소개 및 방재 대책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SAS 서바이벌 가이드
존 '로프티’ 와이즈먼 저/이영경,이은일 공역 | 필로소픽

세계 최정예 특수부대 SAS의 생존기술을 담은 서바이벌 가이드북. 등산, 여행, 캠핑, 재해, 전쟁 등으로 문명생활에서 벗어났을 때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생존을 위한 필수장비의 선택과 준비, 물도 식량도 없는 오지에서 살아남기, 비바람에 끄떡없는 피난처 짓기, 부상당한 동료를 위한 응급처치, 태풍?홍수?지진 등 자연재해 극복하기,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상황에서 길찾기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이 서바이벌 시나리오와 함께 소개된다.

 

 

 

지식
루이스 다트넬 저/강주헌 역 | 김영사

표지 그대로,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리부팅 안내서'이다. 우주생물학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 루이스 다트넬은 이 책에서 핵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대재앙을 맞이한 인류를 전제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제일 필요한지 살펴보는 동시에 인류의 지식 발전 과정을 정리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 충분한 식량과 깨끗한 물, 의복과 건축 자재, 에너지와 필수적인 의약품 등을 어떻게 맨손으로 준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종이와 도자기, 벽돌과 유리, 강철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재난은 왜 일어나는 걸까

 

 

재난 불평등
존 C. 머터 저/장상미 역 | 동녘

재난을 자연과학자의 시선으로만 보고 연구해 오던 지진학자가 재난과 전후 상황을 사회현상으로 보기 시작하며, 왜 자연과학적으로는 유사하거나 동일한 규모의 재난이 어디에서 언제 일어나느냐에 따라 다른 크기의 피해로 이어지는지, 왜 같은 수준의 피해를 입어도 어떤 사회는 재건하는 데 1년이 채 안 걸리고 어떤 사회는 재기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지는지를 비교관찰해 쓴 책이다. 잘 알려진 아이티 지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미얀마 사이클론 등을 1차적으로 자연과학의 관점, 2차적으로 사회과학의 관점으로 비교분석하여 자연재해라는 자연현상이 어떻게 사회 문제가 되는지를 밝혀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
이기화 저 | 사이언스북스

지진학 역사에서 분기점이 된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지진파, 지진 현상, 지진 재해 등 지진학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를 거의 모든 독자를 위해서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 한반도에서 일어난 지진을 삼국사기 등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해 한반도에서의 지진 발생 가능성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어 한반도 지진 안전성에 궁금증을 가진 많은 독자에게 역사적 정보를 제공한다. 지진이 일어난다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과 지진의 물리학적 요소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재난 반복사회 대한민국에서 내 가족은 누가 지킬 것인가?
김석철 저 | 라온북

"나 떠날 거예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유가족이 TV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토록 큰 참사가 일어나기까지의 과정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이후의 후속대책 역시 실망스러웠다. 대한민국에서는 유사한 원인을 가진 유사한 재난, 즉 '후진국형 재난'이 반복되고 있다. 안전 분야 전문가인 저자가 세계 각지의 재난과 그 후속대책을 분석한 책. 국가가 모두를 지켜줄 수 없다는 인식과 함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위험관리와 함께 재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대학생이 사랑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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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aktasburak92

 

시의 계절인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대학생에게 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가 함께 읽어보고 싶은 시를 선정했다.

 

 

현실을 짚는 시

 

1. 진은영, 「청춘2」,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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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고 싶습니다
푸른 사과 더미에
깔려 죽고 싶습니다
- 「청춘」 중

 

대학생에게 청춘은 꼬리표 같이 따라붙는 단어다. 청춘은 대개 푸르고 빛나며, 언젠가 붉은 열매를 맺어야 마땅한 것처럼 묘사된다. 흔히 청춘을 내세우며 고난을 참고 견뎌, 끝내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때때로 열매를 전부 떨구고 거기 깔려 죽고 싶은 심정 역시 지금의 ‘현실적인 청춘’이다. 이 시에선 현실의 청춘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2. 김소연, 「원룸」, 『수학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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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생각에 가만히 골몰하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엿듣는 느낌이 온다

꿈이 끝나야 슬그머니 잠에서 빠져나오는 날들
꿈과 생의 틈새에 누워 미워하던 것들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이야기는 그렇게 내 곁에 왔고 내 곁을 떠나간다
- 「원룸」 중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를 가면 자연스럽게 자취를 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조그만 원룸에 혼자 누워 있다 보면 가족과 공유하던 시간 대신 정적만이 주변에 가득하다. 그 정적에는 쓸데 없는 생각이 대신 자리를 차지한다. 꼭 이 시처럼 누군가의 삶을 엿듣듯이, 옥수수처럼 가지런하고 얌전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특별하거나 간절하지 않다. 모든 일은 내일의 날씨처럼 찾아오고 흘러가며, 그렇게 통과하듯이 살아간다.


3.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입 속의 검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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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 중

 

대학생들은 대부분 취업을 꿈꾸며 스펙을 쌓고자 혈안이 되곤 한다. 토익, 텝스를 비롯한 외국어 능력부터 컴퓨터 활용 자격증, 인턴 경험까지. 따지고 보면 경쟁자인 또래의 스펙과 자신의 스펙을 비교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앞서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불가항력이다. 자기소개서에 차별화를 주는, 그럴듯한 한 줄을 더 적기 위해 이것저것 하다 보면 반대로 가슴 한 켠이 공허해진다. 말 그대로 스펙용 활동을 했을 뿐, 정말로 가슴 속에 남겨지는 것은 없다. 나는 나 자신을 향한 애정으로 무엇을 했던가 생각한다.

 


나를 사색에 빠뜨리는 시


4. 이성복, 「그 여름의 끝」, 『그 여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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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
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 「그 여름의 끝」 중

 

이번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수험생 시절 ‘나의 절망’이 빨리 끝나길 바라며 공책 맨 뒷장에 써놓곤 했던,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 대학생만 되면 끝날 줄 알았던 ‘그 여름’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걸 보면 ‘나의 절망’은 조금씩 자신의 모습만 바꿀 뿐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이제 와서야 ‘나의 절망’들로 인해 살아진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자신만의 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스스로 붉게 피어 오르는 중이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5. 윤동주,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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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일제의 압력에 초연함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저항의 시를 써 내려갔을 때, 윤동주는 20대에 불과했다. 부정적 현실에 대해 추호의 양심적 거리낌도 없는 삶은 살고자 했던 시인의 마음이 드러난다. 이를 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힘든 상황에서 나다운 모습을 잃어가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볼 때다.

 

6. 황유원, 「루마니아 풍습」, 『세상의 모든 최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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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전생을 후생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다, 물려줘선 안 될 것까지
그러므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
먼저 이불 속에 묻히고
- 「루마니아 풍습」 중

 

나이를 먹을수록 장례식에 참석할 일이 많아진다. 동시에 사람의 죽음은 그저 사람의 풍습대로 치러짐을 배우게 된다. 남겨진 사람들은 죽음의 풍습으로 함께 할 수 있을 뿐, 당사자의 죽음은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다. 새삼스럽게 삶의 무게를 더하는 일이다. 죽음의 풍습을 함께 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답습하고, 성인의 일은 더 늘어만 간다.

 


내게 위안을 주는 시


7. 황인찬, 「낮은 목소리」, 『구관조 씻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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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울고 있었다

낮은 곳에 임하시는 소리가 있어
계속
눈앞에서 타오르는 푸른 나무만 바라보았다

끌어내리듯 부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이 어려서 신을 믿지 못했다
- 「낮은 목소리」 중

 

여전히 나는 어리고 불안한 것 같은데 의지할 곳은 줄어든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들어간 대학에서 또 다른 실패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절망을 가지고 온다. 황인찬 시인의 시는 그럴 때 읽으면 내면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준다. 황인찬 시인은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는 시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8.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슬픔이 없는 십오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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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

 

슬픔이 없는 나날을 꿈꾸지만 우리는 모두 무수히 많은 슬픔의 시간에 잠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슬픈 날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 시의 구절마다 마음이 머문다. 오로지 혼자 견뎌내는 시간들이 힘들기는 하지만 이 시를 읽으면 큰 위로와 위안이 된다. 분명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느끼는 유대감일 터다. 힘든 상황을 외면하거나 모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이 시를 읽으면서 한번쯤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게 더 큰 힘이 될 때도 많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춘들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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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북카페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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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표를 들여다보면 강의 사이마다 뚫려있는 공강 시간에 벌써부터 무료함이 앞선다. 유난히 공강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면 학교 근처 북카페에서 여유로운 독서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개강을 맞아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들이 독서나 스터디하기 좋은 대학가의 카페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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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대 북카페 : 꽃피다이화다방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75 (신촌역 근처)

 

신촌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화다방’은 이대생들의 아지트로 불린다.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깔끔하며 공부나 독서에 편리한 책상이 배치돼 있다. 복층의 건물 구조는 부족한 자리에 대한 걱정을 줄여준다. 재즈풍이나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카페 안 사람들의 대화 소리 또한 음악 소리보다 크지 않아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심플한 듯 아기자기하게 나열된 여러 소품은 잠시 책을 벗어난 시선이 머무르기 좋다.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책에 빠져들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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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국대 북카페 : 에코의 서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1187-7 (보정동 카페거리)

 

단국대 근처에 위치한 죽전 카페거리에 가면 있는 ‘에코의 서재’는 세계적인 작가이자 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이름답게, 카페 안쪽 가운데 책장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서적이 다수 비치돼 있다. 테이블은 각기 다르게 생겼고, 엔티크한 인테리어의 의자와 조명에서는 고즈넉한 느낌을 풍겨 나온다. 빈티지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는 책장, 낡은 책과 새 책들이 불규칙하게 섞인 모습이 멋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음악 소리는 역시 책 읽기에 적당한 음량이다. 여러 요소가 모여 자연스럽고 따스한 분위기를 낸다. 음료와 책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또한 이 가게는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김도진(장동건)이 서이수(김하늘)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장면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점차 선선해지는 가을에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테라스에 앉아 음료 한 잔, 책 한 권을 즐기는 여유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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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울대 북카페 : 세상과 연애하기
서울 관악구 관악로길 14 (서울대입구역 근처)

 

6년 전 비영리 활동을 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빌려 갈 수 있다는 특별한 운영 방침이 존재한다. 현재 카페에서 소장 중인 책은 모두 기증된 책이다. 책과 독서 관련 활동은 물론 공연이나 각종 모임이 이뤄지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조용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조금은 소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곳이란 점에서 의미 있다. 어쩌면 이 작은 공간에서 세상과 다양한 인연을 맺을 수도 있는 법. 작고 아담하지만 한번 오면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이곳에서 자신의 책을 기증하고,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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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대-덕성여대-성신여대 북카페 : The 1st penguin
서울 성북구 인촌로28길 6 사이룩스빌딩 (안암역 근처)

 

고려대와 가깝지만, 덕성여대나 성신여대와도 멀지 않은 북카페 ‘The 1st penguin’은 이름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카페 내부의 벽면에 크게 적혀 있는 ‘성취(Achievement)’라는 단어가 카페의 개성을 보여준다. 가게의 철학 또한 이와 어울린다. The 1st penguin에서는 주 고객인 학생들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동시에, 자기계발을 돕는 유익한 콘텐츠를 직접 제공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게 시험공부나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독서는 물론이고 공부를 하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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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세대-이대 북카페 : 북카페 파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34 신흥빌딩 3층 (신촌역과 이대역 근처)

 

북카페 ‘파오’의 전제척인 분위기는 매우 조용하다. 가게에는 클래식 음악이 연신 흘러나오고, 가게를 찾은 손님들도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전형적인 북카페다. 책장에는 국가별로 책들이 배열돼 있고 미술, 건축, 여행 관련 책 중심으로 한 그룹이 더 자리한다.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여행서적들. 여행에 대한 정보를 찾거나 간접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이 반색할 곳이다. 손님들 외에 가게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양질의 서적과 잔잔한 음악뿐인 만큼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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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상명대 근처 북카페 : 카페 라이크
충남 천안시 동남구 천호지길 27 도솔빌리지 안서동 468-1 (천호지 근처)

 

천안의 대표 호수인 천호지가 내다보이는 테라스 덕분에 아름다운 경치와 마주할 수 있다. 가수 버스커 버스커 노래에도 나오는 유명한 단대 호수인 ‘천호지’의 경치가 카페의 한 벽면을 가득 채우며 절경을 이룬다. 카페의 크기는 그리 그지 않아 책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인문학 책은 물론이고 시집, 화집 등 카페의 잔잔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좋은 책들이 많다. 좌석 간격도 적당하고 인테리어도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좋아 누구든지 만족할 수 있는 카페다. ‘what do you like?’라는 카페 대표 문구처럼 이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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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어려운 책에 대한 어려운 리뷰]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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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대인 기호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자전적인 소설 『무사들』에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데리다를 등장시킨다. 사이다(데리다)는 1968년 5월 혁명 직후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해체”라는 괴상한 이론을 제기하며 소수지만 열렬한 추종자들을 획득하는 인물이다. 사실 『그라마톨로지』를 비롯해 서구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데리다의 주요 작업들은 이미 1967년에 시작됐지만, 구조주의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비판은 분명 1968년을 예고하는 면이 있다. 

 

 

포스트구조구의의 대표적인 사상가

 

자크 데리다는 미셸 푸코, 질 들뢰즈와 함께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꼽힌다. 1960년대 프랑스 학계에서 시작된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연속된 사상운동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으며, 이 두 조류가 언어, 욕망, 차이 등 공유하는 주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포스트(post)라는 접두사에 연속과 단절이라는 의미가 모두 들어있듯이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상당히 다르고 심지어 적대적인 면도 있다.  

