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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채널예스 : 특집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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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플레이리스트] 도시에 가득한 사람들에게 숨이 막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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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서울입니다

여기서부터 소멸입니다

여기서 멀미가 나고

아무도 눈을 만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차를 세워도 되나요

차에서 내려 좀 걷고 싶은데요

다만 소란을 피우는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는 발

허공에서는 그런 아무 발이나 건져 올립니다

휘어지는 차선들이 계속 휘어지도록

여기서부터 서울입니다

여기서부터 소멸입니다

시내에 누군가 쓰러져 있습니다

그가 비를 맞는 줄 알았어요

흔들어보아도 깨어나지 않아요

한 마디 말도 없어요

그를 땅에 묻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우리는 그만 눈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아무도 눈을 만지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 줄 알았어요

시내에서는 쓰러진 사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흔들어보아도 깨어나지 않아요

여기서부터 소멸입니다

그가 숨 쉬는 자리가 보이지 않는

여기서부터 서울입니다.

- 이수명 「여기서부터 서울입니다」 (『물류창고』, 문학과지성사)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도시에 살아서 힘든 걸까요? 매일 차와 기차에 실려 다니다 보면 정신은 ‘흔들어보아도 깨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내리고 싶은데, 내리면 어디로 가야 하죠? 한국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머릿속으로 흥얼거리는 노래에 따라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하죠. 30대가 넘어서면 김연우의 ‘이별택시’를 떠올리고(’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20대라면 아이유의 ‘분홍신’(’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을 떠올린다는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차에 오릅니다. 서울이어서 이렇게 힘든 걸까요? 부산, 대전, 뉴욕, 상트페테르부르크라면 사는 게 좀 편해질까요? 어느 도시에 있든 시에서 말한 소멸하는 기분을 다들 느끼리라 생각해요. 다들 숨 한 번 크게 쉬고 도시에서의 하루를 버티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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