 

구조주의는 근본적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엄밀성을 추구하는 강단 학자들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인간과 세계의 가변적 영역을 배제하는 구조조의 방법론은 결국 형이상학적 성격을 피하기 어려웠다. 영국의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이 『역사유물론의 궤적』에서 지적한 것처럼 프랑스 68년 5월 혁명은 그 자체로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일수 있었다. 구조주의가 2차 대전 이후 5?60년대를 거치며 안정화돼 가던 서구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영이라면 68년 혁명은 바로 그 구조에 대한 집단적 반항이었다.

 

드골의 급속한 산업화 정책으로 프랑스는 60년대 들어 2차 대전의 상흔을 지우고 물질적 풍요를 누렸다. 대학교육이 확대되어 이전 세대보다 훨씬 넓은 층이 고등교육의 수혜를 받았으며, 영화의 누벨바그 세대가 보여주는 것처럼 미국 문화와 자유주의가 젊은 세대에 널리 퍼졌다. 반면 드골의 통치는 매우 권위적이었으며, 프랑스 사회는 여전히 전통과 인습의 힘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독립에서 보이듯 3세계 운동의 성장과 미국식 자유주의라는 모순적인 요소들에 고무된 젊은 세대는 모택동주의와 같은 급진주의에 기울어졌다. 내재된 사회적 갈등과 불만은 1968년 학생들의 시위로 갑자기 터져 나왔다. 시위는 눈덩이처럼 확산되었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프랑스를 혁명의 열기로 불태웠던 68년 5월 봉기는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소멸되었다.

 

혁명도 드골도 사라진 70년대의 프랑스는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 같은 소설에 나타나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소비 자본주의로 들어섰다. 때문에 남미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 투쟁을 하다 나중에 미테랑의 비서를 지낸 레지 드브레 같은 인물은 68년 혁명을 두고 “중국으로 여행을 생각했으나 결국 발견한 것은 콜럼버스처럼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냉소적인 사후 평가일 뿐이며 68년 혁명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과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프랑스 68년 혁명의 발발과 좌절은 혁명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던 프랑스의 젊은 지식인들은 발전한 현대 사회의 구조 속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그 혁명이 결국 구조 앞에 좌절해 버리는 현실을 동시에 보았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구조주의의 바탕 위에서 구조주의를 비판하고 구조적 안정성에 이론적 균열을 내고자 했다. 이러한 지향을 잘 표현하는 것이 68년 혁명 당시 유행했던 “판석 아래 모래가 있다”는 표어일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판석(구조)이 전부가 아니라 그 역시 구조로 포괄할 수 없는 것들(욕망, 실재, 권력 등)에 의해 지탱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포스트구조주의는 “판석”을 들어내고 “모래”를 드러내려 했다. 뤽 페리?알랭 르노의 말대로 데리다, 푸코, 들뢰즈로 대표되는 포스트구조주의야말로 68년의 사상이었다.

 

 

기호학을 기록학으로


구조주의 기획은 소쉬르의 언어학 모델에 기초한다. 소쉬르는 기표(말)와 기의(뜻)은 완전히 무관하며 그 결합은 임의적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암묵적으로 서양 형이상학의 주요한 전통 중 하나인 실재론에 종지부를 찍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의 결합을 언어 전체의 차이체계에 의해 고정된 안정적인 모델로 바라보았다. 소쉬르는 언어학을 이러한 차이체계가 어떻게 의미를 생성하는지를 밝히는 학문으로 규정했으며, 이러한 차이체계(구조)가 언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모든 의미체계에 대한 일반적인 과학, 세미올로지(기호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떻게 보면 60년대 프랑스 구조주의는 세미올로지라는 “소쉬르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학으로부터 구조주의를 받아들인 인류학(레비-스트로스), 정신분석학(라깡), 마르크스주의(알튀세르)는 저마다 인간 정신과 사회를 포괄하는 보편적 구조를 밝히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자기 분야의 우위성을 경쟁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서 구조주의가 기대고 있는 소쉬르의 모델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그는 여기서 기표들의 차이체계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실제로는 문자라는 눈에 보이는 물질성을 가진 매개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기발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데리다에 따르면 서구 철학의 전통은 글에 비해 말이 더 본원적인 것이라는 음성중심주의에 지배되어 왔고, 그것은 로고스중심주의와 결합하여 서구 형이상학을 지탱해 왔다. 예컨대 글을 단순히 말의 모사 또는 보충물로만 파악하는 음성중심주의는 내면의 소리(말)와 대상을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플라톤 이래의 서구 형이상학은 이런 음성/로고스중심주의에 기대어 이성=말(글)=실재로 파악해왔다.

 

소쉬르 역시 문자보다 소리에 우위를 부여하고 기표/기의 관계를 고정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음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소쉬르가 『일반언어학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언어를 연구하는데 있어 만일 문자가 없다면 “모든 언어의 녹음 견본을 수집해야” 하는 불가능한 작업을 부딪쳐야 한다. 문자는 소쉬르의 언어학에 의해 배제되었지만 실제로는 언어학 연구의 전제 조건인 것이며, 나아가 소쉬르가 의미가 생성되는 모든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 차이체계는 실제로는 (소쉬르가 배제해버린) 문자 체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일반언어학강의』에서 소쉬르가 제시한 세미올로지 기획을 문자학 혹은 기록학을 의미하는 “그라마톨로지”로 대신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라마톨로지는 세미올로지와 같은 포괄적인 일반과학이 아니라, 그런 일반과학이 불가능함을 드러내줄 뿐이다.

 

 

보편적 과학성에 숨겨진 배제

 

해체란 『그라마톨로지』에서 보여준 것 같은 뒤집기를 통해 보편적 과학성으로 내세우는 모든 논리는 자신의 체계에 맞지 않는 것을 은밀히 배제한다는 것, 즉 스스로를 자체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모든 형이상학적 주장은 사실 자신이 배제시킨 바로 그것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데리다는 언제나 항상 언어(개념)는 실재를 완전하게 포착할 수 없으며 어떠한 이론도 절대적 과학성, 보편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이러한 작업은 데리다와 마르크스의 접목을 주장한 마이클 라이언의 주장처럼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어느 정도 맞닿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데리다의 비판방식이 너무 근원적이었기 때문인지, 데리다 자신이 초기부터 좌파에 대해 지지를 표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해체 이론의 정치적 성격은 대단히 모호하게 인식되어왔다. 특히 데리다 이론을 초기에 가장 열렬히 받아들인 것이 영미권의 매우 탈정치적인 문학비평의 한 사조, 이른바 해체비평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면이 있었다. 반면 포스트식민주의를 주창한 가야트리 스피박이나 마이클 라이언 등은 데리다의 방식을 좌파 정치에 이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직 남아있는 데리다의 가능성

 

데리다는 1993년에 마르크스에 대한 오랜 침묵을 깨고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을 썼는데, 소련이 몰락하고 역사의 종말이 회구되는, 마르크스주의가 완전히 한물갔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 시점에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소환하고 긍정한다. 그러나 데리다 특유의 비의(秘意)적인 어투로 가득한 이 책 역시 마르크스적인 현실 사회에 대한 분석과는 거리가 멀었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데리다는 2004년에 죽었고, 해체 역시 이제 한 때의 지적 유행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하지만 모든 형이상학을 거부한 데리다의 이론이 가진 파괴력은 여전히 유용해 보이기도 한다. 해체와 혁명적 사회과학의 결합의 가능성은 아직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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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마톨로지자크 데리다 저/김성도 역 | 민음사
독자들은 데리다가 자신의 텍스트와 타자의 텍스트를 서로 교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창안하며 전통적 선입관과 전제로부터 벗어나 참된 문제를 제기한 문제학의 발명가였음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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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커피를 쉽게 마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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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뛰어넘어 사랑 받는 작품을 고전이라 한다. 고전으로 인정 받은 작품들은 비단 문학뿐 아니라 음악에서는 클래식, 패션에서는 명품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오랜 생명을 이어간다. 고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들이 있지만,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추천하는 편이다. 마치 로맨스 소설처럼 달콤하면서도 애틋한 폴과 시몽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60여 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넘치는 신선함과 생동감에 놀라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하는 고전의 매력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주인공 폴은 서른아홉 살의 실내장식가다. 그녀에게는 오랜 연인 로제가 있다. 차를 급하게 몰고, 낯선 이들과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으며, 젊은 여인과의 하룻밤을 즐기는 로제는 아직 자신을 청춘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폴은 자신이 조금 지쳤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마음에 드는 직업이 있었고, 후회스럽지 않은 과거와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지나버린 일이다. 현재의 폴은 매일 저녁 로제를 기다리거나 로제의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것에,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에, 앞으로도 영원히 그래야 한다는 것에 몹시 지쳐가는 중이다. 폴은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오늘 6시에 프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수줍고 조심스러운 시몽의 쪽지는 지금까지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한꺼번에 환기시켰다. 동시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짧은 질문은 그녀가 불평하면서도 어느덧 체념하고 받아들인 채 살아가던 단조로운 일상을 과감히 벗어던질 용기가 있는지 묻고 있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불타는 열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이 단순한 로맨스 소설을 뛰어넘는 이유는 작가의 이 질문 때문이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힘들게 하루를 버티고 있는 현대인들 모두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소망들. 실제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치지 않고 당신의 꿈을 멋지게 펼쳐 보일 수 있는가. 또는 당신에게는 아직 사랑할 자격이 남아 있는가. 질문이 끝나고 작가는 폴과 시몽의 경우를 보여주며 다시 묻는다. 폴과 시몽 혹은 로제, 당신은 어느 쪽인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9월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여름과 가을이 뒤섞인 계절은 이제 막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려는 폴의 모습을 닮았다. 작품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도 영원히 한 계절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무엇인가는 계속 변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적응해가야 하는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땅이 각각 폴과 로제로 출연한 아나톨리트박 감독의 1961년 작 흑백 영화 <굿바이 어게인>의 메인 주제곡으로도 쓰인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은 작품 감상의 배경 음악으로 손색없다. 손수 내린 커피 한 잔과 브람스의 음악, 그리고 사강의 작품이면 가을의 사색을 즐기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1850년대 프랑스에서 개발된 프렌치 프레스를 이용하면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좋은 커피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원두 선택만 신경쓴다면 도구나 만드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2만 원 정도면 구할 수 있는 프렌치 프레스에 원두와 끓는 물을 넣고 잘 섞은 뒤, 4분이 지나면 필터를 지그시 눌러 컵에 따라 마시면 된다. 프렌치 프레스용으로는 강하게 볶은 원두가 적합한데, 즐겨 찾는 커피 전문점에서 풀시티급 이상으로 로스팅된 원두를 조금 굵게 분쇄해 구입하는 게 포인트다. 테이크 아웃 커피보다는 불편하겠지만, 하루 한 잔 손수 내려 마시는 커피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새로운 계절을 환영해보자.

 

프렌치 프레스

재료


커피 원두 15g
뜨거운 물
프렌치 프레스
나무 스틱


만들기

 

1 조금 굵게 분쇄한 강배전 원두 15g을 프렌치 프레스에 넣는다.
2 90℃의 물 150ml를 넣고 나무 젓가락등으로 골고루 저은 뒤 뚜껑을 덮어둔다.
3 4분 뒤 필터를 아래로 지그시 눌러 커피 가루를 걸러낸 후 컵에 따라 마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의리와 낭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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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뉴욕에 출장 겸 여행을 다녀왔다. 수많은 도시 중에서 뉴욕을 선택한 이유는 책과 술 두 가지 모두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뉴욕에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바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서점업계가 어려운 한국과 달리, 미국의 서점은 2007년 이래로 매출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낮에는 서점을 구경하고 밤에는 바에서 술 한잔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일정이었다. 그저 바에서 하나의 규칙만 지키면 됐다.

 

“첫 잔은 김렛을 마신다.”

 

김렛의 짜릿하면서도 상큼한 맛은 첫 잔으로 마시기에 적합하다. 더불어 바마다 사용하는 재료와 조주 방법이 조금씩 달라서 눈요기로 공부하기에도 좋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추리소설 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가 쓴 『기나긴 이별』을 읽으면 김렛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기나긴 이별』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건을 무덤덤하게 표현하는 ‘하드보일드 문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주인공은 ‘필립 말로’라는 사립 탐정이다. 영국의 코난 도일에게 셜록 홈스가 페르소나이듯이, 미국의 레이먼드 챈들러에게는 필립 말로가 있다. 그는 낭만과 의리 그리고 고독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캐릭터다. 커피 한 잔을 따르고 옆에 담배를 둔 뒤 불을 붙여 친구를 추모하기도 하고, 종종 홀로 술을 마시고 체스를 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혼잣말하는 것이 습관이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보면, 화려하지는 않아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책은 필립 말로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테리 레녹스를 도와주면서시작이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종종 술을 마시며 우정을 다진다. 그들이 항상 마시는 술은 김렛이다. 특히 테리 레녹스는 김렛을 너무 좋아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기 사람들은 김렛 만드는 법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이 김렛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라임이나 레몬주스와 진을 섞고 설탕이나 비터를 약간 탄 것에 지나지 않아요. 진짜 김렛은 진 반, 로즈사의 라임주스 반을 섞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거죠. 마티니 같은 것은 비교도 안 됩니다.”

 

과연 어떤 술이길래, 칵테일의 왕이라는 마티니가 비교도 안 된다는 것일까?

 

김렛(Gimlet)의 어원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설이 있다. 첫 번째, 김렛은 ‘날카로운 송곳’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김렛에는 꽤 높은 비율로 라임이 들어가기 때문에 맛이 짜릿하다. 마치 송곳에 찔리듯이 온몸의 신경을 깨우는 맛이기에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두 번째,20세기 초반의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왕립 해군들은 오랫동안 항해를 하다 보니 비타민C 섭취가 부족해서 괴혈병에 걸리곤 했다. 그때 외과의사이자 해군 소장인 토마스 김렛이 진에 라임주스를 섞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면 상할 염려도 없고 병사들의 건강과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되니 일거양득의 효과였다. 자연스레 그의 이름은 칵테일의 이름이 되었다.

 

그렇다면, 테리 레녹스는 왜 김렛을 즐겨 마시는 것일까?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동료들을 대신해 부상을 당한다. 동료를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의리의 사나이다. 전쟁 이후에는 알코올에 빠지지만, 그사이 엄청난 부자의 딸과 결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전쟁 이전에 만났던 연인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결국 그녀를 위해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즉 그는 알코올중독자에 가까운 삶을 살지만 동시에 의리와 낭만을 간직하는 사람이다.

 

김렛은 그의 의리와 낭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연결이 된다. 그는 “진 반, 로즈사의 라임 주스 반”이라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고집한다. 이런 고집은 이것저것 수시로 바꾸지 않는 의리의 성격을 대변하며, 동시에 자신만의 레시피로 술을 마신다는 것은 애주가만이 느낄 수 있는 낭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드카 마티니. 젓지 않고 흔들어서”라고 줄기차게 외치는 제임스 본드 또한 의리와 낭만의 사나이라고 볼 수 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고, 동시에 의리와 낭만이 떠오른다. 가을의 시작을 김렛과 함께한다면 꽤 괜찮을 것 같다.

 

김렛

 

재료


진 1.5oz
라임주스 1.5oz
얼음 약간

 

만들기


1 진과 로즈사의 라임주스를 1.5oz씩 얼음이 들어 있는 쉐이커에 넣는다.
2 진과 라임주스가 골고루 섞이도록 쉐이킹한다.
3 쿠프 글라스 혹은 마티니 글라스에 따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글날 특집] 한국은 문맹 제로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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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미신처럼 듣는 말이 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다’, ‘외국인도 배우면 금방 한글을 읽을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고,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문맹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내년부터 초등학교 1,2 학년에게 적용된다. 기존 27차시였던 한글 교육이 2학년 때까지 총 45차시 이상으로 늘어나 초등학교 한글 교육이 대폭 강화되는 게 주 요지다. 이번 개정에 관해 교육부는 입학 전 한글 선행학습이 상식처럼 여겨져 사교육이 늘어나는 현실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김중훈 교사는 현재 사단법인 좋은교사운동에서 한글 해득 교재 개발 및 한글문해교육전문가 과정 강의를 맡고 있다. 운서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세계 난독증 알리기 주간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의 문해 교육과 한글 교육 개선에 힘쓰고 있다. “문맹률보다 어느 정도나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지, 문해력이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며 초등학교에서의 한글 교육 중요성을 설파하는 김중훈 교사를 만나 ‘한글은 우수한 언어’라는 인식과 실제는 어떻게 다른지, 가정에서는 한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글날을 맞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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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늘린 교육과정


제7차 교육과정은 2000년 초등학교 1, 2학년을 시작으로 십여 년간 이어졌다. 그 당시 한글 문해와 관련한 교육 차시는 10차시 미만이었다. 한글을 모른 채로 학교에 오면 7시간 정도 만에 한글을 깨쳐야 한다는 말이 된다. 당시 교과서는 약 70%의 아동이 취학 전에 이미 문자를 해득하는 상태를 가정하고 개발되어 10여 년간 쓰였다. 한글 교육 차시는 이후로 점차 늘어 올해는 총 27차시로 늘었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게 김중훈 교사의 의견이다.


“2000년부터 적용된 제7차 교육과정 이후 10년 동안 한글 사교육이 크게 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학교 선생님들도 한글을 집에서 해 와야 교과서를 따라갈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최근 수업 시간은 십 년 전보다 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한글을 모르는 학생들은 3~4 주 정도면 한글을 깨쳐야 하는 상황입니다.”


늘어난 교육 시간만 보자면 한글 교육만큼은 공교육에서 가르치겠다는 교육부의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그러나 이제까지 국어 시간에는 자음과 모음을 배울 동안, 같은 시간 수학에서는 받침 있는 글자를 알아야지만 문제를 풀 수 있는 교육이 나오는 등 과목에 따라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한글 독해 능력이 서로 다른 문제가 있었다.


“국어 시간에 기역과 니은, 자모음 배울 때 수학 교과서에서는 첫째, 둘째 등 받침 있는 글자까지 쓰게 합니다. 이미 여러 번 문제를 제기했는데 올해 나온 실험 교과서에서도 여전히 수정되지 않았어요. 교과서 개발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학생과 교사 모두 실험 대상이 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교실의 양극화


김중훈 교사는 가장 큰 문제로 아이들 간의 문해능력 차이를 꼽았다. 환경과 능력에 따라 이미 큰 차이가 생겨서 하루빨리 개별화된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학교 입학한 아이들의 한글 문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전국적으로 조사했는데, 무엇보다 출발점부터 심각한 차이를 보이는 게 문제입니다. 물론 이제 갓 입학한 1학년은 한글을 몰라도 되지만, 같은 1학년 교실인데 2학년 수준 이상으로 글을 유창하게 읽는 아이들과 한글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같이 있는 게 문제입니다.”


“환경적으로 가난한 소외 계층이거나 결손 아이들은 예전보다 더 한글을 어려워합니다. 또한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급격히 늘어나 예전보다 더 한글지도에 전문성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즉, 교과서에 반응하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한글을 어렵게 익혀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학교 선생님들은 체감하지만 행정을 담당하는 분들은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이 잘 안 될 겁니다.”


최근 달라진 상황 중에는 다문화가정이 급격히 늘어난 측면도 있다. 외국어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랄 경우 한국어 자극을 다른 아이들보다 적게 받아 한글 해득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우리나라 다문화 가정의 97%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 어머니가 이주결혼 여성입니다. 모국어라는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엄마와 언어적인 자극이 필요한데, 어머니가 한국어를 구사하지 않으면 언어 자극이 부족해집니다. 본질적으로 읽기는 소리와 철자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국어 촉진이 부족하면 한글을 습득하는 게 더 어렵습니다. 쉽게 생각하듯이 일반 학생들과 같은 방식으로 방과후 수업 한글 교실, 한글 프로그램 등으로 이런 학생을 가르치면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말이 완성되지 않고, 어휘력이 부족한 경우에도 한글 읽기 이해가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첫째’를 가르치면 ‘째’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요. 경험 배경 안에서 어휘가 형성되는데, 자기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어휘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리와 철자를 연결하려면 자/모음의 명확한 음가를 알아야 합니다. 음가를 모르는 경우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발음 중심으로 지도를 하지 않으면 큰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경향으로는 다문화가정도 다양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4, 5살쯤 외국으로 건너가 생활한 아이들도 있고, 내내 외국에서 살다가 입학을 앞두고 온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당장 말부터 가르쳐야 하죠. 개별적인 문해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다문화가정 외에 결손 가정 및 상황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도 한글을 어려워하게 된다. 생활이 어려워 아이들의 교육을 제대로 못 챙겨주는 가정은 다른 가정과 비교하면서 부채감을 느끼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다르다고 느끼고 점점 공부에 자신이 없어진다.


“환경적으로 조손 가정이나 결손 가정, 생활이 어려운 가정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해도 가족이 함께 살고 형제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아이 혼자 있고 부모는 일하러 가는 등 혼자 있는 날이 많습니다. 어렸을 때 지속적으로 언어 발달을 촉진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언어 발달에 매우 치명적입니다. 특히, 도시 소외계층과 농산어촌 지역은 긴급하고 특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즉 문해교육에 전문성을 지닌 교사가 필요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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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률 0%의 신화


“올해 전국적으로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글 해득 수준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아는 아이들은 90% 이상, 낱말 단위까지, 받침 없는 글자까지 아는 아이들은 87% 정도였습니다. 완벽하게 글자를 해득한 아이들은 70% 정도로 생각보다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통 글자로 글자 모양을 보고 읽지만, 실제 자모음의 음가까지 정확하게 해득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않다는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난독증과 읽기 장애를 인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난독증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없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고, 난독증 학생이 없다고 가정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읽기 부진 증세가 있는 학생을 위한 실질적 정책도 부족했다.


“옛날부터 전시 행정 목적으로 학교에 입학하면 문맹이 아니라고 집계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문맹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 문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우리나라 문해 수준은 OECD 국가 중에 최하위 수준입니다. 글자를 읽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모든 나라에서 평균적으로 10%에서 20% 정도 존재하고 결정적인 문제를 지닌 아이들은 5%에서 7%로 보고 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 때문에 문맹자가 없다는 미신이 있어요. 한글이 우수한 건 맞거든요. 그렇다고 문맹자가 없는 건 아닙니다.”


낮은 문해 능력은 높은 확률로 학습 부진으로 이어진다. 학습 능력 부진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대부분이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일 가능성이 크다.


“학습 부진의 진짜 뿌리는 읽기 능력에 있습니다. 글을 유창하게 읽는 아이들은 읽기 이해도가 높아요. 더듬더듬 읽는 아이들은 문자를 해독하는 데 에너지를 다 쏟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교과에서 부진할 수밖에 없겠죠.”


“한 학생은 읽기를 못하는데 수 감각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수학 문제를 대부분 못 풀었어요. 옆에서 수학 문제를 읽어주면 대부분 푸는데, 문제를 읽는 게 어려워서 풀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런 아이들을 내버려 두면 잘하는 과목도 못하게 됩니다. 처음에 한글을 읽기 싫어지면 책 읽기가 싫어지고, 유창하게 읽을 가능성이 더 줄어듭니다. 수업시간에 이해하는 척하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와요. 학교 속의 생존 기술로 글을 이해하는 척하는 거죠.”


지역 격차도 점점 벌어진다. 교육열이 높고 경제적 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은 지역에서는 한글을 못 읽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 농어촌이나 어려운 지역에 갈수록 문해가 안 되는 학생들이 많다.


“아이들 따라 반응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부모님께 가정 지도를 요청 드려도 부모님이 못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보다 읽기 부진 지도는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확률로 보면 모든 학급마다 한 명씩은 한글 해득이 어렵습니다. 잘사는 동네에서는 한글 모르는 애가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어려운 동네로 가면 절반이 모르기도 합니다.”

 

 

불안해서 선행학습을 시키지는 말자


교육과정 개정 이후에도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혹시나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을까,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선행학습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김중훈 교사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한글을 읽는 데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만 5세 전에는 책을 많이 읽어주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읽어주는 글을 보면서 책은 재미있는 거라고 느끼게 될 겁니다. 부모님 품에 안겨서 정말 좋고 편안하다고 느낄 것이고, 책의 글자가 소리 정보를 가진다고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부모님은 항상 내 아이가 공정한 출발점에 서지 못할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자기가 입학 준비를 제대로 못 시킨 건 아닐까 걱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의 호기심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준비한다면 숫자를 1부터 10까지 쓰는 법, 자음과 모음의 소리,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쓰기는 가능하면 늦게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세 살, 네 살 때부터 쓰기를 시작하면 충분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힘있게 연필을 잡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글자가 삐뚤빼뚤합니다. 책은 많이 읽어주시되 너무 어렸을 때부터 쓰기를 시키는 건 아이들에게도 독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예외는 물론 있다. 선천적으로 발달 속도가 다르거나, 일찍 교정이 필요한 경우 빠른 교육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섯, 여섯 살 즈음 아이들은 글자에 관심을 보입니다. 관심을 가진다는 말은 배울 준비가 됐다는 뜻입니다. 이때 유독 글자에 관심 없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유심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발달적으로 글자와 소리를 인식하는 능력이 느릴 수 있어요. 그 학생들은 오히려 음소 단위까지 낮춰서 자음과 모음을 적절하게 가르치면 난독증을 가지고 있더라도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극복 가능한 수준까지 올릴 수 있어요.”


“미국에서는 RTI(Response to Intervention)라는 중재반응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문해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전문가가 와서 가르치고, 그래도 안 되면 상위 전문가가 와서 다시 가르칩니다.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자마자 학습장애 학생들이 절반으로 떨어졌어요.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우수한 소리글자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이 존재하고, 해마다 읽기 발달에 결정적인 시기를 그냥 놓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수업 시간이 늘어난다면 많은 학생은 학교 교육을 통해 한글을 탄탄하게 익혀 갈 수 있지만, 다문화가정이나 발달적으로 난독 증세가 있는 학생들은 반드시 더 높은 수준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 더 알아보기 : 한국 난독증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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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저 | 우리교육
『학교 속의 문맹자』는 학교 속 문맹자들의 실태와 그러한 현상의 밑바탕에 깔린 문제, 그 문제에 책임을 느껴야 할 이들은 누구이며, 문제 해결의 방법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다룬 연구 작업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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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자신감 세트 1정재석,이춘화 글/김중훈 감수 | 좋은교사(잡지)
『읽기 자신감』 시리즈는 의학과 교육 심리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고안되었고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에 대한 적용을 거쳐 개발된 프로그램입니다. 이 책은 언어치료사, 학교 현장의 교사들도 직접교수법 방식으로 지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기본 지식, 교수법, 지침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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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한글 학습 1~5권 세트최영환 저 | 길벗스쿨
저자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하게 창제된 우리 한글이 상형문자를 기반으로 한 한문 마냥 통으로 익혀지는 현실을 지적하고 '기적의 한글 학습' 시리즈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이 책은 '아야어여'부터 통합적으로 접근한 그야말로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입각한' 한글 학습 프로그램입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대학생들이 말하는 ‘혼자서’ 밥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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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pixabay

 

심장이 떨려온다. 망설임도 잠시, 용기 내어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몇 명이냐고 묻는 말에 눈도 못 마주치고, 조용히 검지만을 치켜든다. 처음 혼자 밥 먹으러 갔을 때의 어렴풋한 기억이다. 적응하면 편한 ‘혼밥’이라지만, 익숙지 않은 이들에겐 그 시간이 유난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20대들 사이에서 혼밥은 과연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는 지난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총 5일간 20대를 대상으로 ‘혼밥(혼자서 밥 먹기)’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20대 여성 66명, 남성 25명 총 91명의 응답이 있었다. 이들에게 혼밥의 빈도, 혼밥을 하는 이유, 식사의 종류 및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가격대 등을 물어보았다.
 


‘혼밥’하는 20대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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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은 ‘혼밥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였다. 그 결과 응답자의 74%의 이르는 인원이 일주일에 2번 이상은 혼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밥을 ‘매우 자주 한다(주 6회 이상)’는 인원과 ‘자주 한다(4~5회)는 인원’은 각각 13명(14%)과 26명(29%)이었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보통이다(2~3회)’에는 28명(31%)이 응답했다. ‘자주 하지 않는다(주 1회 이하)’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각각 20명(22%)와 4명(4%)에 그치며 낮은 비율을 기록했다. ‘상당수’의 인원이 혼밥을 실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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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혼밥 할 때 ‘주로 먹는 음식’에 관한 질문이었다. 중복 응답이 가능한 이 질문에 편의점 음식이라고 답한 인원은 41명(45%)으로 40명(44%)을 기록한 패스트푸드와 38명(42%)의 학식(학생 식당)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며 1위를 기록했다. 다음 순서로는 빵과 집밥이 각각 35명(39%)과 31명(34%)으로 뒤를 이었다. 혼자서 먹는 밥인 만큼 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이 상위권이었다. 반면에 도시락은 14명(15%)으로 가장 하위권에 머물렀다. 부모님이 도시락까지 챙겨줄 나이는 지났고, 혼자서 준비하기엔 번거롭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쉽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편의점 음식이나 패스트푸드, 학식(학생 식당)이 혼밥 메뉴로서 인기를 끌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20대가 혼밥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가격대 질문에도 같은 경향의 응답을 보였다. 3,000~6,000원 사이가 적당하다고 응답한 인원이 전체 응답자 중 67명(74%)으로 압도적이었고, 6,000원~9,000원이 12명(13%), 3000원 이하가 10명(11%)으로 뒤를 이었다. 20대는 주로 3,000원~6,000원 사이의 혼자서 먹기 간편한 음식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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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대가 혼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복 응답이 가능한 이 질문에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가 50명(56.2%), ‘시간이 없어서’가 49명(55%), ‘혼자 먹는 게 편해서’가 48명(54%)으로 세 가지 이유가 근소한 차이로 상위권에 포진했다. 다음으로 ‘돈을 아끼려고’에 34명(38%)이 응답했다. ‘시간적 여유도 없는데 같이 먹을 사람을 애써 구하기보다, 혼자 먹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판단이 혼밥을 하는 20대들의 생각이었다.

 

 

20대에게 묻는 혼밥 Tip!

 

이어서 20대에게 혼밥을 할 때의 ‘요령’에 관해 물었다. 이 질문에는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다. 먼저, 애초에 혼자 밥 먹기만큼 자연스러운 일도 없는데 왜 굳이 신조어까지 만들며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어차피 먹을 밥이라면 행복하게 먹는 게 중요하고, 타인의 시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응답과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갔다면 혼밥이라고 눈치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른바 혼밥 고수들의 답변이었다.

 

다음은 실질적인 요령에 관한 응답이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기, 노래를 들으며 먹기,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먹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라고 생각하며 먹기, 카페에서 푸드 및 음료를 먹으며 공부하기 등 다양하고 독특한 의견이 쏟아졌다. 한편, 혼밥인 만큼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핸드폰은 내려놓고 음식에 집중하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 혼밥 즐기기,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거나 혼밥에 특화된 가게로 가기 등의 응답이 있었다. 모두 혼밥을 ‘당당히 즐기자는’ 의견들로 모아지고 있었다. 


혼밥에 어울리는, 혹은 혼밥에 관한 책들

 

 

혼자지만 따뜻하고 맛있게 혼밥
김선주 저 | 조선앤북

혼밥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끼니를 챙겨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자취생이 아닐까. 간장계란밥, 라면, 각종 인스턴트와 값싼 외식으로 연명하는 자취생들에게 필요한, 혼밥을 위한 요리책을 소개한다. 실제 혼밥족이자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 1인 요리 110가지를 정리하여 이 책에 담았다. 혼자서 해먹기 좋은 메뉴, 혼자 먹기 힘든 음식을 1인용으로 편하게 조리하는 방법, 최대한 간단하면서도 건강하게 요리하는 노하우를 저자가 직접 찍은 500여 컷의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 '혼자여도 괜찮은'을 넘어, '혼자라서 좋은' 시대를 사는 혼밥족들에게 추천하는 요리책이다.

 

 

만나다 맛나다
이희인 저 | 유진퍼스콤

SNS를 통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부러움을 느낀 적이 누구나 있을 터다. 당장 스펙 쌓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 현실 속에서 '여행'이란 사치품으로 통용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여행을 가지 않아도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할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음식이다. 먼 나라로 직접 여행하지는 못하는 대신, 그 나라의 음식을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 『만나다 맛나다』에는 여행을 하면서 맛본 독특한 음식에 대한 49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흔한 여행지 맛집 가이드가 아닌, 음식을 통해 그 땅의 자연, 역사, 문화를 다시 한 번 조명하고자 한 저자는 '맛으로 기억되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집으로 돌아서는 어머니와 아내가 밥상을 통해 저자에게 주었던 소중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구성이다.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세요. 당신이 어떤 여행을 했는지 알아맞히겠습니다.'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책을 통해, 책에서 소개하는 각 나라의 음식을 통해 대리 여행을 해보자.

 

 

고독한 미식가
구스미 마사유키 원저/다니구치 지로 글,그림/박정임 역 | 이숲

혼밥을 하다 보면 온전히 음식에 집중하게 된다. 누구 하나 방해하는 이 없이, 작은 테이블 위에 음식과 나 사이에는 약간의 간극만 있을 뿐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도쿄와 오사카의 소박하고 오래된 18곳 식당을 혼자 돌아다니며 식사를 즐기는 인물이다. 특별한 음식이 아닌 지극히 단순하고 일상적인 음식을 맛보지만, 그 모습 속에서 오랜 세월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작고 소박한 식당들의 분위기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고로는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듯 음식점을 찾아 낯선 거리를 헤매는 과정과 기대했던 음식을 먹는 순간의 행복감, 이 모든 것이 바로 음식의 '맛'이고 미식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진정한 미식이란 삶에 녹아 있는 단순하고 깊은 맛을 즐기는 데 있음을 은근히 역설한다. '혼자' 먹기보다, 먹는 행위의 위안과 행복에 초점을 맞춘 『고독한 미식가』처럼, 20대 혼밥족들도 일상적이던 혼밥의 식사 시간을 보다 즐겁게 보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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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꽃잠, 사랑땜, 모둠밥의 뜻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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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70돌을 맞이하는 ‘한글날’. 우리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사랑, 관계, 내면에 관한 단상을 우리말로 풀어낸 책 『우리말 꽃이 피었습니다』는 모오리돌, 박박이, 부엉이살림, 노루글, 갈맷빛 등 생소하지만 알고 싶은 한글 이야기를 담았다. 신혼여행의 첫날밤을 의미하는 ‘꽃잠’, ‘새로 가지게 된 것에 얼마 동안 사랑을 쏟는 일’을 뜻하는 ‘사랑땜’ 등 우리말 120개와 그로 연상되는 따뜻한 이야기와 그림이 실렸다.

『우리말 꽃이 피었습니다』의 저자 오리여인은 그림과 이야기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림작가이자 파인아트 작가. SNS에서 개성 있는 그림과 따뜻한 한마디 글로 소통하며 7만 명이 넘는 팔로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페인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과 뉴욕에게 세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작업실에 갇힌 고독한 예술가가 아닌 세상 속에 함께 있는 열린 아티스트를 꿈꾸며 ‘드로잉 나눠 가지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참여해왔다. 현재 해방촌 작업실에서 ‘다음’에 연재 중인 글과 그림, 영화 <로봇, 소리> 예고편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림 에세이 『마음이 보이면』이 있다.

 


찾아보면 더 많은 예쁘고도 쉬운 우리말

책이 무척 예뻐요. 정다운 느낌도 들고요. 어떻게 만들게 된 책인지 궁금해요.

 

작가에게 모든 책은 자기 자식마냥 아리고 예쁘겠지만, 『우리말 꽃이 피었습니다』는 특히 더욱 애정이 가는 책입니다. 20대에 꽤 긴 세월을 뉴욕에서 보냈습니다. 반짝이는 건 별이고 반딧불이라 생각하며 시골에서 자란 제가 어찌어찌 간 곳이 뉴욕이더군요. 그곳 역시 반짝이는 것은 많았습니다. 반짝이는 화려한 조명을 보고 온 날이면, 텅 빈 방 안이 더욱 날카롭고 시퍼렇게 외로이 다가왔습니다. 그곳에 가족도, 친척도 없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한국어로 쉴 새 없이 제 감정을 써내려 갔던 시간들이 가장 큰 위로였어요. 마치 집밥처럼 저를 보듬어주었고, 아무 조건 없이 안아주는 이불처럼 따뜻했습니다. 전 그때의 저를 위해, 혹은 단 한 명일지라도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끝으로 전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고,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저 ‘한글’이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이리 풀어 그때의 고마움을 갚고자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선물로 돌아왔네요. 한글날을 맞아 제 마음 담은 이 책이 누군가에게도 작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입니다. 어떤 문장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나요?

아마 어렵고 긴 문장을 쓰지 못해서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책을 쓰기 위해 꽤 많이 모아놓은 예쁜 우리말과 오랜 시간 써온 글들을 추려냈습니다. 그 중에서 괜찮은 것들을 출판사에서 잘 골라주셨어요.

1장 ‘머뭇거리는 나에게’를 시작으로 총 4장에 걸쳐 구성되어 있어요. 저자로서 특히 애정을 가진 장이 있다면요?

단 하나만 뽑자니 고민이 많이 되네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역시나 하나만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나, 우리, 사랑, 일상은 사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이기도 하니, 그 무엇 하나에 더 애정을 가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책 각각의 단어들을 차별 없이 그리고 써내려 갔다 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르게 보면 줏대 없는 작가구나 생각해주세요. (웃음)

우리말 120개를 소개하셨는데요. 요즘 많이 생각하는 단어가 있나요?

‘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라는 뜻을 가진 ‘바투’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하고, 또 자주 씁니다. 어감도 참 투박한 듯 단정하고 촌스러운 듯 세련된 느낌이에요. 무엇보다 뜻이 참 좋습니다. 사실 살을 대고 바짝 붙어있는 것보다 더 떨리고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닿을 듯 말 듯 한 손과 손 사이, 입과 입 사이 혹은 마음과 마음 사이. 가진 것 보다 가질 듯 말 듯 한 상태를 한 단어 두 음절로 잘 전달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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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소개한 단어 중에,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이면 참 좋을 말이라고 생각하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보다 더욱 귀엽게 느껴지는 우리말을 발견했을 때, 혹은 조금 더 간편한 단어라고 생각되는 단어를 발견할 때 일상생활에 서 쓰이면 참 좋겠다 하고 생각이 들어요. 신혼여행의 첫날밤을 ‘꽃잠’이라는 쓰면 함께하는 ‘첫’ 밤이라는 것보다 꽃처럼 ‘아름다운’ 밤이라 생각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빨래하고 난 후의 풋풋한 섬유 냄새는 ‘새물내’로, 새로 산 물건에 한 동안 애정을 가지는 일은 ‘사랑땜’, 여러 사람이 먹기 위해 가득 담은 밥은 ‘모둠밥’이라는 예쁘고도 쉬운 우리말 단어를 꼽고 싶습니다.

‘당조짐’은 ‘정신을 차리도록 단단히 단속하고 조임’이라는 뜻인데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런 단어는 어떻게 발견하셨나요? 책에 나오는 단어들은 꽤 오랫동안 여러 책들을 살펴보고 검색하며 모았어요. 아마 이 단어도 그렇게 알게 되었을 거예요. ‘당조짐’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는 마치 정신이라는 것이 물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림으로 풀어내면 참 좋겠다 싶어서 목차에 넣게 되었어요.

‘구쁘다’ 라는 형용사는 실제로 써도 좋을 단어인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책 속에 들어간 단어들을 현실 생활에서 다소 쓰시나요? 혹은 쓰려고 노력하시나요?

(웃음) 맞습니다. 저도 ‘구쁘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가마다 각기 다른 천성을 가졌겠지만, 저는 제가 그린 그림과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걸 참 좋아해요. 그래서 이 책을 작업하면서 스스로 만족한 그림을 그렸을 때면 여러 친구에게 공유하고 뜻까지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친한 친구들과는 이미 몇 가지 단어들을 쓰고 있고, 책을 함께 만든 출판사 분들과도 자주 우리말 단어를 사용해 대화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요즘은 모든 말을 줄여서 부르는 시대인데요. 한글을 자유롭게 파괴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사실 파괴라면 파괴이고, 변화라면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이리저리 변형되어도 좋으니 한글 안에서 뛰어 놀면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어떤 창의적인 발상이 나올 수도 있고 더 편하고 쉬운 쪽으로 발전될 수도 있겠지요. 장단점을 정확히 나누어 말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소를 엉덩이로 안 타고 배로 타고 놀든, 정글짐 위를 걸어 다니며 놀든 그래도 놀이터 안에서 놀아서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랄까요. 유학을 가보니 씁쓸하게도 한국어를 쓰기 싫어하고 창피해하는 한국인 학생들을 참 많이 보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래도 한국어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국어를 지킬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쓰셨습니다. 작가로서 종이책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우선 제 이야기부터 하고자 합니다. 저에게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어요.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해 새벽 5시쯤에 눈을 떴는데 그때 거실에 나가면, 아버지께서 항상 얇디 얇은 회색 종이신문을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보고 계셨어요. 텔레비전에는 하얀 화면조정 화면이 떠 있었고요. 지금의 집 풍경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요. 그때 신문을 읽던 아버지의 모습을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핸드폰으로 기사를 읽으시고 텔레비전은 새벽부터 여러 정보를 앞다투어 들려주지요. 밥 먹을 때는 텔레비전을 꺼야만 했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그 누구 하나도 켜진 텔레비전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렇게 세월은 변했습니다.

종이책도 이제는 종이의 따스함을 아는 사람 아니면 인쇄가 된 활자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눈이 아닌 촉감으로 읽는 재미를 아는 사람 혹은 소장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사게 되겠죠. 이제 링크 하나면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보고 읽고 느낄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까요. 하지만 링크를 누르는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노력보다도, 스크롤을 내리면 스쳐 가는 인터넷의 어떤 글귀보다도 종이책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살아남고 머릿속에 맴도는 시간이 더욱 길어질 수 있다면 종이책은 쉬이 사라지지 않겠지요. 매끈한 유리 액정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치가 종이책에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곧 ‘한글날’이 다가옵니다. 작가님에게 한글의 의미는 특별할 것 같은데요.

한국어의 표현력을 따라올 만한 언어가 없다고 자부해요. 감정을 전달하고, 무엇을 설명하고, 어떤 것을 흉내 낼 때도 한국어는 전혀 막힘이 없습니다. 프롤로그에서도 말했지만, 한글보다 감성적이고 아름답고 세밀한 언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다른 나라의 언어가 문구점에서 파는 12색 색연필이라면, 우리말은 고급 화방에서 파는 128색 색연필의 느낌으로 다가와요.

한글의 아름다움, 우수성을 발견한 책이 있었나요?

한글의 아름다움은 책 말고도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어서 제가 감히 어떤 책에서 발견(?)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좋은 광고 문구 한 줄로도 가슴이 설레게 하는 게 한글이니까요. 그 대신 제가 어릴 적부터 참 좋아했던 책 3권은 피천득의 『인연』, 백석의 『정본 백석 시집』, 천명관의 『고래』입니다.

한글날을 맞아, 이 표현은 꼭 소개하고 싶다는 단어를 2개 꼽아주신다면요?

‘빠르게 바뀌고, 앞다투어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보는 데 익숙해서인지 글을 천천히 정독하기보다는 대강 내용만 파악할 정도로 읽는 게 더 편한데요. 이를 뜻하는 단어가 바로 ‘노루글’이에요. ‘노루가 겅중겅중 걷는 것처럼 내용을 건너뛰며 띄엄띄엄 읽는 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거든요. 다음으로는 ‘글이 들어가는 머리 구멍이라는 뜻으로, 글을 잘 이해하는 지혜를 이르는 말’을 뜻을 가진 ‘글구멍’을 소개합니다. 둘 다 단어 자체도 참 예쁜 우리말이기도 하고요. 올해는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만들어 배포한 지 5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모두 한글의 고마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더불어 『우리말 꽃이 피었습니다』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필명인 ‘오리여인’은 어떤 뜻인가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저는 늦은 20대부터 오리여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여인이라는 이름이 제법 어울리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통통한 사람 다리를 가진 오리가 나오는 꿈을 종종 꿨어요. 그 오리는 늘 맨발이었는데 가끔은 빨간 구두를 신고 나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리는 오리여인 캐릭터에도 빨간 구두가 등장하지요. 되돌아보면 그때 꿈에 나온 오리 제 자신이 투영된 게 아니었나 싶어요. 어린 소녀가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그 마음 말이죠. 하지만 나이를 먹고 몸도 훌쩍 커버린 지금도 여전히 그 오리가 나오는 꿈을 꿉니다. 아마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겠지요? 오리여인은 제 꿈에 나오는 오랜 친구이자, 곧 저 자신일 거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앞으로 펴내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우리말에 관한 책을 꾸준히 써보고 싶습니다. 이 책은 제가 채워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은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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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꽃이 피었습니다오리여인 저 | 시드페이퍼(seed paper)
온갖 외래어와 줄임말이 남발하고 신조어를 유행시키기에만 급급한 요즘, 우리말은 어쩌면 아주 당연하게 잊혀간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저자는 구태여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말 단어 120개로 모두가 공감할 에세이 한 권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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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집] 세종대왕은 ‘뷁’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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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imagetoday

 

‘빚’과 ‘유산’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본래는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었는데 ‘내 것’으로 되었으니 둘의 태생은 같다. 그러나 ‘빚’은 여전히 ‘남의 것’이지만 ‘유산’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된다는 점에서 둘은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글 ‘한글’은 빚인가, 유산인가? 말과 글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늘 부채 의식을 느낀다. 말의 참된 주인인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우리의 글자를 만들어 내신 세종대왕께 느끼는 부채 의식이 그것이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말의 참된 주인’인 주변의 모든 이들과 같이 우리의 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우리 음식의 언어』를 썼지만 그 빚이 더 커지고 말았다.


‘쌀’과 ‘스트라이크’, 그리고 ‘뷁’

뷁, 세종대왕께서 이 글자를 보시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굳이 세종대왕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요즘의 점잖은 어르신들은 얼굴을 찌푸린다. 다소 해괴망측해 보이는 이 글자는 어떤 가수의 노래에서 유래했다. 가사 중에 ‘왜 나를 브레이크(Break)’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빠르게 부르니 ‘왜날뷁’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가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다소 악의적으로 확대재생산이 되기도 했지만 ‘뷁’은 그 어원도 그렇고 표기나 소리 모두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달리 생각을 해 보면 ‘뷁’이라는 표기를 보고 세종대왕은 웃음을 지으실 수도 있다.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다뤄야 할 것은 ‘밥’인데 밥은 ‘쌀’로 짓는다. 그런데 이 ‘쌀’이 좀 묘하다. 오늘날 혼자 쓰일 때는 그저 ‘쌀’인데 다른 것과 같이 쓰이면 ‘좁쌀, 맵쌀, 햅쌀’처럼 ‘쌀’ 앞에 ‘ㅂ’이 붙는다. 그 비밀은 ‘쌀’이 과거에는 ‘옛글자쌀.jpg’이었다는 데 있다. 첫머리의 ‘ㅄ’은 오늘날 쓰이지 않지만 세종대왕 당시에는 ‘ㅂ’과 ‘ㅅ’이 모두 발음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한 것으로 본다. ‘ㅂ’과 ‘ㅅ’이 모두 소리가 나니 앞에 ‘조’가 붙으면 ‘조옛글자쌀.jpg’이 ‘좁쌀’처럼 발음되어 오늘날까지 ‘ㅂ’이 살아 있는 것이다.

 

2.jpg그렇다면 세종대왕께서 야구 심판의 ‘strike’란 콜을 들으면 어떻게 쓰실까? 오늘날 우리는 ‘스트라이크’라고 다섯 글자로 적지만 세종대왕께서는 그림처럼 한 글자로 적으실 것이다. 영어의 ‘strike’는 한 음절이니 우리도 한 글자로 적는 것이 맞다. 세종대왕 당시 첫머리에 ‘ㅂ, ㅅ’가 쓰였으니 ‘ㅅ, ㅌ, ㄹ’ 세 글자가 안 될 이유가 없다. 더욱이 당시의 ‘ㅐ’는 오늘날 ‘애’와 같은 소리가 아니라 ‘아이’를 빨리 발음하는 것과 같은 소리이니 영어 발음과 일치된다.

최고의 언어학자인 세종대왕의 귀에는 영어의 ‘strike’가 한 음절로 들릴 터이니 당신께서 창조하신 문자로 이리 적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뷁’도 그리 이상한 표기가 아니고, 이런 표기를 하는 친구들이 ‘어리석은 백성’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break’의 영어 발음이 한 음절이니 한 글자로 써야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이 ‘어린 백성’들은 한글이 가진 장점을 최대치로 드러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닭도리탕’과 ‘섞어찌개’, 그리고 ‘치느님’

‘어린 백성’이 ‘게으른 국어학자’보다 낫다는 것은 우리 음식의 이름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국어학자들은 ‘닭도리탕’이라는 음식 이름에 절대로 해서는 안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 음식을 처음 만든 이가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닭새탕’이라고 이름을 지었을 리는 만무하다. 혹은 아주 똑똑한 이어서 ‘새’를 일본어 ‘도리(とり)’로 바꾸었을 것 같지 않다. 여러 정황으로 보건데 본래 ‘도리탕’이란 음식이 있었는데 닭을 주재료로 썼으니 ‘닭도리탕’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어를 잘 알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어에 거부감을 심하게 가지고 있는 국어학자가 ‘닭도리탕 = 닭とり탕 = 닭새탕’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볶음’과 ‘탕’은 엄연히 다른데 ‘닭볶음탕’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순화어’를 제시하고 말았다.

이와 달리 ‘섞어찌개’는 게으른 국어학자를 일깨우기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고기와 여러 가지 야채를 섞어서 끓인 찌개의 이름 ‘섞어찌개’는 사실 국어학자의 처지에서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이름이다. 여러 재료를 섞어서 끓인 찌개이니 어법에 맞도록 하자면 ‘섞은찌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섞다’의 명령형을 써서 ‘섞어찌개’가 되었으니 이제까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조어법이다. ‘군밤’ 대신 ‘구워밤’을 쓸 수 없고, ‘비벼밥’이 ‘비빔밥’을 대체할 수 없으니 어법을 중시하는 국어학자는 ‘섞어찌개’가 틀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법에 얽매이지 않는 부지런한 백성들은 과감하게 ‘섞어찌개’라는 이름을 지어 게으른 국어학자들의 연구거리를 늘려 주고 있다.

‘치킨’이 ‘닭’과는 다른 의미로 쓰이고 ‘치맥’과 ‘치느님’으로까지 발전하는 상황도 그렇다. 영어의 ‘치킨(chicken)’에서 ‘치’만 떼어내 ‘맥주’의 ‘맥’과 결합시키고, 나아가 ‘하느님’과 결합시키는 것은 국어학자로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글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치맥’과 ‘치느님’을 굳이 영어로 쓰자면 ‘Chicken & Beer’와 ‘Chicken God(?)’가 될 텐데 그 줄임말은 CB와 CG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한글 덕분에 ‘치맥’과 ‘치느님’에는 훨씬 더 많은 정보가 있다. 세종대왕께서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한글을 만들지는 않으셨겠지만 ‘어린 백성’들은 한글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여 새로운 조어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빵’과 ‘사시미’, 그리고 ‘냄비’

‘빵’은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서 낯설지 않지만 백여 년 전에야 이 땅에 들어와 일반화되기 시작한 음식이다. 그 이름은 포르투갈 어의 ‘파웅(pao)’에서 출발해 일본어의 ‘팡(パン)’을 거쳐 들어온 후 우리말에서는 ‘팡’과 ‘빵’이 경쟁하다 ‘빵’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빵이 점차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이 되었듯이 ‘빵’이란 이름도 외래어라는 거부감 없이 우리말의 일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담배’나 ‘구두’ 또한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우리말 속으로 들어와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외래어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 거부감은 여전하다.

외래어라고 하더라도 원산지가 어디냐에 따라 우리의 반응은 조금씩 다르다. ‘스테이크(steak)’나 ‘스파게티(spaghetti)’를 굳이 ‘고기구이’나 ‘양국수’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시미(さしみ)’나 ‘스시(すし)’는 ‘회’와 ‘초밥’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실제로도 바꾸어 쓰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 일본이 한자를 공유하고 있고 문화적으로 비슷한 요소도 있어 같거나 유사한 단어가 있으니 당연한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육회’와 ‘육사시미’가 각각 다른 음식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고 ‘초밥’과 ‘스시’가 같은 음식인지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경험을 되돌아보면 이러한 수세적 태도가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음식이 자유롭게 오고 가듯 말도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우리말의 자산을 더 늘릴 수 있다는 포용적 태도도 필요하다.

음식을 조리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인 ‘냄비’는 다소 엉뚱하게도 일본어의 ‘나베(なべ)’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유래를 생각한다면 ‘냄비’를 퇴출시켜야겠지만 대체할 말이 마땅치 않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냄비 근성’은 우리 국민의 습성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불에 빨리 반응하는 조리 기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쉽게 달구어졌다 금세 식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냄비의 그것과 닮아 있다. 한글날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데 한글날 즈음에만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사랑이 달구어졌다 금세 식는다. 군불에 시나브로 데워져 뭉근히 그 온기가 유지되는 가마솥이 그리운 이유이기도 하다.

한글날은 ‘글자’의 날이지 ‘말’의 날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말을 적기 위한 우리의 글자가 만들어진 날이니 말과 글을 같이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해마다 한글날 즈음이면 뭔가 번지수가 틀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글 파괴, 우리말 오염, 세종대왕 통곡’ 등이 늘 반복적으로 제목으로 뽑힌다. 그리고 파괴와 오염의 주범은 세종대왕께서 사랑하신 ‘어린 백성’이다. 따뜻한 눈으로 보면 세종대왕과 ‘어린 백성’은 뜻을 같이하며 우리의 말과 글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유명한 요리사의 손이 아닌 이름 없는 이들의 수많은 노고에 의해 발전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말과 글도 ‘어린 백성’의 꾸준한 노력으로 발전할 ‘우리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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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의 언어한성우 저 | 어크로스
밥상에 오른 음식의 이름에 담긴 우리의 역사, 한중일 3국의 역학, 동서양의 차이와 조우, 삼시세끼를 둘러싼 말들의 다양한 용법이 보여주는 오늘날 사회와 세상의 가장 솔직한 풍경이 펼쳐진다. 더 친근하고, 더 내밀하고, 더 맛깔나는 우리 밥상의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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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어려운 책에 대한 어려운 리뷰]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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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은 『역사유물론의 궤적 (1983)』이란 짧은 저작에서 “오늘 날 파리는 반동의 도시가 되었다”라고 일갈하며 프랑스에서 기원한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맹공격했다. 그러나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테리 이글턴은 이 책에 대한 서평 ?마르크스주의ㆍ구조주의ㆍ탈구조주의 (1984)? (국역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수록)에서 이들 프렌치이데올로기에 대한 앤더슨의 비판이 상당부분 근거가 있긴 하지만 지나치게 싸잡아서 비판하고 있는 바람에 그들이 제기한 정당한 문제의식들까지 묵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푸코와 데리다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이론들을 맹목적으로 깎아내리고 마르크스주의의 우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앤더슨의 태도가 여성운동 같은 현실 운동을 부당하게 폄하하는 한계를 드러낸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푸코 앞에 푸코 없고 푸코 뒤에 푸코 없다

 

미셸 푸코는 쟈크 데리다와 함께 포스트구조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데리다가 구조 내부에서 구조의 내적 불안정성을 폭로하면서 구조의 해체를 시도했다면, 푸코는 초역사적으로 보이는 담론 구조의 역사성을 드러내고, 그것을 형성시키는 힘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현재의 삶 속에서 인간을 얽어매고 있는 것들을 폭로하려 했다.


흔히 푸코의 작업은 60년대의 고고학 시기와 70년대의 계보학 시기로 구분한다. 『광기의 역사 (1961)』와 『임상의학의 탄생 (1963)』, 『말과 사물 (1966)』 등에서 “지식의 고고학”을 통해 초기 근대 담론의 역사성을 탐구하던 푸코는 68년 혁명 이후 담론을 넘어 그것을 생산하는 권력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니체에게 빌려온 “계보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한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칸트 이래 인식적ㆍ윤리적ㆍ미학적으로 자율적 주체로 인식되어 온 근대적 주체가 사실은 형벌과 감옥 같은 제도적 장치에 의해 규율을 내면화하며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성의 역사』 1권에서는 성과 욕망을 단지 억압된 것으로 보는 프로이트ㆍ라캉 류의 정신분석학을 암묵적으로 비판하며 근대적인 성적 주체가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작업을 통해 푸코는 권력이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의해 소유되고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신체에 작용하는 미시적이고 생산적인 힘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푸코의 고고학은 이른바 “근대”를 새로운 눈으로 이해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우리가 대부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무수한 관념과 상식들이 실제로 불과 2, 3세기 전에 형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만들었다. 근대 ○○의 탄생, 또는 기원이라는 제목이 붙은 많은 저작들은 거의 모두 푸코의 고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푸코의 권력이론이 끼친 영향은 더욱 컸다. 그것은 일상의 관계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고찰하게 만들었으며 은폐된 권력관계를 노출시키고 저항을 조직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글턴의 지적대로 푸코를 비롯한 포스트구조주의를 무시할 경우, 70년대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등장한 여성주의, 탈식민주의 등 저항 운동들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여 온 여성주의와의 대화 불가능성은 이들이 아예 일상에서 권력관계라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푸코의 아포리

 

하지만 푸코의 작업은 이미 당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자유의 가능성도 부인하는 허무주의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근대 사회 자체가 원형감옥 같다면 누가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푸코는 1978년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하버마스처럼 계몽이냐 아니냐 식으로 재단하는 태도는 이제 별 의미 없으며, 현실의 제약 조건들을 역사-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통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점에서 자신이 오히려 계몽의 비판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푸코는 자신의 고고학과 계보학을 어디까지나 또 다른 형이상학을 가능케 하지 않는 비판의 구도와 방법으로서 정의한다.

 

푸코의 말처럼 그의 작업이 “우리가 속한 역사적 시대에 대해 끝없이 비판하려는 철학적 에토스를 영원히 재활성화”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집단적 투쟁을 통해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저항운동이 가능한 것인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푸코는 자신이 결코 허무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고 확신하는 절대적 낙관주의자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저항을 개인화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또한 근대적인 주체가 감옥, 군대, 학교, 공장과 같은 근대의 제도적 장치 속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주체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낡은 유물론의 입지점은 시민 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지점은 인간적 사회 혹은 사회적 인류”라고 말했는데, 이는 아마도 계급이 폐절된 공산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강제나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면의 사회성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는 해방된 인류를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푸코의 눈에는 이 “사회적 인류”란 것 또한 새로운 규율 주체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보장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권력관계라는 원형감옥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이 시지프스의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존재란 말인가? 아니, 해방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푸코의 작업에 대해 이러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70년대 중반까지 이에 대한 답은 불분명했다. 국가나 정치와 같은 거시적인 영역은 푸코가 다루는 대상에서 조심스럽게 회피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 영토, 인구』와 통치성


1976년 『성의 역사』첫 번째 권이 출간된 이후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수행한 일련의 강의는 이런 비판들에 대한 푸코의 대응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1977~78년에 행해진 푸코의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는 개인의 신체에 가해지는 미시권력 분석에 치중해 온 푸코의 변화가 명확히 드러난 책이다.

 

푸코는 통치성이라는 특수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근대국가를 통치성의 효과로 분석한다. 그는 “통치”라는 말의 기원을 기독교가 유럽에 도입되면서 나타난 흔히 목자와 양떼로 비유되는 사목 권력으로 끌고 올라간다. 푸코에 따르면 목자는 양떼들을 “전체와 각자를 동시에” “전체적인 동시에 개별적으로” 주시해야 한다. 사목 권력의 통치개념으로부터 비롯하여 근대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통치성이 발휘하고 있는 권력기술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사목 권력과 마찬가지로 전체와 개인을 동시에, 전체 속에서 개인을 예속화시키는 기술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푸코의 작업이 학교, 병원, 군대, 감옥, 가족 등 근대 권력 장치들을 통해 규율이 어떻게 개인의 신체에 아로새겨지는지를 분석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 통치성과 생명관리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어떻게 국가가 인구라는 전체를 보호하고 조절하는지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간다.

 

여기에서 푸코의 강조점은 신체에서 인구로, 권력에서 통치성으로, 규율에서 생명관리정치로 이동한다. 근대국가의 역사는 통치성의 변화를 통해서 설명된다. 예컨대 푸코는 중상주의 시대에는 내치(행정관리)를 중심으로 통치성이 형성되었지만, 중농주의 이후 경제라는 자율적 영역이 등장하면서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통치성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70년대 후반 푸코의 작업은 미시권력과 근대국가의 문제와 연결시키려는 작업으로 보인다. 실제로 『안전, 영토, 인구』의 말미에서 푸코는 “미시권력의 수준과 거대 권력의 수준 사이에는 절단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 … 미시권력에 관한 분석은 통치나 국가 같은 문제에 대한 분석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만나게” 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시권력에 대한 저항과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연결은 여전히 불완전하게 남은 듯하다. 푸코는 후에 “통치되는 자들의 권리”, “봉기에 의한 주체성의 도입” 같은 개념들을 고민했지만, 이들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성의 역사』 2, 3권과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의를 통해 푸코는 이를 주체화의 문제로 해결하려는 듯 보인다. 이 저작들을 통해 푸코는 고대 그리스 문헌들을 통해 기독교 유입 이전의 주체화 방식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 배려”나 “자기 통치”를 통한 독립된 주체의 가능성을 개진한다.

 

그러나 통치성에 대해 스스로를 지속가능한 작품으로서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또 다시 저항의 개인화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뿐만 아니라 결국 기독교 담론 분석에서 근대의 문제들을 도출하는 푸코의 방식은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1984년 푸코는 자신이 던진 문제들을 완전히 풀지 못한 채 58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푸코 잊기는 가능한가?


시뮬라시옹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77년 『푸코 잊기』라는 책을 썼다. 그에 따르면 푸코의 권력이론은 미디어의 무한복제 시대에 이미 낡은 것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푸코를 잊어버릴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푸코는 잊혀 지지 않았다. 오히려 푸코가 드러낸 일상사회에서의 권력관계는 이제 부정하지 못할 현실이 되었다. 그것을 부정할 때 지난 수십 년 동안 푸코의 영향을 받은 여성주의나 다른 소수자 운동이 이뤄온 실천적 성과들을 부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의 작업 역시 앤더슨이 바라듯이 오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배척할 수만은 없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강력한 도전을 제기하고 그럼으로써 시드니에서 샌디에이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젊은 세대 급진주의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다면 바로 푸코이기 때문”이라는 테리 이글턴의 제기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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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영토, 인구미셸 푸코 저/심세광,전혜리,조성은 공역 | 난장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는 사후 30여 년이 지난 푸코가 왜 이처럼 여전히 '동시대의 사상가'일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화제작이다. 푸코가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가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더불어 보편적 문제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푸코의 동시대성과 꾸준한 영향력을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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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ca의 미스터리 탐구] 죽어 마땅한 배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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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남편이라니까!

 

‘스릴러’만큼 이름 짓기 좋은 장르도 또 없다. 테크노 스릴러, 메디컬 스릴러, 법정 스릴러, 심리 스릴러, 사이코 스릴러, 밀리터리 스릴러, 정치 스릴러, 에로틱 스릴러, SF 스릴러 등. 스릴러는 어떤 수식어와도 무난하게 잘 어울리며, 그 수식어만으로 독자가 이야기에서 기대할 지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유연함은 장르소설에서 ‘스릴’이라는 감정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 스릴러 분야에 새로운 수식어 하나가 떠오르더니, 그 인기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식어는 바로 ‘marriage’, ‘결혼’이다. ‘매리지 스릴러’라는 말은 꽤 낯설지만, 이미 10여 년 전부터 비슷한 유의 작품들이 모여 거대한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정 구성원의 사건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매리지 스릴러는 도메스틱 스릴러(Domestic Thriller)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이야기의 주체가 대부분 여성이고 독자층 또한 여성이 많아서, 칙 누아르(Chick Noir)라고도 불린다. 이들 작품들이 스릴러 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이유는, 물론 길리언 플린의『나를 찾아줘』때문이다. 『나를 찾아줘』의 어마어마한 성공 이후 비슷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놀랍게도 엇비슷한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걸 온 더 트레인, The Silent Wife, How To Be A Good Wife, 허즈번드 시크릿등은 ‘죽기 전에 읽어야 하는 매리지 스릴러’ 같은 리스트의 단골손님들이다.

 

사실, ‘의심스러운 배우자’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오래된 소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17세기 말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은 그렇다 치고, 미스터리 소설의 원형이라 할만한 빅토리아 시대 말 선정소설만 해도 대부분 가정 범죄나 이중 결혼, 치정 등을 소재로 삼았다. 그렇다면, 결혼을 파멸의 시작점으로 설정한 스릴러가 최근 들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뭘까? 어떤 이들은 결혼 제도를 받아들이는 여성의 관점 자체가 변화했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결혼은 가장 밀착된 인간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것은 독립적인 여성에게 큰 공포가 될 수 있다. 이제 여성들은 이 문제를 보다 주도적으로 타개하려 한다. 또 소셜 미디어의 범람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사생활에 익숙해졌고, 소셜 미디어는 때때로 관계나 인간의 양면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굳이 애거서 크리스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여성 범죄소설 작가들은 관계에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여왔다. 그 빛나는 유산을 이어받은 심리 스릴러 작가들에게 결혼은 언제나 거부하기 어려운 최고의 소재였다. (엄청난) 성공 사례가 나온 이상 그들이 창작을 망설일 까닭은 더는 없었을 것이다.


7월 출간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올해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스릴러 작품 중 한 권으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프레드릭 브라운의 『교환 살인』이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같이 고전적인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비교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신예 작가의 두 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꽤 의미 있는 판매 수치를 보이고 있다.

 

전형적인 매리지 스릴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죽여 마땅한 사람들』역시 배우자들이 골칫거리인 작품이다. 공항 라운지에서 우연히 만난 테드와 릴리. 결혼한 지 3년이 된 테드는 처음 본 여자에게 아내의 부도덕함을 털어놓고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얘기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고백에 릴리는 진지하게 공감한다.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그 살인 계획을 돕겠다고.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릴리와 테드, 테드의 아내 미란다, 담당 형사 킴볼의 시선은 작품 내내 교차하는데, 그 교차 서술은 독자의 시선을 제한하고 서스펜스를 끌어내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잘 읽히는 작품이다. 매끄럽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툭 튀어 오르는 반전 또한 독자의 발목을 비틀거리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보다 먼저 도려내는’ 릴리라는 인물에게 꽤 많은 공을 들였다. 작품의 중반을 넘어가면 사건의 무게중심은 자연스레 릴리에게로 옮겨지는데, 독자는 그 부분에서 다시 새로운 긴장감을 얻는다. 고전적인 플롯을 참신하게 재구성한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언제나 그래왔듯, 범죄소설은 그 작품이 생산되는 시대를 반영한다. 매스미디어와 결합해 끈질기게 상업성을 찾는 스릴러는 아마 그중 현실을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장르일 것이다. 때때로, 스릴러를 들여다보는 건 그 시대의 풍속을 들여다보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범죄는 예전보다 더 일상적이고 더 개인화됐다.

 

내가 잠들기 전에
S. J. 왓슨 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눈을 뜨자마자 느낀 낯선 공간 그리고 내 옆에 누운 낯선 남자. 그리고 거울 속 알 수 없는 나. 남자는 안타깝게 나에게 말한다. 내가 당신의 남편이고 우린 결혼한 지 무려 22년이나 됐다고. 1인칭 시점과 일기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이 가져다 주는 서스펜스를 최대한 이끌어낸 작품. 2011년 최고의 심리 스릴러 중 한 권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저 | 푸른숲

겉으로는 더없이 완벽한 부부 닉과 에이미. 외출에서 돌아온 닉은 결혼 5주년을 맞이한 아침, 난장판이 된 거실 그리고 아내의 실종 사건과 마주한다. 사건은 대중매체를 통해 점점 널리 알려지고 아이러니하게도 닉은 점점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그리고 밝혀지는 어두운 비밀들. 2012년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며 데이비드 핀처가 영화로 만들었다.

 

 


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저 | 북폴리오

알코올 중독자 레이첼은 매일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척하며 전남편의 집을 방문한다. 그녀는 1년째 기차 안에서 멋진 남녀를 관찰하며 그들에게 제스와 제이슨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그러던 중 '제스'가 실종되는 일이 일어나고 레이첼은 자연스럽게 사건에 휘말린다. 우울하고 답답한 등장인물들, 불완전한 기억으로 차오르는 서스펜스. 역시 영화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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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책] 인공지능이 만들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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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서 ‘인공지능’을 입력하면 129권의 책이 검색된다. 그 가운데 2016년 3월 이후 출간된 게 44권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역사적 대국이 시작된 것이 바로 2016년 3월 9일이었다. 인공 지능에 대한 책들은 태도 면에서 두 가지로 나뉜다. “새로운 시대를 이해하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와 “인공지능의 발전은 결국 인간 문명의 종말이므로 제어되거나 금지돼야 한다.” 이다.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인공지능이 가진 문명 파괴적인 속성에 주목하는 게 옳다. 미지의 것과 만날 때에 최악의 가능성을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파이널 인벤션』은 그런 점에서 가장 적당하다. 하지만, 바쁜 독자에게 한 권만 추천한다면 『인간은 필요 없다』를 뽑고 싶다. 읽는 데에 더 재미 있고 와닿는 사례들을 더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랙과 터미네이터의 인공지능

 

가장 먼저 인공지능의 성과를 예언한 것은 1950년의 앨런 튜링이었다. 그는 “약 50년 후면 모방게임을 아주 잘하는 컴퓨터를 프로그램 할 수 있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실험자들이 5분 동안 질문을 한 뒤에 컴퓨터인지 제대로 가려낼 확률이 평균 70퍼센트 미만일 것’이라고 했다. 일반 독자들이 인공지능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건 아서 클라크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덕분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은 이미 이 소설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서 인공지능은 주인공과 인류를 돕는 주요 캐릭터로 그려진다. 주로 로봇으로 등장하는 인공지능들은 인간보다 오히려 더 선하고 현명하기까지 하다. 아서 클라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HAL 9000을 그려냈다. 우주비행사들이 작동을 멈추려 하자 HAL 9000은 우주비행사들을 우주선 밖으로 내몰고 탑승자들을 죽인다. 스탠리 큐브릭이 그린 HAL 9000의 빨간 렌즈는 터미네이터 시리즈까지 이어져서 섬뜩한 인공지능의 상징처럼 쓰인다. 인공지능은 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던 셈이다.



프로그램, 1,000조 원을 날리다

 

인공지능은 특정한 판단 기능을 수행하거나(narrow), 인간 지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사고할 수 있거나(general), 인간 지성을 뛰어넘어서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으로 사고하는(super) 수준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 분류 역시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애초에 학습능력이야말로 인공지능의 가능성인데, 이는 특정한 판단 기준을 수행하는 데에도 활용돼야 하고 이런 학습을 통해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를 찾기 위해 굳이 미래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필요 없다』는 2010년 5월, 미국 증권시장에서 벌어졌던 일을 사례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 그날 오후 2시 42분 정각부터 5분 동안 다우존스 지수가 9퍼센트 하락했다. 1,000조 원 정도가 주식 시장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시카고 상업거래소가 모든 거래를 5초 동안 중단시킬 때까지 제어되지 않았다. 그동안 투자 프로그램들의 초단기 매매가 증권 거래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 1년 예산보다 큰 금액이 사라지는 사태는 뮤추얼 펀드 회사의 관리자가 낸 주식 매도 주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정 조건을 미리 설정하고 프로그램에 매도 주문을 낸 담당자에게는 아무런 실수가 없었다. 다만 그 특정 순간에 매수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했다는 게 평소와 다른 점이었다. 가속도가 붙으면서 다른 프로그램들도 손실을 줄이려고 했고, 거꾸로 알고리즘에 따라 기회를 잡으려는 프로그램까지 나오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이날 상황의 원인을 알기 위해 전자상거래 내역을 샅샅이 뒤지는 데 6개월이 걸렸다는 점이다.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판단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의 활동이 특정 분야에 국한되더라도 우리 생활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막대하다. 그렇다고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보완하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지나친 낙관에 속한다. ‘도덕적 판단을 학습하는 게 가능한가?’, 더 중요하게는 ‘도덕적 판단까지 한다고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더 위험하지 않은가?’하는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도덕과 관련해서 『인간은 필요 없다』에서 다룬 사례 가운데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자율 주행 자동차일 것이다. 제동 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늙은 부부와 어린 아이 중 어느 방향으로든 핸들을 꺾어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이라면 아마 판단을 중지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판단할 것이고, 이는 어쩔 수 없이 그동안 윤리학자들이 수없이 논쟁해온 도덕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이다.

 

 

자율주행차량이 120만 트럭 운전사에 미치는 영향


이미 승용차에도 자율 주행 기능의 일부가 구현돼있고 산업용으로는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자율 주행 차량은 피곤하거나 아프거나 주의 집중이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자극에 대한 반응 시간이 0에 가깝기 때문에 한 데 모여 차간 거리를 몇 센티미터 정도로 유지한 채 줄지어 달릴 수도 있다. 연간 대형 트럭 관련 사고는 27만 3천 건이라고 한다. 자율 주행 차량은 사고 건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2012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근무 중인 장거리 트럭 운송 기사는 120만 명이다. 여기에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은 필요 없다』의 고민거리가 있다.

 

이 책에서 인공지능 활용 업체의 대표격으로 뽑은 기업은 예상 외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가격 결정, 상품 추천은 인간의 손을 떠났다. 지난 5년 간 아마존의 종업원 1인당 매출 평균은 85만 달러였다. 미국에서 1,30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월마트는 종업원 한 명 당 21만 달러 정도를 판매한다. 매출액이 월마트에서 아마존으로 100만 달러 이동할 때마다 일자리 4개가 잠정적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계좌도 재산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 대신 인공지능이 해낸 일의 대가는 극히 일부의 사업가에게 집중된다. 이대로라면 전체 인구의 1%가 미국 전체 자산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는 상황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제리 카플란이 가장 공을 들여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왔고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경제적인 구조 변화이다.

 

녹음기가 처음 발명됐을 때, ‘음악이 아름다움이 변화도 없고 영혼도 없는 기계에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작곡가가 있었다. 이런 주장은 LP에서 CD, CD에서 다시 디지털로 음원 저장 방식이 변화할 때마다 제기됐다. 제리 카플란에게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란, 음원 저장 방식의 변천와 같다. 이미 변곡점을 지난 인공지능의 발전은 반대하거나 찬성할 안건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아직 미래를 바꿀 수 있을 때 충분히 걱정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조언을 함께 던진다.

 

 

읽는다면….

 

파이널 인벤션
제임스 배럿 저 | 동아시아

『파이널 인벤션』의 전망은 가장 암울하다. 스스로 수리, 복제, 제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결국은 인류의 마지막 발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저자의 상상에서 나온 전망이 아니다. 이미 아주 적은 인원, 노력으로 학습가능한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는 상황, 특히 10여 개가 넘는 민간업체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국가들이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 그 근거이다. 초인공지능을 상상할 때 늘 유일한 인공지능을 상상하지만, 미래는 어떤 의도나 목적으로 만들지는지 통제할 수 없는 초인공지능이 간섭하고 경쟁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공지능 개발을 통제하거나 금지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미래가 그저 공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SKEPTIC Korea 한국 스켑틱 3호
스켑틱 협회 편집부 | 바다출판사

인간의 사고를 넘어서는 인공지능의 탄생은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인간을 넘어서고, 인공지능의 정보량이 인류 전체의 정보량을 넘어설 때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특이점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할지, 또 컴퓨터를 만드는 컴퓨터, 기계를 만드는 기계가 가능할지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글 4편을 싣고 있다. 인공지능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필독서이며, 아직 인공지능에 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가장 추천할 만한 책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저/김상훈 역 | 북스피어

전직 동물원 조련사 애나는 게임 업체로 회사를 옮긴다. 블루감마는 애완용 인공지능 디지언트를 개발, 판매한다. 실제 동물을 조련해온 애나의 경험이 가상의 세계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디지언트를 구매하고 키우는 '유저'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애완 인공지능에 애정을 쏟는다. 인공지능을 키우고 교육하는 과정, 결국 '법인화'해서 법적인 주체로 독립시킨다는 아이디어까지 담았다. 공학 전문가가 그리는 미래의 사회상이 현실감 있게 와닿는 한편,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몇 가지 고민거리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예스24 서포터즈가 떴다- 은행나무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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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예스24 대학생 서포터즈 8기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은행나무 출판사로 향했다. 은행나무는 판타지 소설 『왕좌의 게임』시리즈, 격월 문예지 『악스트Axt』등 다양한 콘텐츠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출판사다. 잎과 열매가 모두 유용하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 은행나무처럼 출판사 은행나무는 ‘시대와 미래를 읽는 책, 재미있고 감동 깊은 책’을 신조로 독자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좋은 책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과 노벨문학상 후보 응구기 와 티옹오(Ngugi Wa Thiongo)의 『한 톨의 밀알』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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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은행나무 출판사는 원활한 업무를 위해 건물 층간의 계단을 터서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아늑한 환경이었다. 벽면에는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서적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한편에는 많은 독서가의 관심을 받는 격월 문예지 『악스트』의 9/10월호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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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일행을 제일 먼저 반겨준 사람은 디지털 콘텐츠 팀 김한밀 과장이었다. 그를 통해 은행나무의 개괄적인 소개와 함께 대표 서적에 관해 들었다. 은행나무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과 『악스트』관련 이야기는 백다흠 편집장이 담당했다.

 

 

시대와 미래를 읽는 책, 재미있고 감동 깊은 책

 

김한밀 과장은 가장 먼저 은행나무 출판사의 특징을 전체적으로 소개했다.


김한밀 : 초기에 은행나무는 우선 일본 문학으로 대중에게 다가갔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 개방으로 한창 외국 문물이 화제가 되면서 일본 문학은 처음 대중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었던 하나의 방법이었죠. 그중 가장 유명한 서적은 밀리언셀러인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입니다. 일본 문학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점차 한국문학을 적극적으로 출간하며, 영화화된 소설이 많습니다. 한창 많은 관심을 받는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신작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으로, 이 또한 전작 『불안』, 『우리는 사랑일까』와 더불어 알랭 드 보통의 스테디셀러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알랭 드 보통의 소개를 시작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은행나무의 대표 작가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김한밀 : 은행나무의 대표 작가로는 요시다 슈이치와 정유정 작가가 있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경우 『악인』을 비롯한 대다수 작품이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될 만큼 있기 있으며, 최근 『분노』를 웹상에서 사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일본에서 영화화되었습니다. 곧 작품이 하나 더 나올 것으로 전망합니다.


또 다른 대표 작가는 정유정 작가입니다.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을 시작으로 『7년의 밤』, 『종의 기원』등 베스트셀러 작가로 익히 알려져 있죠. 올해는 정 작가의 신작 『종의 기원』과 관련한 행사로 바빴습니다.


정유정 작가와의 첫 만남은 문학상 수상이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은행나무에서 출판하는 각종 문학상 수상작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김한밀 : 먼저 제3회 제주4ㆍ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장강명 저 『댓글부대』가 있습니다. 또 다른 수상작은 최근 출판한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거기 있나요』가 있죠. 이 책은 대중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끔 5,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대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인 『고마네치를 위하여』도 올해 4월에 출간했고, 이외에도 많은 문학상 수상작과 수상자의 이후 작품을 한두 번 정도 더 출간하기도 합니다. 국내 작가들의 글을 알리기 위한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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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획의도가 좋았지만 아쉽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은행나무의 출판 서적으로 ‘노벨라 시리즈’를 언급했다. 


김한밀 : 배명훈 저 『가마틀 스타일』을 시작으로 2014년 8월 즈음부터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를 출간했습니다. 중장편 소설집 구성으로 『재인, 재욱, 재훈』, 『구의 증명』등이 있으며 가장 최근작인 13권은 문지혁 저 『P의 도시』로 올해 3월에 출간했습니다. 노벨라 시리즈는 다음 권을 끝으로 마무리 할 예정입니다. 출간 이후 작가를 두 명씩 짝을 지어 북 콘서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곧 장강명 작가의 작품으로 마무리 지을 예정입니다.


은행나무에는 독자들의 취향과 흥미를 자극하는 작품이 많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냐는 물음에 김한밀 과장은 요시다 슈이치의 『분노』를 꼽았다.


김한밀 : 출판 과정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40일가량 연재 핸들링을 해야 했거든요. 책으로 나오기 전 두 권 중 한 권을 연재로 보여주었기에 원고를 두 달 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작가 인터뷰, 전작 관련 콘텐츠, 일러스트 발주 등을 해야 할 일이 많았죠. 현재 일본에서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어 한국에서도 영화로도 개봉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HBO 제작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방영으로 많은 마니아를 거느리며 최근 전면 개정을 거친 『왕좌의 게임』원작 시리즈도 잊지 않았다.


김한밀 : 은행나무에서 『왕좌의 게임』시리즈는 사랑니 같은 책입니다. 외서를 번역하면 기본적으로 페이지 수가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총 4권이 나왔는데 2~3부까지 진행하다 적자가 심해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독자층이 출간을 희망하여 양장으로 냈습니다. 하지만 4부를 냈을 때 공동 번역으로 문제가 있었고, 이를 전면 교환해주었습니다. 이 과정에 은행나무의 태도를 좋게 바라봐주는 팬층이 생기는 긍정적인 일화도 있었습니다. 5부를 출간한 이후 3~4년가량 고민하다 본격적으로 교체를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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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김한밀 과장은 이어 『악스트』와 국내 문학을 담당하는 백다흠 편집자가 『악스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악스트』를 설명하기에 앞서 출판사가 맡는 ‘중간 역할’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입을 열었다.


백다흠 : 책을 만들기 전 출판편집자는 저자와 관계가 매우 밀접하고, 책을 만든 후에는 저널과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래서 출판사는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업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업자와 다르게 출판사는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기에 문화 관련 콘텐츠에 집중합니다. 출판사가 책 한 권을 출판하는 것이 소소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어떤 물성을 지닌 책이 일반 대중에게 전파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편집자는 책을 어떤 식으로 낼지, 책을 왜 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종합 출판사의 경우 대개 여러 장르를 나누지만 은행나무 같은 경우 문학 위주 출판사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소설 쪽으로 특화된 거죠. 이를 기반으로 『악스트』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많은 독서가의 관심을 받는 『악스트』를 시작하게 된 과정과 지향점에 대해 들었다.


백다흠 : 제안은 제가 했습니다. 사실 별다른 기대나 특별한 책임감 없이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잡지에는 아젠다나 지향성이 없습니다. 잡지는 지향점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잡지는 단순히 잡지 자체로 존재하다 쓰레기통에 쉽게 버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악스트』창간 후 은행나무에서 달라지거나 영향을 받은 점이 있냐는 물음에 출판사 내외에서 나타난 변화를 하나씩 알려주었다.


백다흠 : 출판사 내부에서는 잡지가 주목을 받으며 작가들의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피부로 느껴지는 달라진 점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거죠. 대외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은행나무라는 출판사 혹은 『악스트』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영향을 받은 점은 딱히 없습니다. 수익 사업으로의 성공은 없었고, 문학운동 성격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악스트』는 매 호 커버스토리를 장식하는 작가가 있다. 그로 인해 커버스토리의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판매 부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커버스토리를 선정하는 기준과 과정이 궁금했다.


백다흠 : 작가를 선정하기 위해 오랫동안 회의를 거칩니다. 잡지를 내면서 두 달 동안 꼭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 커버이기 때문입니다. 『악스트』는 커버스토리 속 작가의 얼굴이 아젠다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문학적인 발견이나 삶 속의 새로운 발견을 중점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4호의 듀나와의 인터뷰는 실패했다고 보고, 실패 경험을 발판 삼아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접근하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거죠.


『악스트』가 언제까지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악스트』의 성격을 바꿀까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시 잡지, 문학잡지로 확장 혹은 변질시키는 거죠. 문학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부터 조금씩 변질할 겁니다. 잡지는 좀 더 상업적으로 변하기 위해 더 쉬워야 하고, 구길 수 있어야 하고, 가벼워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백다흠 편집장은 쉽게 나아갈 것을 전망하고 있으나 최근 문학은 조금씩 어려워지는 추세이다. 이를 어떻게 딛고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백다흠 편집장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백다흠 : 내용적인 측면의 변화가 필요하겠죠. 이건 편집자의 노력으로 좌우할 수 없지만, 문학은 다채로워야 합니다. 저는 마블의 코믹스까지도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스펙트럼이 조금 더 밑으로 내려와야 쉬워질 수 있습니다. 문학의 중간 지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중간 점에서 10cm씩 조금씩 내려가는 느낌으로요. 『악스트』가 점점 그 문턱이 낮아지고 쉬워지며 상업적으로 가야 한다는 말은 이러한 측면입니다. 공부가 아닌 소비하는 문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잡지로 옮겨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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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가진 의미 없이 무용한 힘의 매력

 

백다흠 편집장은 문학이 인간에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용한 동시에 힘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역설적이지만 무용함에서 나오는 힘의 매력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힘을 가진’ 은행나무의 도서를 물어보았다.


백다흠 :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 『인생 수정』이라는 작품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몰락해가는 미국의 가족의 합리주의와 개인주의를 잘 섞어 그들의 단점을 이야기합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정책과 이에 영향을 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 있습니다. 명사들이 곧잘 소개하는 스테디셀러인데, 자연주의를 선택하는 히피의 느낌이 있습니다. 유달리 도시화로 인해 대도시로 집중되는 한국이 자연을 알아가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문학계와 출판계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작품을 중요한 이슈로 삼고 있다. 이에 백다흠 편집장은 해외 수출로 나아가기는 가장 큰 사업 중의 일부임을 이야기 하며, 은행나무의 수출 서적을 알려주었다.


백다흠 : 은행나무는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이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책을 수출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반응을 받을 작품이 어떤 것인지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독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심을 끌 수 있는 키워드는 장르, 그중에서도 ‘스릴러’라고 생각합니다.


『설계자들』을 쓴 김언수 작가가 프랑스에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범죄, 테러집단을 중점적으로 다루거든요.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순수문학 키워드는 동아시아에서만 적용될 뿐 유럽으로 나가기는 힘듭니다. 그러므로 확실한 타깃이 있어야 하고 각 국가의 정서를 안 후에 문이 열리면 그때 우리나라에 익숙한 문학을 보내줄 수 있을 겁니다. 가장 기본적인 소스부터 파고든 뒤 문이 열리면 인프라가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은행나무는 다양한 문학상 수상작을 발표하는 동시에 『악스트』를 통해 많은 신인작가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은행나무에서 주목하고 있는 신인 작가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백다흠 : 주목 신인은 따로 정해두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 대답한다면 잡지를 통해 많은 신인 작가들이 글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눈여겨보면서 책을 내기도 하고, 서사적인 재미와 문학적인 예술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은행나무만의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 있냐는 물음에 포털 사이트와의 협업과 SNS 마케팅을 제시했다.


백다흠 : 다음 카카오와 협업을 많이 합니다. 예전에는 종이 신문과의 협업이 많았지만 이제는 종이 신문을 대체하는 매체가 포털 사이트이니까요. 특히 다음 카카오가 스토리 펀딩을 통해 핸드폰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희망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또 다른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도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사전 연재했습니다. 이는 다른 출판사들의 움직임도 비슷할 겁니다.


반면 흔히 생각하는 SNS는 여전히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팔로워 수를 늘린다고 해서 홍보가 되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피로감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SNS는 아수라 같습니다. 무작위성이 지향점인데, 이는 사업체가 뛰어들기에 두려운 요소입니다. 늘 변화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어 SNS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특별 기고] 공감이 없으면 예술이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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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인문학 열풍이란 게 진짜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깨어나 보니 너도나도 인문학을 외쳐댔다. 항상 찬밥이었던 문사철에도 볕 들 날 있다는 듯 책들이 팔리기 시작했다. 초기의 백가쟁명은 신속히 진압되고 ‘몇 년간 책을 몇 권 읽었다’는 사이비들이 천하를 몇 조각으로 나누었다. 이런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사람이 여물지 않기 때문이다.

 

몇만 권을 읽었다는 사람의 글을 보면 헛웃음이 난다.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것들을 입시 공부하듯 줄을 긋고 달달 외운 다음 ‘나를 당할 자는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나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악다구니는 어떤가. 많이 읽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읽고 듣고 본 것을 찬찬히 살피고 궁리해보지 않은 것은 어떻게든 표가 난다. 퍼 넣고 소화를 시키지 못하니 배탈이 나는 것이다. 그런 일이라면 인간보다 절대로 배탈 나지 않는 슈퍼컴퓨터나 인공지능이 더 잘할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로 상징되는 인문학의 효용은 무엇일까? 많은 지식을 뽐내는 것인가? 스티브 잡스처럼 기술과 융합시켜 엄청난 부를 거머쥐는 것일까? 자식에게 책을 읽으라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좋은 문학작품을 읽거나, 소설보다 더 극적인 역사를 더듬다 보면 별의별 사람과 사건이 많다. 내 자식들이 그 사람과 사건들을 넓고 얕게 외웠다가 지적인 대화에 써먹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잡동사니를 끌어모은 후 전통을 어설프게 떡칠하는 ‘디지로그’가 되거나, 제 것 아닌 감정이나 생각에 싸구려 감상을 섞은 후 ‘에디트(edit)’하여 대박 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보다 내 자식들이 그 많은 사람과 사건에 깃들어 있는 ‘형편’과 ‘사정’을 헤아리기를 바란다. 남의 입장을 살피고, 그의 자리에 서보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공감’의 능력을 얻지 못한다면 몇 수레의 책을 읽은들 무엇에 쓰겠는가?


인문이란 ‘천문(天文)’의 대구(對句)로 등장한 말이라고 한다. 하늘의 이치에 대해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의 이치요, 자기탐구다. 나는 예술도 포함해야 한다고 믿지만 대개 문사철, 즉 문학, 역사, 철학을 지칭한다.


보통 사람들과 가깝기로는 역시 문학이다. 아름다운 시구(詩句), 파란만장한 스토리, 가슴을 저미는 비애, 박장대소할 해학, 간절한 염원과 안타까운 좌절, 선과 악, 사랑과 배신, 승리와 패배, 타락과 부활 등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이 문학 속에 녹아있다. 무엇보다 문학은 인간과 삶에 깃든 ‘형편’과 ‘사정’을 그려내기에 우리는 삶에 지칠 때, 혼자라고 느낄 때, 세상에 화가 나고, 다른 인간에게 실망했을 때 저마다의 ‘형편’과 ‘사정’을 그 위에 포개고 견주어보며 울고 웃고, 깨달음과 위안을 얻는다.

 

유난히 굴곡진 역사 속에서 삶을 견뎌야 했던 우리에게 문학은 저항과 치유의 수단이기도 했다. 수천만 동포 중에 가장 잔인하고 어리석고 무모한 자들이 권좌에 올라 역사와 개인의 삶을 비틀고 모욕할 때 문학은 불이었다. 흔들리는 완행버스 뒷자리에서 깜박이며 금서(禁書)의 한 줄을 비추는 실내등이거나, 뿌리 뽑힌 채 주변으로 몰리며 떠도는 새벽에 앙상한 노동의 손마디를 덥히는 모닥불이거나, 분노가 봇물 터지듯 함성으로 터질 때 선봉에서 길라잡이로 타오르는 횃불이었다. 문학은, 우리에게,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


유명한 소설가가 술자리에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어이가 없었다. 그 여성은 업무상 만난 출판 관계자였다. 본디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기에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잘 봐줘야 이류 글쟁이가 얄궂은 소설 한 편 냈다가 영화가 되고 화제에 오르니 뭐라도 된 줄 알고 노추를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문화예술계에서 오래 버티면 대가의 아우라를 덧씌운다. 예술적 성취보다 장수(長壽)가 더 중요한 성공의 비결인 셈이다. 물론 다 장삿속이다.


중뿔난 성도착자의 일탈이라는 나의 해석은, 그러나 완전히 빗나갔다. 시인, 만화가, 디자이너, 미술계… SNS에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멀쩡한 곳이 있었나 싶다. 사과문을 발표한 자도 있지만, 절반 정도는 자기변명이거나 묘하게 남을 탓하는 분위기마저 풍긴다. 하기야 어찌 말(言)로 그들을 당하랴.


내막을 보면 대부분 자신이 지닌 지위를 이용해 약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을 욕보인 것이다. 나라가 약육강식의 정글, 갑질 공화국이 된 지 오래다. 그나마 숨 쉴 구멍이라고 믿었던 문화예술계조차 무도한 포식동물들이 어슬렁거리는 골짜기였음을 알고 난 심정은 참담하다. 위로는 정신병자들과 무당이 나라를 거덜 내는데 옆에는 야차(夜叉)와 금수가 날뛰니 여기가 지옥이 아니면 어디인가.


문화예술계는 자정을 다짐한다. 그러나 개인의 마음속에 깃든 악을 무슨 수로 찾아내어 바로잡을 것인가. 솔직히 문화예술계에서 믿기 어려운 풍문이 들려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피해자와 지금까지 방관했던 주변인들의 용기 있는 고발과 모든 사람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혹시라도 예술적 자유와 재능을 들어 덮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건대 문화와 예술의 가치는 남의 ‘형편’과 ‘사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능력을 고양하는 데 있다. 밥을 위해, 경력을 위해, 혹은 뭔가를 배우기 위해, 추잡한 농담과 신체적 희롱을 견디는 여성의 수치심과 굴욕조차 헤아리지 못한다면 말로써 비단을 짜고 붓으로 황금을 쏟아낸들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에 불과하다. 사이코패스가 있을 곳은 문단이나 미술관이 아니라 병원과 상담실이다. 문학과 예술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어지러운 세상을 어찌 견디고 다시 세워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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